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눈으로 사진 읽기

스투디움을 지나, 푼크툼에 닿다

2025.05.14 | 조회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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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무

당신의 마음에 활자를 새겨넣겠습니다.

사진을 볼 때 어떤 이미지는 흥미롭지만 금세 지나가고, 어떤 이미지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래 남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책 <밝은 방>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스투디움'은 우리가 사진을 통해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차원입니다. 피사체의 외양, 사진의 구도나 색감 같은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지요. 하지만 바르트가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푼크툼'의 차원이었습니다.

'푼크툼'은 사진 속 예상치 못한 세부, 아주 작은 무언가가 나를 불쑥 찌르고 들어오는 경험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도 의도하지 않았고, 보는 사람도 예상하지 못한 그것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건드릴 때 푼크툼이 일어납니다. 푼크툼은 이미지의 은밀한 침입입니다.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건드리고, 과거의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상처처럼 말입니다.

이 글은 제가 직접 촬영한 연극 커튼콜의 한 장면을 바르트의 시선을 빌려 바라본 기록입니다. 바르트에게 사진은 무엇보다 실재의 흔적이자,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불러오는 힘을 지닌 예술입니다. 무대 위에서 끝났던 커튼콜의 장면은 사진 안에서 되살아났고, 저는 사진을 매개로 무대와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

첨부 이미지

[사진 정보]

─  촬영자 :

─  촬영 대상 : 앙헬리카 리델의 연극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의 커튼콜 장면

─  촬영 시기 : 202552

─  촬영 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 사진에 나타난 스투디움의 차원

 

(1) 정보 제공의 차원

이 사진은 다국적의 출연진 구성, 동시대 연극의 실험성 등 다양한 세부 정보를 제공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총 아홉 명이며, 중앙에 서 있던 여성 배우가 무대 앞으로 나옴에 따라 무대의 구성은 왼쪽, 중앙, 오른쪽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배우들의 다양한 인종과 국적은 이 연극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주제로 함을 암시한다. 중앙의 세 배우 중 한 명은 상의를 입지 않은 채 긴 레이스 치마만을 입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기저귀처럼 보이는 속옷만을 착용한 채 의족을 차고 있어, 통상적인 무대 의상과 차별화되는 과감한 연출을 암시한다. 덧붙여, 오른쪽의 다섯 배우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으나 맨발인 상태로, 전통적 질서와 역할이 작품 안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이 전통적인 극작법과 형식을 탈피하는 실험적 성격을 지닌다는 정보를 전달하며, 동시대 유럽 공연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준다.

 

(2) 그리기의 차원

이 사진은 강렬한 단색 배경과 무대 세트의 색채적 통일성으로 인해 회화와 유사한 미적 효과를 준다. 커튼, 벽면, 바닥 등 배경 전체가 동일한 색채를 공유하고, 배경 위로는 배우들의 형상과 윤곽선이 부각된다. 일렬을 이루고 있는 배우들의 정적인 상태는 사진이 본래 지니는 2차원적 평면성을 강화한다. 이와 같은 시각적 구성을 통해 사진은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그린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회화적 아름다움은 사진의 본질이 아니다. 사진이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은 회화적 유사성이 아니라 실재의 흔적이며, 나는 사진 속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그들이 그 순간 분명히 존재했다는 인상을 느낀다. 사진은 커튼콜의 특정 순간을 연극의 한 장면처럼 정지지킨다. 이렇듯 피사체를 과거에 존재했던 것으로 정립하고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진은 회화보다 연극에 더 가까운 예술이다.

