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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물방울

#44. 무시(無時)로, 퇴색(退色/褪色)

2025.11.10 | 조회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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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시(無時)로

: 특별히 정한 때가 없이 아무 때나.

 

  • 단어를 찾은 곳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이미 때늦은 이별인데 미련은 두지 말아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이미 돌아선 이별인데 미워도 미워 말아요 이미 약속된 이별인데 아무 말 하지 말아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무시로, 나훈아

 

 

  • 나의 단어라면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아무말도 없이 3일동안 보이지 않다가 대뜸 이렇게 말하며 인사했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잘 보내드리고 왔어.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와 다시 마주친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일전엔 사랑하는 것을 잃어가는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사랑하는 것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듯한 표정. 그는 모두들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그는 마치, 3일 동안 외딴 곳을 놀러갔다 돌아온 사람 같았고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주섬주섬 싸온 망각을 선물했다. 시간이 지나가 그의 선물이 효과를 보이기라도 한 듯, 모두들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모두들 웃는 얼굴로.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늘 시덥잖은 이야기로 전화하시곤 한다. 오늘은 새로 산 발에 붙이는 파스? 같은 게 온통 일본어라는 이야기. 나는 그냥 편하게 발바닥에 붙이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술마시러간다고 어물쩍 전화를 끊었다. 옆에 그 친구가 있는 것도 모르고. "어야 미안하다 괜히. 오늘 또 쓸데없는 걸로 말을 거셨네 하하." 모든 말이 아차 싶었다. 사과를 할 일도, 하지만 뻔뻔할 일도 아니었다. 내 모습이 그에게 어떤 바람을 만들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더더욱. 하지만 그는 웃으며, "괜~찮아. 나도 가끔 그렇게 아빠가 찾아와. 눈물 있잖아, 무시로 흐르는 이 눈물. 나는 이 눈물을 아빠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뜨거운 눈물이 볼에 닿으면, 여태 몰랐던 사람의 온도를 알아. 나도 그렇게 따뜻하게 예열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기분이야. 요즘은 아빠가 그걸 잊지 말라고 자꾸 찾아오는 것 뿐이고. 그래서 눈물이 날 때면, 아빠가 오는 거라고 생각해서 신이 나. 눈물이 나는데 신이 난다니, 나는 하여간 슬플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다행이야 나는 진짜." 그는 정말 행복하다는 듯이, 뺨에 흐르는 눈물 본인이 저 웃음에서 나왔을리가 없다고 생각할만큼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아주 뜨거워 보였다. 나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느낌으로, 그는 뜨거운 탕에 먼저 들어가 시원하다고 외치며 나를 재촉하던, 어린날 대중목욕탕의 아빠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퇴색(退色/褪色)

: 빛이나 색이 바램. ≒유색.

: 무엇이 낡거나 몰락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지거나 볼품없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단어를 찾은 곳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오늘 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빛 노래 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랏빛의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맞추렴 비가 온 날엔 밤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발길일 거야

꼬마야, 산울림

 

영~ 책갈피에 꽂아둔 영~ 은행잎은 퇴색해도 영~ 못견디게 보고싶은 영~~ 너는 지금 어디에 영~ 나만 혼자 외로이 영~ 남겨놓고 어디갔니 영~ 다시 내게 올수 없니 영~ 난 너를 사랑해 땅거미 등에지고 강가에 앉아 풀꽃반지 끼워주며 속삭인 그말 영~ 너는잊었니 벌써잊었니 돌아와줘 나는 너를 너를 사랑해

영, 이선희

 

  • 나의 단어라면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랑을 줄 거냐고 물었지 선뜻 답하지 못해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 피어나는 사랑은 밝고 부풀어져 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 언젠가 펑하고 터지고 말 것 같은, 놀이공원의 풍선같다고 느꼈어 어설펐어 뜨거워진 마음에 잘그락 얼음물을 찾았지 그러다 네게 줄 마음도 약간의 물기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앞뒤로 딱 붙어 미끌거리는 비닐봉투를 떼줄, 추운겨울 갈라지는 입술을 아슬하게 잡아줄, 햄버거 따위를 먹을때 생기는 끈적임을 지워줄, 거대했다 퇴색되는 불꽃같은 사랑 말고 조용히 여기저기 맺히는 작은 물방울 같은 사랑이 될 거야 꿈결에 반짝이는 창 밖 이슬같은 사랑을 줄거야

추신1

무시로 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요, 어릴적 백지영 님의 버전을 먼저 듣고 좋아하게 되어 둘다 첨부합니다. 수많은 다른 가수들이 커버한 만큼 다양하게 들으며 차이를 느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신2

오늘 두 번째 단어의 예문으로 쓴 글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어렴풋한 심상보다 내용 그 자체가 직관적인 문장들이 시와 편지를 구분하는 기준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편지에 가까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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