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빚쟁이다

꾸어 쓰는 인생에 관한 단상

2025.01.15 | 조회 289 |
0
|
글나무의 프로필 이미지

글나무

당신의 마음에 활자를 새겨넣겠습니다.

글을 쓸 때는 늘 빚을 진 기분이 된다. 그간 수없는 작가들에게 빚지며 글을 써왔다. 그들의 문장을 고스란히 만년필로 옮겨 적고, 기억 어딘가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따금씩 그 느낌을 흉내내어 글을 쓴다. 빚짐을 거듭하다 보면 내 글에 애당초 주인이 없던 줄로 착각해 버리는데 나는 이것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빚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즐기는 것 같다.

 

요새 필사노트와 문학사전을 곁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필사노트에는 책에서 발견한 좋은 구절을 만년필로 옮겨 적고, 문학사전에는 기억하고 싶은 단어나 구절을 차곡차곡 모아둔다. 단어나 구절만을 빚지려는 행위는 봐 줄 만하다 쳐도, 필사는 아주 대놓고 글을 빚지는 행위이다. 이건 빚짐보다 훔침에 가깝다.

문장 수집 – 내게는 이것이 ‘문장 훔침’을 순화한 말로 들리는데 – 을 주제로 한 김겨울 작가의 온라인 강연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을 때(예컨대 책 전체일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한강의 소설이나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가 내게 그러하다. 이에 작가는 답했다. “저는 좋으면 다 썼어요. 마음에 들면 그냥 다 적었어요!” 화면에 비친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빚짐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강연에 참석했던 나는, 뺨주머니 가득 도토리를 욱여넣는 다람쥐처럼 마음에 드는 구절을 모조리 품안에 저장할 그럴듯한 명분을 그날 얻었다.

모든 문장은 고유의 발걸음으로 내게 온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문장을 기억할 때 나는 문자의 배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은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가슴을 훅 하고 후려쳐 상흔을 남기고, 또 어떤 말은 살금살금 걷다가 나를 은근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 대범함, 수줍음 따위의 태도를 나는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다 제때를 만나면 내 글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그러한 태도이다. 드문 일이지만 문장에서 냄새나 소리가 감지될 때도 있다. 킁킁거리면서 읽는다거나 귀를 쫑긋거리면서 읽는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할 따름이다. 아무튼 그러한 냄새나 소리에 대한 기억이 내 글에서 불쑥 제 존재를 드러낼 때도 있다.

 

나의 빚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어디까지 빚지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 채 나날이 빚이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빚짐에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빚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는가. 빌린 돈을 갚듯 빌린 글을 갚아야 하는가. 벌어서 갚을 수 있는 돈과 달리 글은 써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꾸어 준 이가 나의 글을 원하지 않으면 나는 그에게 글을 갚을 수 없을 것이기에. 바로 이것이 내가 나의 빚짐을 쉬이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글을 꾸어 쓸 수 있음에 진정으로 고마워하기라도 했는가. 아니, 누구에게 얼마나 빚졌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고마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득 생의 뒷면에도 글의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생전에 글을 빚졌던 이들이 날 찾아와 글을 갚으라며 독촉한다. 그러면 나는 언젠가 쓰려고 묵혀 둔 내 ‘장독대’ – 이 또한 출처 미상의 빌린 표현이다 – 폴더 안에서 채권자 마음에 들 만한 문장을 몇 개 꺼내서는, 핼끔핼끔 눈치를 보며 하나씩 들이미는 것이다.

내 필사노트와 문학사전에 글을 올린 모든 이들이 나를 찾아와 내 앞에 명명백백한 증거를 들이미는 상상.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마냥 머리를 조아려야겠지. 이걸로 그치면 다행이다. 설혹 채무 노예가 되어 영원히 문장만을 뽑아내며 고통받아야 하는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찰나의 계기로 어떤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걸음마다 피어오르는 문장을 단번에 움켜쥐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그럴 땐 일단, 어딘가에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문장을 나의 세계에 들여도 되는지 잠시 고민한다. 이 구절을 내가 어디에서 봤던가, 고민하는 새에도 시간은 흐른다. 어딘가에 공고히 붙잡아두지 않으면 그것은 몇 분 후 흩어져 버릴 운명이다.

곧이어 나는 그 운명이 가여워지기에 이른다.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만, 일단 나의 품에 들어온 그 말을 누군가 훔쳐갈 것만 같은 긴박함을 참을 수 없다.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감히 그 문장을 포착하겠다고 마음먹고서 나의 ‘장독대’ 안에 넣어둔다. 여전히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그러다가 내가 새 주인이 되어주고 싶을 때가 오면 그걸 내 멋대로 갖다쓰는 것이다.

 

남의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다가 내 나무에 얼기설기 꿰어놓아도 되는 것인가. 그런 나무에도 열매가 맺히기는 하는 것인가.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한순간에 꺾여버릴 목숨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남의 나무에서 훔쳐온 가지에 내 나무의 색을 입혀 소유하는 것에 얼마간 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빗물이 나무를 씻어내려 본래의 색이 드러날 어느 날이 종종 두려워지곤 한다. 이것이 정말 나의 글인가? 지금이라도 본래의 주인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훗날 누군가가 나의 글을 빌리러 온다면 나는 너그러이 나의 글을 빌려줄 것이다.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빌려줌으로써 이 막대한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글에 바칠 것이다.

영영 변제할 수 없다면 나의 죄는 채무 불이행이 아닌 절도가 된다. 그것만은 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글나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글나무

당신의 마음에 활자를 새겨넣겠습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