46. 마흔 일기 / 동생
여전히 어리고 여린
오래 연애한 남동생이 드디어 결혼을 할 작정인가 보다. 동거한지 오래라 차라리 결혼을 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이제 저희들도 결심이 선 것 같다.
문똥깨는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데다 성별이 달라서 그런지 형제라기 보다 엄마와 아들, 이모와 조카 같은 사이다. 초등학생 때 동생을 업고 슈퍼에 가면 동네 어른들에게 너는 다 큰 동생을 업고 다니냐 꼭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 업고만 다녔나, 셈하는 게 당연한 나이에도 거스름돈을 잘 챙겨오면 기특하다 칭찬했고, 장난감 총을 잃어버리면 놀이터를 샅샅이 살펴 끝끝내 찾아내곤 했다.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겠다는 고집은 아빠와 똑같고, 그냥 좋게 넘어가는 법 없는 성질 역시 아빠를 닮았지만, 평생 누나에게는 대든 적 한 번 없는 착한 동생이었다.
한때는 티브이에 나오는 핫한 연예인이나 식당,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내가 그들의 나이를 추월할 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한동안은 그네들이 다 내 동생 같아 보였다. 다 예뻤고, 실수를 해도 이해할 수 있었고, 쓸데없이 애틋해지기까지 했다. 그랬던 동생도 벌써 30대 중반. 성수동은 젊은 애들이 많아 안 간다는 얘기를 그 애 입에서 들으니 이제 녀석이나 나나 늙어가고 있구나.
어릴 적 엄마는 종종 '너는 예쁘고, 웅이는 그냥 예뻐.'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엄마의 어린 육아 동지로 동생을 함께 귀여워하는 입장에서 그 말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는데, 아이 둘을 낳고 나서야 그 속 뜻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키워보니 정말 둘째란 그런 존재였다. 이유 불문 그냥 사랑하게 되는 존재. 그리고 ‘예쁜’ 첫째와 ‘그냥 예쁜’ 둘째의 예쁨은 비교할 필요 없는 전혀 다른 결의 사랑이라는 것을 어릴 때는 어렴풋이, 지금은 확실하게 안다.
며칠 전에는 운영 중인 글쓰기 모임에서 둘째 이야기가 올라왔다. 첫째에게는 책임감이라는 고충이 있듯 둘째는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글이었다. 과연 나의 책임감과 그 애의 소외감이 우리 집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도 동생은 언제나 가족회의에서 제외됐다. 문똥깨는 아직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철이 없으니까. 혹은 여리니까, 보호해야 하니까, 알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로 자주 가족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배제시켰다.
언젠가 가게를 마감하고 온 엄마가 유리문에 발뒤꿈치가 찍혀 아킬레스건이 찢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자고 있던 동생을 깨우지 않고 아빠와 우리 셋은 서둘러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 수술을 하고 발목에 붕대를 감고 돌아온 우리를 맞이 한 건 붉으락푸르락 한 동생의 얼굴이었다. 녀석은 아직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에 서있는 우리를 막아서고 나는 가족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울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난 얼굴이었다.
나는 그 속상한 마음을 알지만 솔직하게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첫째가 아는 것은 겁이 많아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엄마의 괜찮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엄마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아빠를 질책하고, 빨리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 보호자로 병원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하고, 알레르기가 있어서 엄마가 먹을 수 없는 약의 종류를 의사에게 전달하고, 무섭다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역할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다. 아마 또 그런 일이 있어도 가족으로서 내 몫을 하게 해달라 요구하는 동생의 마음까지는 끝내 살필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하게도 내 몫을 해내기도 벅차다.
성인이 된 동생은 여전히 우리 집에 드리운 그림자를 다 알지 못한다. 감히 상상도 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한창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학비와 생활비를 더 이상 지원해 줄 수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쌍했다. 동생이 자취하고 있던 월세 보증금이 집에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지원이었다. 이제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으니 1년 남은 대학 학비와, 월세와 용돈을 덜렁 혼자 떨어져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통보하기에 그 애는 너무 어렸다. 스물네 살이면 독립해도 될 나인데 뭘 그렇게 안쓰러워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부모님의 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결혼한 내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집안이 망하기 전, 가족이 화목했을 때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고 시집간 누나는 더 미안해야 마땅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는 흔한 문장 속, 지저분하고 불쾌한 이야기는 영원히 동생에게는 비밀이다.
