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야님,
그동안 수많은 업무용 이메일을 작성해왔지만, 이렇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설렘은 참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지난번에 질문해주신 '갭이어'라는 멈춤의 시간이 가져온 변화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올해는 정말 멈춤과 시동걸기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최근의 멈춤은 올 봄 스타트업과의 짧은 인연이었죠. 퇴사 후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던 다짐과 달리, 기회가 찾아왔고, 팀의 에너지와 미션이 좋아서 결국 합류하게 됐어요. 아쉽게도 서로의 핏이 잘 맞지 않아 생각보다 빠르게 끝맺음을 하게됐고, ‘최소 2년은 최선을 다해보겠어!’ 다짐했던 마음이 무너졌어요. 그렇게 찾아온 방황의 시간 끝 7월의 어느 여름날, 포르투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워크샵에 일주일간 참여하며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유럽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하루 종일 창작하고 떠들며 내면에 창작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르는 것을 느꼈죠.
뉴욕에 돌아와 내것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한국의 커뮤니티 HOC에 참여해 콘텐츠로 제 이야기를 알리는 일을 도전했어요. 그런데 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전하기 위해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 했죠. 저는 퇴사 후 정말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궜는데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불안감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넓은 범위로 경험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았지만, 각각의 경험이 깊이 있게 쌓이지는 못했거든요. 그러다 문득 제 일상을 들여다보니, 누가 보지 않아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고 있는 건 비주얼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작업들이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시각적인 디자인을 통해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요. 사실 이건 제가 퇴사 직후 품었던 첫 번째 꿈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시 그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자 다짐했죠. 천천히 가더라도 단단한 뿌리를 내리면서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 일을 꾸준히 해보자고요.
의도적인 멈춤의 시간을 가지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 있다면 <연결의 가치>인데요. 퇴사 전부터 퇴사 후에도 한동안은 혼자 동굴속에서 끙끙 앓았어요. 동료나 친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의도적으로 고립된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정말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관련 커뮤니티를 찾았어요. 런던의 Careershifters라는 커뮤니티에서 커리어 전환과 관련된 고민을 나눌 동료들을 만났고, 일상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한국의 밑미에서 다양한 리추얼에 참여했어요. 그 외에도 수야님을 만난 조쉬님의 글쓰기 클럽, 커뮤니티 빌더를 위한 Fabrik, 해외에서 일하는 이방인 여성들을 위한 투룸메이트 등 다양한 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네요! 불확실성과 마주해야하는 시간은 여전히 외롭지만, 혼자가 아니라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1년이라는 시간을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면서, 의외의 선물을 받았어요. 바로 제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었죠. 그동안 제가 얼마나 타인의 인정을 갈망했고, 그로 인한 강박에 시달렸는지 깨달았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에는 늘 주저하고 망설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갭이어를 보내며 깨달은 건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갭이어 초반에는 제 다음 커리어 스텝이 무엇인지 주변에서 계속 물어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때부터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이제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나 인정보다, 스스로를 온전히 인정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매 순간 더욱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답니다.
최근 제 여정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일들이 생겼어요. 한국에서 난임 여정과 우정을 나누는 따듯한 커뮤니티 '오케이키'의 브랜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맡게 된 거예요. 난임을 겪는 여성들을 응원하고 서로 의지 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라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잘 맞았고, 그래서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뉴욕의 한 개발자 친구와 함께 뉴욕의 로컬 스몰 브랜드들의 성장을 돕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기술과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결합을 통해 웰니스, 커뮤니티, 문화예술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작은 꿈이 되었답니다.
2024년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수야님은 어떤 일들을 기대하고 있으신지 궁금해져요! 저는 곧 짝꿍의 비즈니스 트립을 따라 런던에 다녀올 예정이에요. (언젠가는 제 비즈니스 트립으로 런던에 갈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 박물관에서 스케치도 하고, 워크샵이나 이벤트에 참여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다 보니 편지가 에세이처럼 길어졌네요. 하지만 앞으로 매달 나눌 우리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답장 기다릴게요.
뉴욕에서,
코스모 드림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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