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겨먹으려면

꿈꾸듯이 글 짓기를 꿈꾼다

2025.01.29 | 조회 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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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무

당신의 마음에 활자를 새겨넣겠습니다.

(REM; rapid eye movement)수면 상태의 뇌는 깨어 있을 때만큼 바쁘게 활동한다. 안구 운동이 빨라지고, 심박수와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렘수면 상태와 달리, 렘수면 상태에서는 감정과 기억이 활발히 처리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자극이 반영되어 매우 생생한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렘수면 상태에서 꾼 꿈은 깨어난 후에도 구체적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꿈꾸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대강 다음의 과정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하나, 머릿속에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지 않도록 모든 문제를 일기장 안에 잡아두고 일정을 차분히 정리한다. (, 이 단계를 철저히 행하지 않으면 누워서 휴대폰을 손에 쥐고 끝나지 않는 밤을 시작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할 것.) , 침대 위에 몸을 이완시킨 후 눈을 편히 감는다. , 들숨과 날숨의 간격을 늘리는 데 집중하며 호흡한다. , 이제 잠에서 깨면 근사한 이야기 한 편이 뚝딱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위 세 가지 원칙만 잘 지킨다면, 그리고 당신이 꿈을 기억해내는 데 제법 능숙하다면, 약간의 노력만 가지고도 하루에 하나씩 글을 뽑아내는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물론 아무소설가가 아닌 좋은소설가가 되기까지는 약간 더 많은 노력이 들겠지만 말이다. 운이 좋다면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꿈들 사이에서 뜻밖의 연결고리를 찾아 초단편소설 하나 정도는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꿈에 대한 이러한 환상 때문에 나는 꿈을 기억해내는 데 실패한 날이나, 유혈이 낭자하여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혹은 겉보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네이버에 ‘OO 꿈 해몽을 검색해봐야 하는 종류의 꿈을 꾸는 날은 초장부터 울상이 되곤 한다.

 

지난 토요일에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이것은 어느 수족관에 놀러간 내가 닥터피시 어항에 손을 넣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내 방 매트리스만 한 어항에 손을 넣어 닥터피시에게 먹이가 되어주는 척 꾀다가, 잽싸게 손을 둥글게 오므려서 내 손을 문 놈들을 낚아올린다. 그러고는 이웃한 수족관에 있는 물뱀 두 마리에게 그걸 먹이로 주면 된다. 여기까지가 수족관장의 설명이었다. 물뱀에게 닥터피시가 밥이 되나요, 내가 되도록 의심을 감추며 물으니 관장은 닥터피시는 사람의 각질을 먹으니 영양분이 풍부하지요, 했다. 이것은 물뱀에게 내 몸뚱이를 먹이로 내어주라는 명령인가, 혹은 인간을 무는 닥터피시에게 복수하는 유치하고도 은밀한 수법인가.

이어 관장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불평을 시작했다. 뭣도 모르는 어린 애들이 여길 오면 꼭 저쪽에 있는 개구리 수족관에서 조그만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다가 물뱀들에게 먹이로 주면서 히히덕거린다고.

닥터피시가 다섯 손가락을 잘게 쪼아먹을 때마다 미약한 진동을 피부로 느끼면서, 나는 관장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주길 기다렸다. 어서 개구리가 있는 곳을 찾아 관장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기다림 끝에 물뱀 하나와 눈이 맞았다. 기회가 왔다. 물뱀이 눈짓으로 개구리의 위치를 알려줄 때까지 나는 끈덕지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물뱀은 영 눈치가 없어 보이고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 관장의 안내를 따라 곧 여길 떠나야 했다. 어딨는지도 모르는 개구리를 향해 달릴 준비를 마친 운동화 속 발가락이 닥터피시가 쪼아먹는 것마냥 근질거렸다.

나는 개구리의 몸이 눈코입에서 시작해 두텁게 살찐 몸통을 지나 마지막 뒷다리까지 물뱀의 혀뿌리 너머로 꿀떡꿀떡 사라지는 광경을 일으킨 후, 그것이 어느 얄궂은 어린이의 발칙한 소행이라는 듯 태연히 목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개구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관장은 내 얼굴 위에 재미난 이야기가 적힌 듯이 웃고 닥터피시는 내 다섯 손가락을 고르게 쪼아댈 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정확히 내 두 손, 두 발이 이불의 경계 바깥에 있었다.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턱 아래로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이불을 모아 움켜쥐고, 몸을 더 움츠려 발가락으로 이불 안쪽의 보드라운 면을 꼭 말아 쥐었다. 닥터피시에게 각질을 뜯기는 느낌은 정신이 완전히 들 때까지 한동안 지속되었다.

