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Q, CQ, CQ! 여기는 파워 서플라이 (Power-Supply), 이 세상의 아동들을 위해 수신합니다.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만 18세 미만인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
아동학대 신고? 아동의 울음소리, 비명, 신음소리가 계속되는 경우. 아동의 상처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이 모순되는 경우. 계절에 맞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는 경우.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국번 없이 112로 신고.
파-서 안녕하세요 문화예술 전류 공급장치 파워 서플라이입니다. 여러분은 11월 19일이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아동학대 예방의 날은 「아동복지법」제 23조에 따라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저희 파-서 팀의 에디터들은 아동학대를 공론화한 문화예술 컨텐츠를 리뷰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럼, 함께 봐보실까요? 시작합니다!
- 1장 <펭귄의 이웃 : 가정의 쓰레기통>_제 4의벽
제 4의 벽 CQ, CQ, CQ, 여기는 파워 서플라이, 제 4의벽, 펭귄의 이웃들, 수신합니다.
제 4의 벽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절대적으로 일어나선 안될 아동학대를 다룬 소설책을 소개하며, 아동학대, 더 나아가 학대와 폭력이라는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이유가 대하여 설명하려 합니다. 지금부터, 오영이 작가의 단편소설집, 펭귄의 이웃들, 수신합니다.
제 4의 벽 이번 발간호의 경우, 영상물이 아닌 오직 시각으로만 그 현장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술수단으로 가져왔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소설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시각으로 발현된 상상은 무한합니다. 우리는 시각을 통해 가상의 오감을 모두 느끼고, 오감의 이면 속에 현실을 마주합니다. 아동학대라는 진중한 주제를 다룬 만큼, 텍스트라는 시각적 요소 하나만으로 해당 작품을 접하는 독자와 관객이 아동학대 근절과,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1. 학대의 전염
제 4의 벽 펭귄의 이웃들은, 초등학생 입학을 앞둔 아이가 독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버지는 한 이유로 집을 떠났고 집안의 가장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염되었습니다. 학대의 전조증상은 어머니의 전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집안의 빚을 구하려, 사채라는 병의 악화를 불러왔습니다. 아이는 그저 어머니의 전염과 병의 발현증상을 보고만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사회에서 그 나이로,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전혀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의 시선에서 어머니의 발현증상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마주한 세상은, 그렇게 탁한 하늘이 보이는 쇠창살이나 다름이 없었을 테니까요.
제 4의 벽 아이의 어머니의 증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빚을 되갚을 능력이 없는 그녀는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현실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내, 아이 앞에서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될 자학을 내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아이에게 전염이 시작됩니다. 물리적인 학대만이 단순히 학대는 아니기 때문이죠. 아이는 또, 보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감정이 좀 다릅니다. 두려움과 공포,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연기가 아이를 휘감아버립니다. 엄마, 엄마? 속으로, 되뇌이는 아이는 그저 또,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제 4의 벽 그런데, 어머니의 이상증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구타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쇠창살 속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펭귄은 그저 입을 다물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이 이상증세가 순전히 어머니의 탓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어머니의 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푸르름에도 탁한 하늘과 쇠창살, 그리고 어머니와 아이. 그저… 이런 전염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입니다. 과연 이 병에 백신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2. 사용할 수 없는 백신
제 4의 벽 학대와 폭력에 해피엔딩이, 존재할까요. 오영이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아동 학대의 전말을 샅샅히 적어두었습니다. 오히려 시각적 텍스트로만, 독자가 이 내용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라는 병에 과연 백신이 존재할까요. 가정폭력의 근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포근해야 할 가정 속에서 나약하게 휘둘리고 좁아진 세상 속에서 갇혀버리는 이들을 꺼내줄 수는 없을까요.
“피하고 싶도록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외면하면 세상은 쾌적해진다. 그들의 게으름과 무능과 어리석음을 탓하며 소외하면 그만이다.”
