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어

지도로 삼겹살집 찾기

#23. 부득불(不得不), 불콰하다

2025.06.09 | 조회 67 |
0
나의 단어의 프로필 이미지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또는 마음이 내키지 아니하나 마지못하여. ≒불가불.

 

  • 단어를 찾은 곳

멋진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잔도 성공이었다. 약간의 흠이 있다면 이 모든 선택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가를 거듭 강조하는 나영규의 무궁한 활력이었다.

"좋지요? 이 집을 선택한 것은 경치도 경치지만 '그날 오후'라 는 찻집 이름이 짱이었어요. 먼 훗날, 진진 씨와 내가 앉아서 그날 오후, 우리가 그곳에서 차를 마셨었지, 하고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거든요." 추억까지 미리 디자인하고 있는 남자, 현재를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어 먼 훗날의 회상 목록까지 계산하고자 하는 그의 도도한 힘이 나에게는 조금 성가셨다. 하지만 나는, 추억이란 계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진다는 등,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그렇게 머리를 쓰고 살자면 피곤하겠다는 등의 분위기 깨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양귀자, 모순, 15쪽

  • 나의 단어라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간 적이 있나요? 검색을 하면 알려주는 노선이 없는 그냥 지도에서 골목을 세고 버스 노선들을 대가며 말이에요. 길가의 도로들은 그리 유연 하지 못해서 부득불 본인이 가야 하는 길만 간답니다. 하지만 길은 그렇게 가야 하기만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동시에 우리는 레일에 박혀있는 덩치 큰 기차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따라간 적보다 만들어간 역사가 많은 동물이랍니다. 나와있는 지도를 보며 한 두 블럭 건너 가면 목적지에 더 적합한 버스를 탈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버스를 타지 않아도 걸어갈만 하다고 생각 된다면 한번 걸어가 보세요. 바퀴가 감춰 주는 아름다움을 보세요. 시간이 많다면 최단 거리보다 최장 거리로 한번 가 보세요. 가장 돌아가는 길 골목, 작게 피어 있는 그 꽃은 당신도 모르는 채 당신 주머니에 씨앗을 심고, 그날 밤 잠에 드는 당신 마음속에 똑같은 이파리를 피울지도 몰라요.

불콰하다

: 얼굴빛이 술기운을 띠거나 혈기가 좋아 불그레하다.

 

  • 단어를 찾은 곳

그날 어머니는 두 팀의 손님을 치르고 있었다. 안방에는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이, 건넌방에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는 두 방을 들락거리며 아주 많은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셨으면서도 아버지는 두 방의 손님들을 거두느라 분주한 어머니를 위해 국대접도 나르고, 안주접시도 날라주는 배려를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는 두 방의 손님들이 다 돌아갈 때 까지도 아버지가 그렇게나 많이 취해 있었다는 것을 감쪽같이 몰랐다. 눈동자가 조금 희미했고, 안색이 불콰했다는 것 말고는 과음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양귀자, 모순, 85쪽

  • 나의 단어라면
세상에 똑같은 단어는 없다고, 나는 지금 그녀가 불콰한지 불쾌한지 알아차리느라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취할 때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모두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삼겹살을 먹기로 한 오늘, 늘 가던 곳이 문을 열지 않아 옆 냉동삼겹살집에 왔다. 그것이 그렇게 불쾌한 일인가? 너무 달궈진 팬에 콩나물 무침을 올리는 바람에 국물이 튀어 버렸다. 그것이 그렇게 아직까지 불쾌한 일인가? 자 반대로, 지금 우리는 둘이서 소주 네 병과 맥주 한병을 마셨다. 이것은 평소 우리의 주량에 도달하기는 조금 부족한 것인데, 오늘 운동을 하고 오느라 몸이 피곤하곤 했다. 그것이 그렇게 불콰할 일인가? 어제 그녀는 직장상사에게 대차게 혼이 났고 오늘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열이 받는다고 첫잔을 원샷했다. 그것이 그렇게 불콰할 일인가? 획 하나에 이토록 신경을 쏟아 붓다니, 나는 작가라도 되는 냥 구는 내 모습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추신

내용에 집중하여 책을 읽는 것과 어려운 단어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아시나요? 마치 너무 아름다운 클로버 군집 속에서 네잎짜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한 사람처럼, 내용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단어만 주구장창 찾습니다. 기어코 찾고나면, 찾은 그놈보다 눈을 떼 멀어진 군집에 아름다움을 느끼듯, 일상적이고 쉬운 단어들로 빽빽한 주변 문단들을 새삼 다시 발견합니다.  몇번을 읽어도 낯설지 않을 글을 다시금 낯설게 읽어낼 수 있음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뉴스레터 문의JH1047.2001@maily.s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