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추석 연휴는 즐겁게 보냈니? 이번엔 주말이 껴서 그런가 비교적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야. 내 연휴는 TV만 보다 끝나버렸거든. (후회는 없어) 거리 두기 없는 연휴가 오랜만이라 추석 특집 예능도 많고 추석 느낌 물씬 나는 광고도 많더라. 고운 한복 차려입고, 단란한 가족이 외치는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도 간만에 들었더니 귀가 간지럽더라고.
이쯤에서 갑자기 의문이 생겼어.
왜 미디어 속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토끼 같은 자식들로 구성되는 걸까? 의미 없는 의문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가족 얘기를 좋아해서 좀 깊이 파보기로 했어. 가족(家族)을 사전에 검색해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나오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그럼 부부는? 지아비 부, 며느리 부.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야. 그런데 예전엔 당연하게 접했던 말들이 요즘 들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돌이켜 보니, 어릴 때 보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선 항상 '가족'의 정의를 갖춘 그야말로 가족들이 등장했었어. 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니, 꼭 혈연이 전부는 아니더라고. 꼭 남녀 구성원이 모두 있어야만 가족도 아니었고!
내가 가족이라 정의하면, 우리 모두 가좍!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조금 늦었지만 소개할게, 나의 가족 <브루클린 나인나인>
이들은 99구역 경찰서에 근무하는 동료들로, 사실은 철저히 선을 그어야 할 공적인 사이지. Do not cross the line!
하지만 이들은 유사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내며 연례행사에 참여하고 서로에 대해 부모보다 잘 아는데 이게 가족 아니면 뭐야?
이건 학교 다닐 때도 항상 생각했던 바야. 고등학교 3년간 아침 자습부터 야간 자습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고, 매 끼니 챙겨 먹고. 그 당시 친구들은 일종의 단기 식구였던 것 같아. 물론 회사 생활은... "그거랑 다르지 인마!!!!!" 라고 소리치겠지만, *브나나는 예외로 할게.
*브루클린 나인 나인을 줄여서 브나나라고 말해!
일단 간단히 소개하자면 왼쪽부터 로사, 홀트 서장, 히치콕, 지나, 에이미, 스컬리, 테리 반장, 제이크, 그리고 놀란 토끼 눈의 찰스. 이들의 관계성을 모두 이야기하기엔 방대해져서 이름만 소개하고 넘어갈게.
이들을 속속들이 살피다 보면, 사회가 정의한 '정상 가족'으로부터 벗어난 경우가 꽤 있어. 사회가 말하는 정상 가족은 위에서 얘기한 '가족'의 사전적 의미로 생각하면 돼.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인 거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결핍을 얹어주곤 해. 글을 쓰면서도 나의 무의식이 어긋난 단어를 적진 않을까 고민되는 것도 사실이야.
제이크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겪었고, 홀트 서장은 오랜 기간 차별에 맞서 싸워 온 동성 부부이며, 찰스는 외국에서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고, 에이미와 로사는 극도로 전통적/보수적인 가족 사이에서 자라났어. 배경이 미국이라 '이 정도면 modern family~' 라고 할 수 있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지.
그 순간마다 이들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줘.
아버지 대하는 게 어려운 제이크를 위해 이야깃거리를 고민해주고. 로사가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중대한 순간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찰스의 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발로 뛰며 노력하고. 심지어는 만삭의 테리 부인이 출산하는 순간까지 함께 호흡해.
가장 재밌는 건 모든 가족 행사에 빠지지 않고 함께 한다는 점이야. 이들의 직업이 밤낮없는, 돌발 상황 많은 경찰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회사 동료와 매번 함께하다니. 결혼식, 추수감사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등. 이게 가족 아니고 뭐야! 특히 상사가 내 결혼식 주례 봐주는 일?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브나나 세계관에선 모두 가능해.
이쯤에서 트위터 밈으로 돌던 '유사가족에 미치는 이유'를 소개하고 넘어갈게.
그저 회사 동료였던 사무실 사람들은 스스로 가족을 자처했고, 매일 복작복작 싸우지만 위급 상황에선 너나 안 가리고 몸을 던지며, 가족이 된 후 모두가 성장하는 것. 이들은 비로소 전통적 가족의 개념을 뛰어넘은 거야.
실제로도 기사를 찾아보니 어느새 국내 비친족 가구원이 백만 명을 넘었다고 하더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이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더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든든하다. 나 갑자기 대가족 구성원이 된 기분이야. 왁자지껄 거대한 가족에 속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위 기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글이 길어졌지만, 계속 이야기하는 바는 같아. 비로소 거대한 유사 가족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 사회가 정한 틀이 가족의 결핍을 정의할 순 없어. 더는 안 돼! 이제 내 가족은 내가 스스로 정의하는 거야.
난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식구가 되어 사무실 속 인물 1로 그들을 관망해보려고.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나의 소중한 가족으로 남겨둘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마지막 시즌을 못 열어보고 있어. 한 세 번 더 돌려보고 시즌 8을 시작하려고.)
TMI. 주인공 지나와 제이크는 실제로도 오래된 친구라 가족 같은 사이래.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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