작가의 말
제 4의 벽 우리는 가정이라는 공간이 흔히들 지극히도 개인적인 영역이라 치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쉽게 손을 내밀 수 없죠. 그러나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폭력까지 무시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절대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폭력이라는 이 끔찍한 병이 얼마나 당사자를 파괴하고, 한 가정을 파괴하고, 더불어 사회의 규범까지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보이지 않아서 쾌적한 세상이 과연… 윤리적으로도 쾌적할까요.
제 4의 벽 오히려 이 소설은 감사한 존재입니다.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임상실험의 성공축에 들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시각적 요소 한 가지 만으로도 쇠창살 속의 가정 현실을 샅샅히도 보여주었습니다. 에이 설마 이정도겠어요. 네, 더 심한 경우도 많습니다. 잊을 만하면 뉴스에 아동 학대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대체 그 폭력의 이유가 무엇이냐 말합니다. 가해자 개인의 문제? 있습니다. 사회의 방관? 당연히 존재하죠. 그럼 이 너머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3. 짧은 관심이 만드는 악화
제 4의 벽 어쩌면 폭력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사회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들끓습니다. 그리고… 식어버립니다. 내 일이 아니라는 양, 언제 화를 내었냐는 양, 일상생활의 바쁨을 이유로 들어 어느새 뉴스창을 클릭하는 손가락의 태동이 줄어듭니다. 짧디 짧은 관심. 어쩌면 이 관심의 텀이 짧아서, 학대의 가해자들은 안심합니다. 조금만 지나면, 다 까먹겠지. 내 아이인데 때려도 내가 때려야지, 지들이 뭐라고. 라는 건방진 생각을 품게 만들기도 하죠.
제 4의 벽 우리는 좀 더, 깊고 길게 이 아동학대라는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회에 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우리 사회도 반성해야 합니다. 펭귄의 이웃들이 어쩌면 지금 내 이웃일 수도,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 2장 <4등:사랑의 매란 없습니다.>_각광脚光
각광 CQ CQ CQ 여기는 파워 서플라이 (Power-Supply) 각광. 수신합니다.
각광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저는 아동학대를 주제로 다룬 영화 <4등>을 가 져와 봤습니다! 사실 제목으로도 어떤 내용을 다룰지 가늠이 되죠. 성적으로 혹은 등급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 “등수”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좋은 성적을 바라죠.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는 더 심각할 겁니다. 대회에서는 오직 1등, 2등, 3등에게만 메달을 부여하니까요.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사회 속에 4등이란 등수에 들지 못한 패배자일 뿐입니다. 이 영화는 엘리트주의에 찌든 한국 사회에 소리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폭력이라고 말이죠. 이 영화는 아동학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들이 많습니다. 자, 함께 생각을 나누러 가볼까요?
#1. “너가 맞을 짓을 했겠지.”
각광 영화는 수영코치인 광수의 옛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광수는 전도유망한 수영선수 였으나 코치의 심한 체벌로 선수단을 나가게 됩니다. 이후 광수가 수영코치가 되고, 광수는 자신이 싫어했던 그 체벌 그대로 주인공인 준호를 때립니다. 그러면서 광수는 말합니다. 자신이 때리는 이유는 준호가 집중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라고요. 본인의 체벌에 이유를 부여합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것은 준호가 동생인 기호가 자신의 수경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광수가 준호에게 했던 체벌 그대로 기호를 때립니다.
각광 어린 광수는 코치에게 심한 체벌을 받고 기자인 준호의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준호의 아빠는 광수에게 “맞을 짓을 했겠지.”라며 코치를 감싸죠. 마치, 체벌에 이유가 있으면 정당해진다는 듯이 말이죠. 이런 잘못된 사고는 잘못된 배움으로 이어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맞을 짓. 폭력이 이유가 있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2 “거의 1등”
(여자 1) 자기 애가 상처받을까 봐 그래, 나는 (엄마) 나 그 상처 메달로 가릴 거에요.
