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20호] 수야가 코스모님께

나를 위한 사치를 반드시 해야하는 이유

2025.08.28 | 조회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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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ave

서울과 뉴욕에 사는 두 여자가 매달 주고받는 편지로 삶을 나눕니다. #문화예술 #책 #일

*이번달 뉴스레터에 편집 오류가 있어서 수정본을 재발송합니다. 여러번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독자님들께 메일을 두번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첨부 이미지

 

안녕하세요 코스모님😈

 

이번달 편지에서는 탁 트인 이탈리아 산악지역의 풍경과 상상만해도 평온해지는 코스모님의 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잠시 대리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 사실 저는 올해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거든요. 이직한지 얼마 안되어 아직 휴가가 몇 개 없는데 하반기에 연차를 써야할 일들이 조금 있어서이기도 하고, '일의 적응과 일상의 안정화가 먼저지' 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위한 휴식과 즐거움을 뒤로 미뤄뒀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직한지 이제 3개월에 접어드는 시점이 되니 생각보다 지친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회사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가 부쩍 건조하고 생기가 없어져버린 내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럼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쉬거나 여행을 가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재충전을 하면 되잖아?" 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할 거예요. 그러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이 지금의 나에겐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이번달 FW 화보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스튜디오. 큰 창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채광이 좋았어요. 바쁜 와중에 잠시나마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달까요.
이번달 FW 화보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스튜디오. 큰 창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채광이 좋았어요. 바쁜 와중에 잠시나마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달까요.

적응의 여부와 관계없이 회사 업무는 늘 바쁘고 어렵기 마련이니, 그것이 생기를 잃은 핵심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고요. 아주 오랫동안 오늘의 즐거움보다 내일의 준비를 위한 의무와 강박 속에 살다보니, 순수한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는 감각이 퇴화했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저의 진단이에요.

사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 아니, 좋아했어요. 멀리, 길게 떠나본 것이 이미 코로나 이전의 일이니까요. 펜데믹 전까지만 해도 여느 또래들처럼 1년에 한두번 정도는 낯선 나라로 떠나는 걸 좋아했고, 생경한 풍경과 문화를 잠깐이나마 경험하는 일은 스스로를 진심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해줬죠. 저는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이기 때문에 가끔 가는 여행이 나를 위한 유일한 사치였어요.

그러다 서른이 넘은 어느 시점에 독립을 하게 되었어요. 그 해에는 난생 처음 혼자 사는 생활을 즐기고 꾸리느라 바빠 여행을 못(안)갔고, 이제 다시 어디로 가볼까? 하던 찰나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그 후로 몇 년간은 하늘길이 원활치 않아 자의반 타의반 미루게 되었고, 어느 정도 종식이 되고 나서는 잠깐 일본에 다녀왔던 것을 제외하면 스스로 만족할만한 여행다운 여행은 하지 못했죠. 제가 정말로 원하는 여행은 나에게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낯선 문화권으로 떠나 그 낯섦과 부딪히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주말에는 종종 요리를 해먹곤 해요. 버터치킨 카레를 처음 만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먹을만 하더라고요..! :)
주말에는 종종 요리를 해먹곤 해요. 버터치킨 카레를 처음 만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먹을만 하더라고요..! :)

대체 왤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마주했어요. 쉽사리 여행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라는 것을요.

독립과 펜데믹을 겪으며 안정된 주거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저의 깨달음과는 별개로 자산 시장의 양극화는 심화되며 내가 가진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감각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불안과 함께 찾아온 안정을 위한 갈망은 일단 무조건 절약하고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켰고,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소비에도 인색해졌죠. 원래도 낭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더더욱이요. 실제로 코로나 이전보다 여행에 드는 비용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이것이 작년에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 갖게 된 긴 방학에도 나를 위한 여행을 훌쩍 떠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예요. 시간의 여유는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돈을 쉽게 못 쓰겠더라고요.

아마 경제학적으로 저는 잘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수많은 경제 유튜버나 자산관리사, 투자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핵심이 '현재의 편리와 쾌락을 통제하여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지난주에 갔었던 JVKE 의 첫 내한공연. 남자친구와 저에게 의미가 있는 아티스트라,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티켓팅을 했었는데요. 무대가 기대보다 훨씬 알차서 공연 내내 즐거웠답니다.
지난주에 갔었던 JVKE 의 첫 내한공연. 남자친구와 저에게 의미가 있는 아티스트라,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티켓팅을 했었는데요. 무대가 기대보다 훨씬 알차서 공연 내내 즐거웠답니다.

늘 이 소비를 했을 때 얼마만큼의 실질적 효용이 있는지 값어치를 가늠하는 일, 아끼고 절약하는 일만을 반복하면 사람은 스스로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감각에 소홀해진다는 것이 최근 몇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바예요. 물론 소비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나 사회적 연결감 등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각"은 비물질적인 영역에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특히 그 어떤 관계보다도 나 자신과의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하핫, 편지를 마무리하려다보니 오늘 제가 레터에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우리 레터의 주제와 맞는 것인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데요. 누군가에게는 '뭐야? 본인이 저축한다고 해외여행을 안하는 선택을 하고서는 어쩌라는 거지? 평생 여행 한번 제대로 못가는 사람도 많은데 복에 겨운 소리 하네' 라고 들릴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타닥타닥 자판기를 두드린 걸 보면 한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나봐요.

여행을 하는 것이든 공연을 보는 것이든 운동을 하는 것이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든 간에 나를 위해 비용과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쓸 줄 아는 사람이 더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한 일이고, 어느 정도는 때가 있는 법이라 마냥 미뤄서는 나중엔 더 어려워진다는 걸 말하고 싶었답니다.

우리는 나와 잘 맞는 일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잖아요. 돈과 나의 관계를 가능한 건강하고 현명하게 정립해야, 진짜 내가 원하는 삶과 일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더 또렷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요.

 

다가오는 가을에는 시원해진 바람만큼 마음도 더 시원해지기를 바라며,

수야 드림🌿

 


P.S %NAME% 님의 '스스로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사치'는 무엇인가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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