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안부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메일을 보냅니다.
한 달에 두 번 보내드리는 ‘마흔 일기’는 아니어도 종종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이렇게 글을 써보려고요. 가끔 메일함에 글이 쌓이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마흔 일기’를 읽는 것이 제 글을 받아보지는 주된 이유라면 앞으로 이 메일은 가볍게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평범한 안부 인사가 될 거예요.
어제 외삼촌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마흔 일기' 제주 여행 글에도 적었었지요. 연명치료를 하고 계셨던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아이 둘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버님이 오셔서 함께 시댁으로 가고, 저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남편은 반차를 내고 회사에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고요. 외삼촌에게 딸이 둘 있는데 저번에는 큰 동생만 보고 왔던 터라 이번에는 둘째를 안고 부둥켜 울었어요.
사실 저는 외삼촌과 이렇다 할 추억이랄 게 없습니다. 친척들과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야 자주 왕래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뜸해졌고, 제가 결혼한 후에는 친정집 형편이 어려워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모든 친적들과 연락을 끊게 되었지요. 그렇게 신 시간을 보내다 이제 조금 얼굴을 보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게 되던 차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외삼촌에 대한 딱 한 가지 기억은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이곳으로 내려와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를 찾아오셨던 거였어요. 엄마도 저도 친척들 전화는 받지 않고 살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의 반찬가게로 오셨지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둘째 아이의 얼굴도 보고 축하한다 얘기하고 바로 올라가셨습니다. 밥 한 끼 함께 해도 좋았겠지만 저는 친척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고 엄마는 형제를 보는 것이 괴로워서 믹스 커피 한 잔 타드리는 걸로 짧게 인사를 마쳤어요.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 두 동생들이랑 그날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외삼촌이 참 고맙다고. 여동생 걱정되어서 지방까지 내려와 얼굴 한 번 보고 간 게 사랑 아니겠냐고. 우리 집 형편이나 어른들의 관계에 대해 잘 몰랐던 동생들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 놀라면서도 이래서 장례를 치르는 것 같다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듣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장례식장이 슬프고 무겁지만 않은 이유가 그거였나 봅니다. 모두들 참 좋은 분이셨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큰 위로가 되겠지요.
장례식장이 있던 병원은 제가 둘째 아이를 낳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동네에서 출산 준비를 했었는데 양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자연주의 출산이 되는 대학병원을 수소문해서 바로 입원했었지요. 아기를 낳고 바로 다음 날 어그적 어그적 걸으면 퇴원했던 것, 가장 작은 바구니 카시트에 넣어도 빈 공간이 남아서 기저귀랑 속싸개를 돌돌 말아 아이 옆에 넣었던 장면이 생생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웃고 계신 외삼촌의 영장 사진과 갓난아기의 얼굴이 번갈아 보였어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을 때는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글로만 와닿았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니 그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새롭게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내일이면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분도, 이 지긋지긋한 명절 문화가 언제 끝날까 벼르고 있는 분도 계시겠지요. 오히려 명절을 더 반기는 분도 있을 거고요. 저는 마흔이 다가오며 많은 것을 의도적으로 바꾸었는데 그중에서는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도 조만간 써볼게요.
그러니까 이 편지에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부디 아프지 마시고 잘 지내자는 아주 평범한 인사입니다. 힘든 일은 때로 눈 감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지내요 우리. 무엇보다 나를 최우선으로 두고 아프지 마세요. 건강히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2.9.8.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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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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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레떼님 안녕하세요. 쑥스러움을 꾹 누르고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으 0인 저번 레터는 뭐가 문제일까 아직도 여러번 다시 읽어보는 소심한 사람이라서요. 다행히도 추석 연휴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틈틈이 읽고 쓰기도 하며 조각 조각 제 시간도 챙겼지요. 레테님의 연휴도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곧 다음 편지로 또 안부 인사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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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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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원더킴님 안녕하세요. 딱 알맞는 타이밍에 도착한 편지라서 다행이에요. 사실 편지를 보낼 때도 언제가 좋을까 혼자 고민한답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읽는 게 좋을까. 한낮이 좋을까 새벽이 좋을까 말이지요. 그렇게 고민하다 답을 못 찾아서 (꼭 발송하자마자 바로 보시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제가 쓸 수 있을 때 보내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보내는 시간이야 매번 다르겠지만 제 글이 적당한 때에 필요로 한 편지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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