영화 4등에서
각광 준호의 엄마는 매우 극성입니다. 대회마다 4등을 하는 준호에게 “인생 꾸릿꾸릿하게 살래?”, “너 땜에 죽겠다!”라며 타박합니다. 준호는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듣지 않습니다. 준호의 순위권을 위해 폭력 코치인 광수를 붙였죠. 물론 준호에겐 물어 보지도 않고요. 준호가 코치에게 맞으며 훈련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1등을 위해 외면합니다. 아이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는 사람의 말에도 메달만 따면 그만이라는 엄마의 말이 참 무섭네요. 끝내 준호는 2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이때 엄마는 “거의 1등”이라며 소리칩니다. 영화 중 가장 충격이었던 대사였습니다. 2등이 아니라 거의 1등. 1등이 아니라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코치도 준호의 성적에 화를 냅니다. 하지만 준호는 발을 구를 만큼 자기 성적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죠. 굉장히 모순적인 장면이면서도 아이들에게 목매는 어른들의 모습이 잘 보여서 그 모습이 무섭다고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와 코치의 1등만을 향한 광기가, 그리고 그 폭력이 목을 죄는 것 같았어요.
각광 앞서 말했듯 준호의 엄마는 매우 극성입니다. 준호에겐 수영으로, 기호에겐 공부로 압박합니다. 준호가 체벌을 견디기 힘들어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준호의 엄마는 준호를 때리며 화를 냅니다. 누구 허락을 받고 수영을 그만두냐며 말이죠. 정작 열심히 한 것은 준호인데 엄마하고 “같이” 열심히 하지 않았냐며 다그칩니다. 단지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것인데, 자신의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울부짖죠. 그리고 준호의 엄마는 수영 코치인 광수를 찾아가 다시 코치해달라고 빕니다. 자기 아들을 때린 사람인데도 아들의 메달을 위해 다시 찾아간 것이죠. 엄마에게는 4등 하는 것이 아들이 맞는 것보다 더 무서우니까요.
각광 그저 수영하는 것이 좋았던 준호는 준호의 엄마와 코치에게 1등의 간절함을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말에 엄마는 준호에게 모든 기대를 버립니다. 그리고 엄마는 준호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죠. 엄마는 버렸던 기대를 그대로 기호에게 줍니다. 기호는 엄마의 희망이라는 말을 세뇌하면서요. 여기서 자식을 본인이 대체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너를 위해서, 너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부모를 위해서 라는 거죠.
#3 “니 혼자 해 봐라. 금메달 딴데이”
“엄마는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1등만 하면 상관없어?”
영화 4등에서_준호
각광 수영이 하고 싶은 준호는 엄마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대답 없이 눈물만 보이죠. 1등만을 바라는 성과주의에 아이들은 위축됩니다.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합니다. 아이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죠.
각광 혼자가 된 준호는 다시 수영하고 싶은 마음에 광수를 찾아가고 광수는 준호에게 혼자 해보라며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준호는 그런 광수의 말에 의아해하죠. 결국 준호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수영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간절함으로 1등을 하게 됩니다. 준호는 스스로 증명해냅니다. 코치와 부모의 폭력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요.
각광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무서웠습니다. 자식이 폭력을 당하는데도 외면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폭력에 자연스럽게 이유를 덧붙여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람들. 1등을 향한 부모의 압박. 영화의 모든 면이 저의 감정을 옥죄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아이들은 얼마나 아플까요. 그들의 아픔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각광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저런 부모가 어딨어.”“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폭력?”자기 아이한테 하는 건데 어때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곧 아동학대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세상이기에 더 무서운 것이 아동학대이고 그렇기에 극성인 부모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자식이기에 가족이 더 안아줘야 하지않을까요. 직접적인 폭력만이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인격과 감정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도 아동학대입니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자식은 부모의 대체품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를 바랍니다.
