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서 ‘보고싶어요’만 눌러두고 영원히 묵혀 두었던 영화들… 유명하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던 영화들…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영화들… 이번 레터에선 각자의 관성을 넘어 평소였음 안 봤을 그런 영화에 대해 쓰기로 했지.
내가 고른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야.
혹시 넌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았니? 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까진 보았어도… 아키라의 영화는 처음이야. 나에게 영화란 동시대의 것이어서 흑백 화면의 ‘고전’이라 불리는 영화들은 (EBS 세계의 명화를 제하고) 거의 보지 않았거든. 반면 ‘시네필’하면 이런 ‘고전’이라 불리우는 영화를 보는 모습이 떠올라. 50년도 더 된 영화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무엇일지, 그곳엔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을지 궁금해서 1952년 개봉작 <이키루>를 틀었어.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의 위장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 그의 위장엔 암이 퍼지고 있어.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 시청의 시민과장인 와타나베는 다소 괴로운 표정으로 끝도 없이 문서에 도장을 찍고 있어. 그리고 와타나베의 삶을 잔인할 만큼 꿰뚫어 보는 나레이션이 들려.
“송장이나 다름없군요. 사실 그는 20년 전에 죽었습니다. 살아있다면 뭔가 하려는 의욕이 있겠죠.
…
그에겐 이 자리를 지켜 나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일자리를 지키려면 다른 것엔 신경 안 쓰는 게 낫죠. 하지만 그게 좋을까요? 이대로 괜찮습니까? 그가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려면 그의 병은 더욱 악화돼야 하고 헛된 시간들 또한 더 이어져야 합니다.”
‘이키루’를 우리말로 하면 ‘살다’. 제목처럼 영화는 삶,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해. 만약 살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보통의 이야기는 생의 클라이스를 지나는 ‘건강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잖아. 근데 <이키루>는 죽음으로 향하는 ‘아픈’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의 생이 끝난 뒤에도 영화가 이어진다는 점이 좋았고 또 새로웠어.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잖아. 죽을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응급실에 갔을 때 더 이상 나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선 안 되겠다는 선언을 스스로에게 했었어. 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삶의 의미와 형태를 살피게 되는 듯 해.
본인이 암이라는 것,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와타나베는 생각하기 시작해. ‘이대로 괜찮은가?’ 30여 년간 무결근이었던, 미라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생의 정동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그를 변화시킨 건 바로 이 질문이야.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그는 시민과장의 자리를 떠나 방황하기 시작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에 나의 마음과 시간을 쏟아야 할지 방향성조차 잡기 어려울 때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말을 생각해. 인간은 생의 욕심을 갖는 한 끝없이 방황한다. 특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방황, 이리저리 거니는 행위 자체가 살아간다는 것임을 되새겨.
그간 자신의 삶에 없었던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살던 와타나베는 시민과를 퇴사하고 토끼 인형 공장에서 일하는 이의 활기와 솔직함을 부러워 하며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 죽기 전에 내가 무얼 해야 할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해. 아직 늦지 않았어. 할 수 있어.
그렇게 와타나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움직여. 과거 자신이 미뤘던, 하수도를 메워 공원을 만들자는 민원을 해결하는 것. 그는 시민과장으로서 주변 사람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며 공원을 만들어 나가. 그 모습을 본 이는 그의 몸을 일이 지탱한 것 같다고 표현해. 그리고 죽기 직전 그는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그네를 타며 노래를 불러.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비로소 생은 가장 선명한 활기를 띠어.
그의 장례식. 와타나베 씨의 영정 사진을 중심으로 시청의 동료들이 둘러앉아 있어. 이들의 대화 주제는 공원을 만든 업적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서로 왈가왈부 하다가 술에 취한 이들은 결국 와타나베 씨의 공로를 떠올리며,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반성하는 말들을 토해내. “오늘 했던 이야기를 절대 잊지 맙시다!” 다짐하며 헤어지지만, 그렇잖아. 우리의 깨달음은 일시적이고, 깨달음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란 더더욱 어렵지. 일터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에 변화란 없어. 그 여전함에 분노한 사이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만 싸늘한 동료들의 눈빛에 그대로 자리에 앉고 말아. 하지만 사이토는 퇴근길에 변화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지. 와타나베가 만들고 떠난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까?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연말이 다가오고,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나도 매일 같이 던지는 질문이야.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 나도 계속 열심히 방황하고 움직여야지. 나의 삶과 시차를 두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고민만큼은 같아서 반가운 영화였어.
너는 어떤 영화를 택했을지, 그 영화에서 발견한 낯설거나 익숙한 생각은 무엇일지 궁금해. 그럼 우리 하루하루 잘 살다가 또 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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