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지다
: 팽팽한 가죽이나 종이 따위가 해어져서 구멍이 나다.
: 가득 차서 터질 듯하다.
:(비유적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심한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다.
- 단어를 찾은 곳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는 이모네 수준에 맞게 호텔의 정통 프랑스식당이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어디로 갈까 많이 망설이다 정한 곳이라는 이모의 부연 설명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 년에 몇 차례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 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갈비집이었다. 고기 타는 연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 쉴 새 없이 고기를 뒤적이고,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볼이 미어지게 싸 넣은 상추쌈으로 격렬한 입 운동이 불가피한 거기. 남동생과 나와 어머니는 전쟁터 속의 병사들처럼 묵묵히,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돼지고기와 싸우다 거의 지쳐서 식당을 나오곤 했었다.
양귀자, 모순, 31쪽
- 나의 단어라면
마침맞다
- 단어를 찾은 곳
하지만 여기 이모네 외식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예약석으로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터의 몸에서는 달착지근한 향수 냄새가 풍겼고, 어딘가에서 직접 연주하는 듯한 잔잔한 피아노음은 우아한 선 남선녀들이 앉은 테이블 사이를 나지막하게 흐르고 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식탁보랄지 꽃처럼 접혀진 냅킨 같은, 세련된 테이블 세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이모부가 익숙하게 주문하고 마침맞게 하나씩 나오던 그림 같은 요리에 대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참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주눅 들어 하던 나이는 이미 지났다. 내 주머니 속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약소한 월급으로도 얼마든지 이 식탁을 책임질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니까..
양귀자, 모순, 15쪽
- 나의 단어라면
추신
가슴이 미어지다 라는 말이나, 사람이 미어 터진다 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미어지다라는 말을 기본의 의미로 쓰는 일이 많이 없구나 생각해서 단어를 보며 익숙하면서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저는 단어로 예문을 쓰려 생각해보면 단어가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보곤 하는데요, 왜인지 미어지다는 꽉찬 순대나, 바람이 잔뜩 들어간 돼지 오줌보같은게 생각이 났습니다. 미어지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추신 2
오랜만에 두개의 추신을 씁니다. 두번째 예문 속 영화는 Electric Dreams(1894)입니다. 사실 영화를 다 본것은 아니고 편집된 영상을 우연히 보았어요. 짧은대로 제가 그것을 마주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찾아보려구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