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스모님 😈
벌써 또 한달이 호로록 지났네요. 지난 편지에서 무더위로 고생중이라고 하셨는데, 이 편지가 도착하는 날에는 조금이라도 시원한 하루를 보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날씨 어플을 보니 요 며칠 뉴욕에 비 소식이 있더라고요. 여름비가 뜨거운 땅을 조금이라도 식혀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코스모님이 점점 프로 '아마추어' 창작자로 나아가시는 동안 저는 어느덧 새 회사에서의 두달째를 맞이했어요. 이제 프로세스도 사람들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아 이런 게 있었어? 전혀 몰랐었네' 하는 당황스러움을 마주할 때도 있으니, 적응 역시 성장처럼 계단식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일을 하면서 제가 자주 떠올리는 문장은 "나다움이 대체 뭘까?" 라는 거예요. 회사원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창작의 영역을 함께 다루는 직무이다보니 늘 '새로운 시도'와 '자기만의 색깔'에 대한 챌린지를 받는 편이거든요. 특히나 지금 있는 팀의 팀장님이 '새로움 추구' 성향이 높은 분이라, 경력직으로 이직한 저에게 '기존에 우리 회사에서 없었던 새로움'을 많이 요구하고 계세요. '저만의 색깔이 담긴 연출과 콘텐츠'도요.
그럴 때마다 저도 "짜잔- 여러분 이런 것 잘 못보셨죠? 기발함과 신선함을 여러분께 선사합니다!" 하고 새롭고 그럴듯할 무언가를 내어놓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일단은 큰 회사답게 세분화된 프로세스와 절차가 많은 편이라 처음에는 그것들을 익히는 데에도 살짝 버거움을 느꼈어요. 설상가상으로 저는 기계나 툴을 익히는데 평균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고,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것도 빠르게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리고 안전지향적인 저의 성격상, 스스로가 기존 체제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나서 그 안에서 필요한 변주를 시도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런데 팀장님 생각은 달랐어요. 뭐든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각 자체가 줄어들수밖에 없으니 아직 외부인의 낯선 관점이 많이 남아 있을 때 새로운 걸 하는 게 좋다고요. 그리고 그 새로운 건 뭔가 세상에 없는 걸 하라는 게 아니라 제 스타일, 제 색깔을 보여주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오래 전부터 여러번 스스로에게 건네봤지만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던 바로 그 질문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이요.
"그래서 대체 나다운 게 뭔데??? 그거 어떻게 아는 건데??"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감성과 인테리어로 큰 인기를 끈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대체 어떤 사람이 만든 걸까 저도 궁금했었는데요. ‘료’님이 말하길,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고 관찰하는 시간 역시 절대적으로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로도 옮겨가서 다른 사람들은 뭘 입고 뭘 먹고 뭘 좋아하는지를 습관처럼 관찰해왔다고 해요. '료'님은 이러한 관찰을 "세상을 만지고 다녔다"라고 표현했는데, 엄청나게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 시간들이 아주 오래 쌓여서 내가 어떤 것들을 아름답게 느끼고 가치있게 여기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거죠. 그 감각은 무언가를 기획하고 결정하는데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었고요.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해보았나?' 곰곰이 되돌아보니 늘 어떤 티핑 포인트를 넘기지는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작년에 처음으로 갭이어의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주로 저의 성향에 관한 것이었고 '내가 무엇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무엇을 열망하는지'에 대한 탐구와 관찰은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 전에 썼던 일기나 포스팅, 사진들을 들춰봤는데요.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지, 이런 시선을 갖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그때 봤던 전시, 영화, 공연, 먹었던 음식과 방문했던 장소의 조각들이 뒤섞여 머릿속에 어떤 심상들이 그려졌어요. 다만 그 기록들이 듬성듬성해서 지금은 바뀐 부분도 많고 연속적인 변화의 흐름을 발견하긴 어렵더라고요.
'나다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어떤 창작물로까지 연결시키는 건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주변 세상을 진심어린 호기심으로 진득하게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겠죠. 무엇보다 생각만 하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기록해야 의미가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아요.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의 많은 일들에 시큰둥해져서 신기함에 탄성을 내지르는 일도, 호들갑을 떨며 찍은 사진들로 사진첩이 가득 차는 일도, 벅차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일기장에 쏟아놓는 일도 점점 줄어들어요. 물론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말랑해져보자고, 한번 더 기꺼이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어보자고 다짐합니다.
아, 지난달 편지에서 다음 달에도 제가 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면 호되게 꾸짖어 달라고 했었던 것 기억하시죠?ㅎㅎ 다행히 이번 달부터 다시 필라테스를 등록해서 매주 두세번씩 수업을 듣고 있어요. 수업이 끝나고 나면 늘 팔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기분은 꽤 상쾌해요. 체력적인 여유가 마음의 여유와 일의 여유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내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려고 합니다..!
아직 더위가 가시려면 한참 남았지만, 되돌아보면 매년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때마다 '벌써 여름이 다 갔나'하며 괜히 섭섭함 마음이 들었어요. 그 어떤 시간도 지나고 나면 늘 아련하고 아쉬운 법이잖아요. 다시 오지 않을 2025년의 남은 여름도 힘내어 즐겨보아요, 우리 :)
최근 회사 앞 카페의 수박주스에 빠져버린,
수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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