 

(3) 포착하기의 차원

사진상 가장 왼쪽에 있는 인물은 이 연극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앙헬리카 리델이다. 그는 무대 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워 이를 객석을 향해 던지기 직전의 찰나에 포착되었다. 리델의 몸은 약간 기울어 있고 오른발은 공중에 떠 있어, 다음 순간에 벌어질 사건 꽃이 한 관객에게 도달하고 객석에서 환호가 터짐 을 직관적으로 예고한다. 나는 이 사진을 통해 육안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순간을 성공적으로 붙잡았으며, 그 순간은 피사체인 리델이 자신이 찍히는 줄조차 모르는 사이에 포착된 것이다. 사진 속 꽃의 흔들림과 리델의 역동적 제스처는 사라져가는 순간을 붙잡는 사진의 기능을 잘 드러낸다. 역동적인 순간을 정지시킴으로써 이 사진은 관람자에게 시간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4) 의미하기의 차원

사진은 개별자가 특정한 사회적 마스크를 쓸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사진 속 배우들은 단순한 개별자라기보다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 존재로서 무대 위에 서 있다. 투우복을 입은 리델은 죽음을 무릅쓰는 실존적 인간상을,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은 배우는 역사적으로 주변화되어 온 인종을, 수염과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배우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예언자 또는 순교자를, 의족을 착용한 배우는 신체적 결핍으로 규정되는 장애인을 상징한다. 이들 각자의 정체성은 연극의 서사와 무관하게 사진 속에 나타난 복장, 신체적 특징, 자세, 표정 등 시각적 단서를 통해 관람자가 읽어낼 수 있는 익숙한 사회적 정체성의 코드이다. 이로써 사진은 개별자를 특정 정체성의 보편자로 환원시키는 의미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5) 욕망 불어넣기의 차원

이 사진은 무대 위 세계를 단지 감상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느끼게 한다. 강렬한 색채와 상징적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정적인 자세는 현실의 질서를 초월하는 세계를 만들어내며, 이 세계는 내 안의 무언가가 이미 알고 있는 장소인 듯 익숙하게 다가온다. 무대 위 세계는 나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데려가면서도 내가 미래에 도달하기를 꿈꾸는 유토피아적 세계, 즉 나의 기억과 상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배우들의 옅은 미소에는 경건하고 숭고한 분위기가 스며 있으며, 나는 묘한 익숙함(Heimlich)을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존재하고 싶어진다. 극중 리델은 고통과 아름다움, 영성과 폭력성 사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인간의 심연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고, 이 사진은 나로 하여금 리델의 연극이 만들어내는 환상적 세계에 감정적으로 귀속되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일깨운다. 이로써 이 사진은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욕망을 환기시킨다.

 

2. 사진에서 경험한 푼크툼의 차원

 

그러나 이 사진에서 나를 찌르는 것은 무대나 무대 위 배우들이 아니다. 푼크툼은 예상치 못한 세부 요소에서 나타났는데, 바로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어느 관객의 손가락이다. 처음에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점차 그 손가락이 어떤 형상을 연상시키는지 곱씹게 되었다. 사진을 반복적으로 들여다 보자 붉은 조명에 물든 세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환영으로부터 나는 극중 리델이 면도날로 자해한 후 자신의 피를 빵에 발라 먹던 장면을 돌연 떠올렸다. 그 장면은 내게 무척 강렬한 감각적 충격을 주었으며, 연극을 본 후 한동안 식욕을 잃고 악몽을 꾸게 할 만큼 나의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사진 속 손가락은 리델의 피와 자해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이 내게 남긴 강렬한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연쇄적으로 떠올리게 하여 나의 기억 전체를 불러낸다. 나는 그것이 리델의 손가락이라는 착각에 빠진 채 거기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선명한 환영을 본다. 나의 환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인사하던 리델이 돌연 내 쪽으로 걸어와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를 빵과 함께 삼키는 극적인 상상으로까지 나아간다.

사진 속 손가락은 내 의식의 지향성과 무관하게 나를 일방적으로 관통하고 덮치는 푼크툼이다. 촬영하던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았던 손가락이, 사진 전체를 잠식하며 나를 침범한다. 이제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면 어디선가 피 발린 빵을 씹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고, 빵을 씹으며 객석에 앉은 나를 노려보는 그 피할 수 없는 두 눈동자가 보이는 것만 같다. 그러한 환영은 리델의 피, , 눈동자 등 모든 것이 혼연하게 뒤섞인 감각을 불러온다. 거부할 수 없는 푼크툼의 차원을 통해 이 사진은 무대와 객석, 예술과 현실이 교차하는 경계로 나를 끝없이 소환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명명할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며 상처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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