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단상]0004 - 차나무
0004.제 몸은 지상에 둔 채 모습을 바꾼다
-섬진다원 백차우전, 백차세작
100년 이상 자란 오래된 야생 차나무에서 만든 차를 고수차古樹茶라 부른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자란다. 수확량이 적고 채취 과정이 쉽지 않다. 희소성이 높고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맛과 향이 매우 깊고 부드러우며 찻잎이 두껍고 차액의 색깔이 진한 편이다. 발효차로 많이 만든다. 유통량이 적어 최고급 차로 평가받는다. 중국 전통 차는 이토록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차문화의 모습을 자랑한다. 은근하게 기호를 다그치는 중국차의 위세에 주눅든다. 뭐, 다양하지만 차인들이 그려내는 호불호의 경험치에 기대어 차를 만난다. 중국 남쪽의 차나무는 교목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로서는 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재배하는 차나무는 관목이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채차하는 풍경은 없다. 서서 숙이면서 채차한다. 곡우 전에 채차한 찻잎으로 제차하면 우전이다. 곡우 지나 찻잎이 커졌을 때 세작, 중작, 대작으로 잎차의 모양에 따라 분류한다. 그외에도 가공 방법에 따라 발효차, 반발효차, 불발효차가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 이름을 하나씩 붙여서 세상에 모습을 드려낸다. 반발효차와 불발효차 사이에 약발효차도 있다. 백차가 약발효차이다.
섬진다원에서 만든 백차 시음 자리에 걷기 힘든 다리 통증, 회복 중인 상태로 나선다. 오래 전부터 섬진다원의 차는 아는 이들끼리 아끼고 숨겨가면서 음미하던 차로 정평이 났다. 이번 백차는 제품의 완숙미가 고스란히 담겼다. 명차의 반열에 들었다. 백차우전과 백차세작을 우렸다. 처음 백차우전에서 잠자고 있던 온몸의 세포가 먼저 반응한다. 여기저기에서 총력을 다하여 쭈삣하며 들고 일어난다. 이게 뭐지! 하면서 집중한다. 맑아서 자취가 없다고 여겼는데 점점 미궁의 맛이다. 에전 중국의 백차는 호기심처럼 몇 번 긍정한 적 있었지만, 섬진다원 백차우전은 품격을 갖췄다. 백차세작은 빠르게 자신을 풀어낸다. 그런데 어쩌랴! 자꾸 백차우전으로 되돌아간다. 일찍이 제 몸을 풀어 이토록 간결하고 맑으면서 깊고 그윽한 청량의 세계로 인도한 차가 있었나 싶다. 유현幽玄하다. 이 정도면 주변 차인들에게 아주 귀한 선물로 보낼만한 보물급 차이다. 얼른 몇 사람이 떠오른다. 늘 차를 가까이 하는 분들이다. 청하려 한다. 올해 만든 섬진다원의 백차우전의 깊이를 살펴보자고. 알 수 없는 그윽한 청량감에 무슨 서사를 더할 수 있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