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스모님😈
지난주에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아보았어요. 걱정해주신 것처럼 한국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어수선합니다. 아마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모쪼록 많은 것들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이렇게 바깥 세상이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스스로의 내면을 어지럽지 않게 잘 돌보아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코스모님이 손수 만드셨을 예쁜 엽서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어제 막 크리스마스가 지났으니 엽서들은 각자의 주인을 찾아갔겠지요?
연말에 특별히 하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매해 조금씩 달랐던 것 같아요. 연말 여행을 갔던 적도 있고, 연말 파티를 빙자한 이런저런 약속들을 잔뜩 잡았던 적도 있고,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많이 보냈던 적도 있어요. 올해는 대체로 차분하게 보내는 중입니다. 아, 이번달 초에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찰리푸스가 내한해서 콘서트에는 한 번 다녀왔었네요. 오랜만에 간 대규모 콘서트라 떼창의 에너지를 받으며 즐겁게 놀다왔답니다 :)
그리고 그 사이에 새로운 소식이 또 하나 생겼는데요. 지난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기존에 하던 콘텐츠 제작 업무 베이스에 새로운 직무 영역이 조금 추가되었고, 산업군은 처음 경험하는 필드로 바뀌었답니다. 팀 스피릿과 비전이 좋고, 무엇보다 성장하는 산업군과 경험해보지 못한 조직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서 합류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생각지 못했던 타이밍에 갭이어를 갖게 되었던 것처럼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일을 하게 된 셈인데요. 역시 삶이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난 7, 8개월 가량 소속없이 지내면서 일회성 아르바이트와 몇몇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경험했었거든요.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점이 있는데요. 당장 프리워커의 형태로 일을 하기보다는 나의 업을 정교하게 다듬고 정렬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핵심역량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 속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벼르고 싶은데, 아직은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팀 단위로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감각을 좋아해서, 조금은 더 조직 안에서 일하고 싶다는 내 안의 솔직한 마음을 확인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편견없이 배우는 자세로 새로운 업무에 몰입해볼 예정이에요.
돌아보니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올해도 역시나 감사한 깨달음이 가득한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가져본 갭이어의 시간에서 몇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요.
첫번째는 나 자신의 심리적 바닥을 확인했다는 거예요. 불안, 강박, 위축됨, 나약함 같은 그리 멋지지 않은 내 안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이러한 마음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러니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자의식이 한꺼풀 벗겨져 나가면서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나는 언제든 실패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두번째는 새로운 의사결정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바로 자기주체성, 문제해결력, 회복탄력성이에요. 앞으로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는 이 세가지를 점점 더 강화시킬 수 있을지를 선택의 기준으로 둘 생각이에요. 커리어는 물론이고 삶의 전반에서 꼭 필요한 힘들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지난달 편지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인데요. 과정을 즐기는 긴 호흡의 가치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나에게 꼭 맞는 일이 어떤 오롯한 이상향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단박에 찾아지거나 금방 손에 넣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요. 현재 나의 결핍과 열망을 채우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며 매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잘 맞는 일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될 거라고 믿어요.
코스모님께 받게 될 다음 편지는 2025년 새해로부터 오겠군요! 모쪼록 며칠 남지 않은 2024년의 날들 따뜻하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랄게요. 좋았던 것은 야무지게 잘 챙겨두고 아쉬웠던 것은 미련없이 보내주기로 해요.☺️ 그래야 그 빈 자리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일들이 깜짝 손님처럼 찾아올 테니까요.
세밑 한파가 찾아온 서울에서,
수야 드림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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