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스모님😈
수야입니다 :) 지난달 편지를 제가 마지막으로 보냈었는데, 코스모님의 답장을 받기 전에 한 번 더 편지를 보내보아요. 늘 코스모님이 어떤 화두를 던지면 제가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우리의 대화가 이어졌던 것 같아서, 변주를 주고 싶었달까요 :)
서울은 이번주에 눈이 왔어요. 지난주에 날씨가 급 따뜻해지며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아마도 마지막 꽃샘추위인 것 같아요.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 저의 커리어도 급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했답니다. 새로운 산업군 및 업무에 대한 도전과 팀 스피릿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스타트업 일을 이번달로 마무리하기로 했거든요. 겨울 내내 잘 적응해보려고 애쓰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결국 서로가 기대한 직무 핏이 맞지 않음을 확인했어요. 뾰족한 산업군의 뾰족한 마케팅 업무는 그동안 제가 쌓아온 역량 및 경험을 연결했을 때 생각보다 시너지가 잘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조직문화와 사람들은 좋았기에 여러모로 시원섭섭한 마음입니다.
이 3,4달 남짓한 시간들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의 강점이 핵심역량으로 사용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야 즐겁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잘할 수 있고, 잘 해야 오래할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 연차가 될수록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그 전에 10년 넘는 시간동안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 업무를 할 때도 저의 가치관이나 취향과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가진 강점인 '타고난 균형감과 조화롭게 조율하는 능력, 원만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같은 것들을 핵심역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꽤나 즐기면서 오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행운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 맞는 일을 하라." 라는 문장은 저에게 '현실을 모르는, 배부르고 낭만적인 이상주의자의 외침'처럼 들렸던 것이 사실이에요. '일을 하고 돈을 버는데 어떻게 나한테 100% 맞는 것만 하겠어.', '싫거나 맞지 않아도 노력하고 맞추면서 하는 것이 원래 일이야.' 같은 말들을 믿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이번 경험을 하고 보니, "나에게 잘 맞고, 그래서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낭만을 위해서가 아닌 어쩌면 생존을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경쟁력을 가지고 오래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깨달음들을 얻는 데에는 회사 온보딩 기간동안 병행했던 <심리상담>도 한몫 했어요. 처음에는 업무상의 챌린지한 피드백을 좀 더 잘 수용하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시작했었어요. 저의 근본을 건드리게 되는 질문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저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매주 진행을 하다보니 심리상담의 특성상 잊고 있던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순간들이 많았고, 어떤 영향들을 받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연결점을 찾는 대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제가 평생을 '생존에 대한 불안'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계속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생존' 키워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생존'을 '불안'과 '의무'로 직결시키지는 않고 싶어요. 그런 긴장된 마음으로 일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때는 모른 채 지쳤지만 알게 된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졌어요. 시간이 갈수록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않고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고 나에게 편안하게 맞는 일을 하는 것', '좋아하는 감각과 마음 자체가 나의 고유한 경쟁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노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봄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애써 생각해낸 답을 다시 지운 빈 노트를 앞에 둔 기분이지만,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이것저것을 더욱 기꺼이 써보려고 해요. 틀리지 않을까, 썼다 지우면 공책이 더러워지지 않을까, 재고 따지느라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좀 더 산뜻한 마음으로 뭐라도 써보려 합니다. 틀리면 다시 쓰고, 노트가 다 차도록 답을 찾지 못했다면 다음장을 넘겨서 또 써보죠, 뭐. :)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오프라인 만남을 기대하며,
수야 드림🌿
P.S 구독자 님은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받아보셨다면,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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