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다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및 관객과의 대화 리뷰

2025.03.27 | 조회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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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무

당신의 마음에 활자를 새겨넣겠습니다.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김성용 예술감독 안무작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이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 올랐습니다. 작년 춤・사이 활동 당시 <인잇>의 공연 리뷰를 작성했었는데, 이렇게 같은 공연의 두 번째 리뷰를 맡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네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올해의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이 작년의 <인잇>과 달라진 점을 이모저모 발견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현대무용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인잇>의 공연 리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ncdc3472/223475488399)

22일 토요일 공연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어, 창작자와 관객이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놓치신 분이라면 이번 글을 더욱 집중해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의 공연 및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전해 드리겠습니다!0


먼저, 작년에 초연된 <인잇>과 달라진 세 가지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어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년에 관람하셨던 분이라면 새로워진 공연을 기대하시면서, 또 올해 처음 관람하신 분이라면 작년의 공연을 상상하시면서 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 첫째, 무용수들 개개인이 돋보이는 구성

초연된 <인잇>이 '하나의 유기체'와 같이 조화로운 전체의 모습을 강조했다면, 이번 <인잇: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무용수들 개개인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도드라졌어요. 전반부에서는 무용수 개개인이 움직임을 찾아가는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의 과정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이렇게 각자의 이야기와 역사가 담긴 움직임이 확장되면서 후반부에 이르러 무용수들의 몸이 전체로 융해될 때 더욱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신기한 것은 무용수들 한 명 한 명에 초점을 두도록 유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 전체를 메운 무용수들의 개별적인 움직임이 끊임없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무용수들이 직접 녹음한 낯선 언어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무용수들이 가진 다양한 배경을 무대 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어요. 전반적으로 아시아 무용수들의 서로 다른 몸과 말이 무대를 매개로 소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 둘째, 상상을 자극하는 열린 무대

초연된 <인잇>과 동일하게 무대 주위로 발과 링 모양의 조형물이 사용되었지만, 이번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은 무대 세트가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관객의 상상을 자극했습니다. 무용수들이 사라진 무대 위, 해가 떴다 지는 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밝은 조명과 함께 발과 링이 환하게 빛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때, 조명의 변화와 함께 무대 위에서 춤추던 여덟 개의 몸들이 함께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독특한 환영을 경험했습니다. 조명과 무대 세트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공연 내내 무대를 둘러싼 빛과 소리가 무용수들과 함께 일렁이는 것 같았어요.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 셋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프로세스 인잇'의 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김성용 예술감독이 개발한 무브먼트 리서치 방법론인 '프로세스 인잇'에 따른 움직임의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무용수들 각자의 내면에 잠재된 이야기를 수면 위로 이끌어내는 방법론인 만큼, 일상에서 감춰져 잘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서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내보이며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무대 배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하여 공연 중간중간 'I walk', 'I listen', 'I think', 'I decide'라는 네 개의 문장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는데요. 'I(나)'를 주어로 하는 간결하고 강렬한 문장들을 계기로, 무용수들이 내면의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무대 위에 불러내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에 문장이 하나씩 뜰 때마다 무용수들 간의 관계가 조금씩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며, 더 깊은 심연에서 움직임을 길어내게 하는 '프로세스 인잇'의 힘을 느낄 수 있었어요.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공연 사진 (c) 황인모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 의자가 놓이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는 김성용 예술감독유지완 음악감독, 누트나파 소이달라 무용수제이슨 옙 무용수가 참여하였습니다.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관객과의 대화 사진 (c) 정유진
2025 <인잇: 보이지 않는 것> 관객과의 대화 사진 (c) 정유진

 

Q1. 작년에 초연되었던 <인잇>과 달라진 점에 집중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작년과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성용 예술감독 : 먼저, <인잇>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DMAU(Dance Makes Asia become the Universe) 프로젝트아시아 무용수들이 함께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던 제 꿈을 실현하게 된 계기입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운영하는 현대무용 단체로, 아시아계 무용수들이 함께하는 장을 우리가 마련함으로써 제 꿈에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인잇>을 기획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지난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부제 없이 <인잇>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인잇’은 내면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는 의미와 함께 ‘프로세스 인잇’이라는 움직임 메소드를 함축하는데요. 작년과 달리 올해에는, 무용수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무용수들 각자가 지닌 장점을 무대 위에서 펼치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몸으로서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Q2.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실은 우리의 모든 몸짓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번 작품에서 선택하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