3장 <미스테리어스 스킨: 재난에는 여파가 남아> _메타포
메타포 안녕하세요, 메타포입니다. 11월 19일 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 이하여 저는 간단하게 또! 영화 리뷰를 들고 왔습니다. 공연에만 주목을 하던 제가 요즘더러 영화에 대한 식견을 높이려는 중이에요. 생산과 소비가 비분리적인 공연과는 다른 묘미가 있더라구요. OTT서비스와 시간만 있다면 관람객이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볼 수 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 마다 느껴지는 노고의 흔적들이 뜻 깊어 보이더라구요.
메타포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냐! 아동학대예방의 날과 연관성 있는 영화를 고르고 골라 아동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렉 아라키 감독의 <미스테리어스 스킨>을 들고 왔습니다. 사실 몇년 전에 이미 본 적이 있는 영화인데요, 리마인드도 하고 연출적으로 분석해보기 위해 다시 봤습니다. 왓챠!!...이거 왜 내렸나요... 웨이브에서 개별 구매해서 봤습니다... 여튼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1 “그래서 그저 침묵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통해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캐롤을 들었다. 난 모든 게 끝났고 괜찮아질 거라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가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그저 침묵하면서 졍신적 교감을 통해 미안하다고 했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메타포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 저는 <미스테리어스 스킨>이 SF영화인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외계인”이라는 키워드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특이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어영부영 보게 되었는데 결말부에서 브라이언의 잃어버린 그날의 5시간동안 브라이언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 명확히 밝혀지는 것을 보고 꽤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비극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날짜를 순서대로 표기함으로써 적어도 겉으로는 연대기적인 플롯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말부에 다다르고 나서야 단순히 닐과 브라이언의 연대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일어났던 사건으로 일어난 잔재들을 플래시백 구성으로 나열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반전을 통해 충격을 극대화 시킨 것이죠.
메타포 또한 마지막 씬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죠. 바로 사건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닐(조셉 고든 레빗)이 브라이언에게 말하듯이 브리핑하는 대사는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닐은 차례대로 5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수다떨듯 이야기하고, 이에 차근차근 무너져내리는 브라이언(브레디 코베)의 감정선이 보이는데, 이와 상반되는 잔잔한 캐롤이 울려퍼지는 장면은 탁월한 영화 언어의 예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피해 장면을 노골적이게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관음하는 시선이 되지도 않고, 작위적이지도 않은데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각자 다른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인물들
메타포 닐과 브라이언은 너무나도 다른 부류의 인간들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닐은 야구부의 베스트 플레이어였고, 브라이언은 이와 상반되게 최악의 플레이어였죠. 이 점을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한 가지 어릴 적의 사건을 통해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현재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메타포 어릴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기 보다는 방임되어 야구부에 보내진 닐은 코치를 만나고 나이를 먹을 때까지 잘못된 성 인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동네에서 벗어나 뉴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서야,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강도를 당하고 나서 이 모든게 잘못 되었음을 깨닫죠. 브라이언의 상황은 반대로 부모님의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꽤 평범한 집의 아이인데요, 충격을 먹은 탓에 어릴시절 그 한 동안의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서 그 잊어버린 추억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한 아이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가지고 살고, 다른 한 아이는 완전히 잊어버렸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메타포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잔재를 가진 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강조되니 아동 성폭력은 집안의 분위기나 집안 환경이나 할 거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이 둘에게 유일한 공통점 하나는 방임되었다는 것입니다. 닐은 태초부터 방치된 채로 살아왔고 브라이언은 부모님간의 좋지 못한 관계로 인해 교묘하게 방치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범죄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하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3 마무리를 하며
메타포 여러모로 흥미로웠던 지점들이 많았지만, 텍스트로 옮겨 적기에는 너무 벅차 이 정도로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영화를 보셨나요? 다들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 궁금하네요. 안 보신 분들 에게도... 과한 스포일러에 늦게나마 사과를 드리며 눈 감고 꼭 한번 봐보셨으면 합니다. 그럼 메타포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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