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쑤레터ep.57] 마음을 진하고 향기롭게 우려내어

마음에서 우러난 삶을 살아요

2022.05.04 | 조회 325 |
0
|

뉴쑤레터 NewSsooLetter

매주 화,목 친구들을 위해 다정한 편지를 부쳐요.

안녕, 나의 친구 구독자!

 


 

같이 들어요

채창원 - 혼차의 시간

생각들이 끓어오르면 물을 끓이기 시작해
온도 조금 식히면서 머리 조금씩 식히고
바스락 마른 찻잎 덜어 물을 붓고 흠뻑 젖으면
기지개 펴며 서서히 부풀어
그래 이게 네 모습이지 싶어

오늘의 이야기와 함께 듣기 좋은 곡을 발견했어요.

바쁜 일상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차를 우려내고,
천천히 찻잔을 비우며 복잡한 머릿속도 비워내는
상상을 하며 듣게 되는 곡이네요.

 

 

오늘의 쑤필

 

친구, 혹시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나요?

나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배웠던 다도 수업에 대한 기억이 꽤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유난히 그날의 수업은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됩니다.

유치원에서 다도 수업을 진행한다며, 모든 아이들에게 한복을 준비시켰습니다. 나는 딱 요맘때의 철쭉과 같은 진분홍 빛의 예쁜 한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한복을 사러 갔을 때도 기억이 나네요. 온갖 알록달록한 한복들이 벽을 잔뜩 뒤덮고 천장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어딜 가도 남자아이인 줄 알만큼 까불까불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내가, 한복을 입는 순간 처음으로 내 자신이 가지런히 정돈되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한복을 산 날, 목 부분의 옷깃이 까슬까슬 해 살갗이 벗겨지면서도, 자기 전까지 철쭉 빛의 한복을 입고 있었더랍니다.

오늘 이 글을 쓰다 문득 그때의 어릴 적 내 모습이 궁금해져, 두껍고 무거운 앨범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쩜 이렇게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 뿐인지, 이 꼬맹이가 진짜 내가 맞나 싶습니다. 다도를 배우던 날만 빼고요. 그날의 나는 한껏 신이 난 친구들 사이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심각했던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 다도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의 손이 기억납니다.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조용하고 부드럽게 차를 우리던 선생님의 손. 투명하고 아무런 향도 없던 뜨거운 맹물이 찻잎을 만나 예쁜 색으로 물드는 모습,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따뜻한 온기와 금세 향긋해지는 공기가 좋았습니다. 친구들은 맛이 없다며 차 한 잔을 채 다 마시지 않았지만, 나는 여분의 뜨거운 물까지 우려 작은 티 팟 하나를 다 비워냈습니다. 사실 나도 달고 시원한 탄산음료가 더 좋았지만, 한복을 입어서인지, 가지런히 정돈된 차분한 몸과 마음으로 공들여 우려낸 차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도 바닥에 무릎을 꿇어 앉은 뒤 냉수가 담긴 잔을 찻잔처럼 둥그렇게 둘러 쥐고 반대 손으로 바닥을 받쳐 조심스레 물을 마시며, 유치원에서 배운 다도 예절을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레 늘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참 오랜만에 떠올린 기억입니다만, 갑자기 이 기억을 끄집어 낸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자주 쓰게 되는 표현이 있어서입니다.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다' 라는 표현입니다.

문득 '우러나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묘하게 느껴지더랍니다. 차를 우리듯, 마음을 우려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그렇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다니. 무엇이 우러난단 말일까 하고 자꾸 자꾸만 생각하게 되어 그렇습니다.

요 몇 주간, 유독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몸도 피곤하고 정신도 피로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나의 마음은 생각보다 왕창 지치지는 않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한껏 징징대거나,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거나, 탓할 누군가를 굳이 굳이 찾아내어 괜히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을 나인데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다, 오랜 고민 끝에 내 마음에서 우러나 선택한 것이라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옛날 조심스럽게 차를 우려내던 선생님의 손처럼, 내 두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차를 우리듯 내 마음을 우려 두어서 그렇겠구나 하고요.

꼭 해야만 해서 하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한다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주어지는 건지, 세상 억울하고 서럽고 그렇겠지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해야만 한다잖아요. 그럼 해야 하잖아요.

그럴 땐, 한 번 내 마음을 우려 내 보는 겁니다. 해야만 한다면, 할 거라면, 내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기왕 할 거 진하게 마음을 우려 내어 해 보는 겁니다. 우려지지 않은 마음은 너무 딱딱하고 진해서, 고약해 지기 쉽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살다가, 고약함이 내 삶에도 찰싹 옮겨 붙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누구의 강요로 인한 억지가 아닌, 내 두 손으로 마음을 진하고 향기롭게 우려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러난 내 마음에서는 어떤 향이 날지, 어떤 온기를 지니게 될지도 궁금해 집니다.

 

 

 


📝 추신

1. 월요일에 꼭 보자며 약속했는데, 또 미안해요(...)
   월요일 글쓰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네요.
   발송 요일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 해볼게요.

2. 날씨가 갑자기 오락가락하네요. 감기 조심해요!


오늘 수진의 편지를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을
익명으로 전하고 싶다면?

수진에게 한마디

 

 

오랜만에 어릴 적 사진을 꺼내 보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발랄하고 활기찼던 내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지금 내 마음은 상쾌한 페퍼민트 차 같아요!

바빠도 틈틈이 마음 우려내는 것 잊지 말아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2년 5월 4일 수요일

구독자의 친구 수진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뉴쑤레터 NewSsooLetter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뉴쑤레터 NewSsooLetter

매주 화,목 친구들을 위해 다정한 편지를 부쳐요.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