김성용 예술감독 :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뿐이지요. 무용수들이 프로세스 인잇의 방법론에 따라 움직일 때, 하나의 프레이즈를 변형시키는 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의 움직임이 어디에서 발생하여 어떻게 여운을 남기는지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Q3. 공연을 관람하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무대 세트의 건축성이었습니다. 천장에서 기다란 발이 내려와 무대를 양분하기도 하고, 링 모양의 조형물이 무대 전체를 압도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무대 세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김성용 예술감독 : 흔히 ‘무대’라고 하면 사방이 막혀 있는 벽 형태의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발을 통해 무대를 분할함으로써 완전히 막혀 있지도, 완전히 열려 있지도 않은 면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빛이 면을 형성하는 한편, 가지 못하는 공간에 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곳’ 중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고, 그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게 하는 무언가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의 경우 원형의 형태로부터 영속성의 의미가 도출되면서도, 한 부분이 끊어져 있으며 속이 비워져 있습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끊어진 것과 비어 있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일지를 상상하게 하고 싶었고, 저는 무대 위 무용수들이 바로 그러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무대 세트의 건축성은 무용수들이 사라지고 음악만이 남은 무대에서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던 무대를 상상하면서 관객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순간, 무대 세트의 건축적 요소가 빛을 발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4. 무대 세트의 건축성과 더불어 작품에서 눈에 띈 것이 바로 음악이었는데요. 음악을 만드실 때 가장 많이 고려하셨던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음악에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완 음악감독 :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의 목소리를 넣어달라는 김성용 예술감독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와 어떤 목소리를 담을지 고민한 끝에, 무용수들이 자기 이야기를 독백으로 말하는 것을 녹음하기로 했어요. 무용수 본인의 목소리와 음악 안의 소리 들이 움직임과 만나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작업했습니다. 낯선 언어의 소리에 의해 춤을 추는 장면과, 목소리와 목소리가 한데 섞이는 순간의 그로테스크함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Q5. 마지막으로, 무용수 두 분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두 분께서 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나아가 작품이 끝나고 나서 자신의 춤에 무엇이 남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제이슨 옙 무용수 : 이번 작품에서 저는 제 개인적인 배경이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나’로서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험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아시아적 정체성이 만들어졌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그 정체성만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몸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것 같아요.

<인잇> 작업을 계기로 저는 제 예술가적 자아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요. ‘프로세스 인잇’의 특성상 저의 내면을 드러내고 무용수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즉흥적인 움직임을 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들에 대한 신뢰를 얻었어요. 예술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무용수로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표현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누트나파 소이달라 무용수 : 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춤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라오스에서는 현대무용이 체계적으로 발달해 있지 않아 혼자 춤을 춰 왔던 터라, 다양한 국가에서 온 뛰어난 무용수들을 보고 처음에는 겁을 먹었었어요. 그러나 무용수들과 같이 작업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춤추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시아 무용수들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 작품 <인잇: 보이지 않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프로세스 인잇'의 방법론, 나아가 현대무용 전반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어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인잇: 보이지 않는 것>의 공연 리뷰를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 | 국립현대무용단 커뮤니케이터 춤・사이 2025 정유진

사진 | 황인모, 국립현대무용단 커뮤니케이터 춤・사이 2025 정유진


첨부 이미지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보이지 않는 것>

2025.3.21(금) - 23(일)

금 7:30 PM, 토일 3PM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김성용

연습감독 위보라

음악감독 유지완

드라마터그 사코 카나코

무대디자인 유재헌

의상디자인 최인숙

조명디자인 이정윤

제작무대감독 조윤근

연습통역 김민정

프로세서 강승현, 김나의, 누트나파 소이달라, 바이 리 비그만스, 응우옌 하 록, 제이슨 옙, 조셉 추아, 창걸한

 

*

윗글은 국립현대무용단 커뮤니케이터 2025 ‘춤・사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국립현대무용단 공식 블로그에 업로드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으며, <인잇: 보이지 않는 것> 예술감독 및 드라마투르그의 글, 연습실 참관 리뷰, 오픈 워크숍 리뷰, 런스루 현장 클립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ncdc3472/223810439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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