손이 시려서 닥터피시 꿈을 꾼 것인가, 스스로를 비웃으려는 충동을 억누르며 이불을 덮고서 잠을 이어가려 노력했다. 발이 시려서 그토록 간절히 개구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나.

다시 잠에 들어서 이번에는 내가 몰래 던져주는 개구리를 물뱀이 삼키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깨지 않고 버텨야 했다. 닥터피시와 물뱀 두 마리, 그리고 존재 여부가 확실치 않은 개구리가 사는 그 세계로 다시 걸어 들어가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손발이 반쯤은 이불 바깥에 있도록 걸쳐서 적당히 시리도록 해두었다.

그러나 이미 잠이 달아났다. 끝내 오지 않은 뒷이야기를 포기하고, 메모앱을 켜서 꿈을 기록한다. 그러다가 퍼뜩 꿈꾸는 내가 부러워진다. 소설이 꿈만큼 술술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자는 동안 나의 뇌는 조각난 시각적 이미지를 부조리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환각만큼이나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그 새벽, 나는 피부에서 감지된 촉각 신호를 반영하여 닥터피시의 촉각적 자극을 떠올렸고, 수족관이라는 가상의 장소를 만들어냈으며, 빈 공간을 가상의 인물과 동물로 채웠다. 거기에 약간의 재미 요소까지 더하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꽤나 그럴듯하게 조합하여 하나의 개연성 있는 장면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군데군데 끊긴 지점이 있기는 했으나, 사후적으로 흐름에 맞는 한두 문장을 추가하면 매끄럽게 구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 생각에 꿈을 정말로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외부 자극의 개입이다. 뇌는 수면 중에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는 동안 발생하는 물리적 자극을 꿈의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훌륭한 보정 작업을 거친다. 손이 시렵다는 느낌이 작년 가을 동물원에서 닥터피시를 체험했던 당시의 감각적인 기억과 맞물려, 수족관에서 닥터피시 어항에 손을 넣는 장면이 창작된 것처럼.

 

내가 꿈의 유려한 창작 능력에 감탄함과 동시에 그것과 대적해야 하는 나의 운명을 깨닫고 주눅든 것은 소설 쓰기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었다. 소설가는 글 쓰는 행위만으로는 감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없다. 단지 상상할 뿐이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에 타자를 치면서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는 연기를 할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구체적이고 더없이 생생해, 작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만. 꿈에서와 같이 외부 자극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서사를 전개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소설을 쓸 때는 언제나 생각이 감각에 앞선다. 따라서 감각에서 출발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상상력을 성취하는 것은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깨어 있을 때, 나에게는 손이 시려운 감각을 닥터피시에게 각질을 뜯기는 감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수준의 상상력이 없다. 발이 시려운 감각을 어딘가로 절실히 달려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과 연관 짓는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늘 소재 고갈의 위험에 노출되는 소설 쓰기와 달리, 꿈은 파편적인 기억들끼리의 재조합이기에 이야깃거리가 무한하다. 꿈에서는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 위험도 적다. 우연히 과거에 꾸었던 꿈과 비슷한 꿈을 꿀 확률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꿈보다는 현실에서 더 창작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 주 전부터 몸에서 이끼가 자라는, 더 정확히는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첫 몇 문단을 거칠게 휘갈겨 놓고 그 여자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봤다. 그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중인가. 나는 왜 하필 다른 시절이 아닌 지금 그를 붙잡은 것인가. 나는 그의 인생에 고통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과연 그럴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자질을 갖춘 인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끼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닥터피시 꿈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별다른 노력 없이 뚝딱뚝딱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꿈꾸는 나에게 심히 질투가 난다. 현실에서보다 꿈에서 더 창작을 잘한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일까, 슬퍼해야 할 일일까.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도 최면에 걸린 듯 렘수면 상태로 들어가 생시만큼 생생한 꿈을 꾸면 좋겠다. 꿈속의 감각이 타자의 소리와 촉감을 덮어버리면 좋겠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열 손가락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좋겠다.

 

렘수면 상태의 작가는 깨어 있을 때만큼 바쁘게 활동한다. 타자 속도가 빨라지고, 심박수와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렘수면 상태와 달리, 렘수면 상태에서는 감각이 상상을 앞지르기에 매우 생생한 소설을 쓸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렘수면 상태에서 쓴 소설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작가의 기량을 아득히 뛰어넘는 소설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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