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스모님😈
코스모님의 첫 편지를 받은 지 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났네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런던 여행은 어떠셨을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서울의 가을은 유독 따뜻하고 긴 편이었는데요. 이번주부터 부쩍 추워지면서 이제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모양이에요. 주변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곳들도 많아지기 시작했고요.🎄🎅🏻
지난주에 코스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올해 만난 멈춤의 시간을 되돌아봤어요. 일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었는데도 저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봄까지도 한참 신나게 일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갭이어라 더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처음에는 이 기간이 길어질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바로 구직활동을 했죠. 그런데 핏을 맞출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아니, 그동안 쉼없이 열심히 살았고, 내 커리어에 방향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지?" 혼란스럽기도 했고요. '그래도 여기라면 잘 일해볼 수 있겠다' 싶었던 곳과 최종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을 때, '이 시간은 이직 사이의 짧은 텀이 아니라 갭이어로 생각하는 게 맞겠구나' 하고 인정하게 됐던 것 같아요.
긴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일을 멈추는 순간은 올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타이밍과 방식을 제가 주체적으로 정하지 못하고, 타인과 상황에 의해서 원치 않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저에겐 충격과 상처이긴 했나봐요. 그러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잘 돌봐주는 시간을 먼저 가지면 더 좋았을텐데, 몇달 전의 저는 그걸 몰라서 여유없이 스스로를 몰아치기만 했었네요.
그런 측면에서 갭이어를 보낼 때 꼭 필요한 가치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할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금 나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필요했던 것이 빠른 이직이 아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며 그동안의 커리어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처럼요. 정신없이 달려오며 조금씩 어긋나있던 내 안의 추를 다시 영점에 맞춰야, 더 정확한 방향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의 비중은 최소화하고, 빈 캘린더에 무언가를 채워한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그냥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봤어요. '사람이 아무도 안 시키고 아무도 안 볼 때도 하고 있는 일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제가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뭔가 보니, 사람 만나고 책을 읽는 일이더라고요.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링크드인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SNS 에서 평소 궁금했던 분들, 새로 알게 된 분들께 커피챗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서 대화를 나누었어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나누면서 연결되는 느낌이 좋아요. 코스모님과 나눈 대화들 역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스스로에게 갭이어라는 시간을 허락하고 다양한 도전과 배움을 시도하는 코스모님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도 받았고요.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지만 시간이 많아진만큼 독서량도 좀 더 늘었는데요. 도서관과 대형서점, 중고서점, 독립서점 가리지 않고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드나들고 있어요. 장르불문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짧은 단상들을 기록해두기도 해요. 기록을 들춰보니 최근에는 뇌과학, 마음건강, 회복탄력성 등의 주제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도서들을 많이 읽었네요.
그리고 지난달 말부터 이번달 중순까지는 <오프 더 레코드> 전시의 프로젝트 크루로 활동하는 경험도 했어요. 리추얼 커뮤니티 플랫폼 밑미에서 기획한 ‘기록’을 주제로 한 전시였는데요. 다양한 관람객 분들을 만나며 오프라인 콘텐츠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개인의 진솔한 기록'이 주는 힘을 느끼기도 했고요. 코스모님도 기록자로 참여하셔서 그 기록을 직접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죠 :)
전시 운영에 참여하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이 “나는 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거였어요. 돌아보면 대학 시절 내내 몰입했던 동아리 활동부터 10여년간 해온 업무들이 모두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프로젝트를 하는 일이었거든요. 분명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크지는 않았던 걸 보면, 저는 서로 부딪히고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일을 멈춘 기간동안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꼈던 포인트가 바로 이 감각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선택하든 서로 다른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시너지를 포기하진 못하겠다는 예감도요.
이렇게 차곡차곡 나와의 시간을 쌓아나가다보니 어느덧 올해가 한달 남짓 남았네요. 매년 이맘때 즈음에는 "뭘했다고 올해가 벌써 이렇게 가나" 싶은 마음에 괜히 허무해지고 조바심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일을 많이 하지 않았던 올해를 돌아보며 이러한 감정을 가장 덜 느끼고 있어요. 아마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은 더 길게, 멀리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아직 2024년은 한달이나 남아있어요! 연말의 따뜻하고 나른한 기분을 즐기면서 정리할 것들은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들을 계획해보려고요. 일단 오랜만에 미용실에 좀 다녀오려고 해요. 산뜻하게 가벼워진 머리와 열린 마음으로 12월을 맞이해보렵니다. 코스모님의 12월도 산뜻하길 바랄게요! :)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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