이런 내 마음은 엄마에게서 유전되었다. 덕분에 나는 위아래로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산다. 그것이 우리 집이 화목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순순히 따를 생각이다. 동생은 조금도 바라지 않겠지만 여전히 부모님과 나는 우리 집안의 불운에서 그 아이만 기름 걷어내듯 동동 떼어내어 진탕에 섞이지 않게 하고 싶다. 30대 중반이 되었어도 동생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어리고 철없고 딱한 막내니까. 가능하다면 동생만큼은 흙탕물에서 건져 머리 위에 이고 가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이 녀석은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쯤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아픔의 주변에 얼씬도 하게 못하게 하는 것이 맞다. 집 밖에서 아빠가 한 일들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받았고 그 애는 받지 못했으며 나는 알았고 그 애는 모른다 (몰라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동생을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는 것 같지만, 내가 아빠를 끔찍해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이 녀석의 어느 한 부분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사회에서 동생이나 아빠 같은 유형의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고민도 없이 필사적으로 모른척했을 것이다. 인정할 수 없는 이 집 남자 특유의 못마땅한 점 역시 도저히 극복이 안 된다. 하지만 가족은 그럼에도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웃고, 또 그럭저럭 잘 지내지는 불가사의한 존재. 미워도 평생 마음 쓰이는 사이 아닌가.
동생인데 아들 같은, 안쓰럽고 한심한, 품어주고 싶다가도 내쳐버리고 싶은 이 짜증 나고 사랑하는 동생의 결혼이라니. 결혼하기도 전에 이혼하면 어쩌나, 저거 애는 잘 키울 수 있을까. 돈도 얼마 안 모아놓고 지금까지 뭐 한 거냐. 하고 싶은 잔소리가 잔뜩이다. 하지만 그 역할은 엄마가 충분히 하고 있으니 나는 지금까지와 같이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그 아이를 축복할 참이다.
믿어주기. 내 동생은 잘할 거라 스스로도 믿어버리기.
두 사람은 바란 적 없는 축사를 적어보았다. 결혼식장에서 마이크에 대고 읊을 일은 절대 없겠지만 작게 적어 축의금 봉투에 넣어 주려고 한다. 부디 잘 살길. 나보다 더 행복하길.
문똥깨에게.
내가 한 결혼 생활과 네가 겪을 결혼 생활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는 것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편지를 써.
결혼은 슬라임과 같아서 네 것과 내 것을 섞어 한 덩어리가 되고 나면, 절반으로 나누어도 결코 처음과 같을 수 없더라. 요즘은 반반 결혼을 넘어 엑셀 결혼까지 있다지만 누나가 살아보니 부부란 경계를 나누기 힘든 사이야. 내 동생이 영리하게 굴겠다고 정확히 반으로 나누거나 더 갖겠다고 욕심부리지 않길 바라. 차라리 온전히 다 주어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게 부부 사이에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알게 될 때가 오겠지.
부부란 두 사람만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란다. 그러니 나만 멀쩡해서는 유지될 수 없어. 혼자만의 행복이나 혼자만의 불행 같은 건 이제 불가능해. 한 사람이 여유롭다면 다른 한쪽이 가까스로 견디고 있음을 서둘러서 눈치채야 돼.
이제 너희 부부에게 마지막이라는 카운드는 무의미할 거야. 앞으로 세 번의 기회를 준다거나 딱 한 번만 더 용서하겠다는 식의 협박은 아무런 힘이 없지. 너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끊임없이 이해하고 무조건 용서하렴. 부부는 용서와 사랑을 무한으로 반복하는 유일한 존재니까.
너희 둘이 만들어가는 세계 속 무수한 약속과 질서들이 나보다는 옆 사람의 즐거움과 편의와 쉼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 결혼 축하해.
동생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어쩌다 축사까지 써버렸네요. 저걸 진짜 동생에게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결혼과 부부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저나 잘 살아야겠습니다. 하하.
구독자님 설 연휴 수고 많으셨어요.
2025. 1. 31.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믿기지 않는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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