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피스모모 아영입니다. 아무도 모르셔도, 저는 꼭 매달 첫 목요일에 레터를 보낸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는데요. 시차와 회의 일정들로 하루 늦어버렸어요. 한국은 이미 9월 5일 금요일 0시를 넘겼거든요. 그래도 스위스는 아직 9월 4일 목요일이라는 것에 위로를 얻으며 9월의 모모레터를 드립니다.
저는 동료 가연과 지난 월요일부터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진행되는 자율살상무기체계 금지협약을 논의하는 정부전문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피스모모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스탑킬러로봇캠페인(Stop Killer Robots Campaign)’과 함께 하고 있어요. 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렇게 디테일한 이야기를 왜 해야 하지? 그냥 안 만들고 안 죽이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접근으로는 원하는 진전을 만들기 어렵다고요. 왜 어려운 걸까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하면 그 살인에 대한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군의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면 그 살인은 처벌에 다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 절차의 복잡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한계가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 이를 규모의 역설이라고도 부르는데요.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 과정에서 수십만 명이 집단적으로 살해되었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수십 년 가까이 지연되었습니다. 2013년 이집트 라바 광장에서 이집트 보안군은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지만, 10년이 지난 2023년이 되어도 보안군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100일 동안 80만 명 이상이 집단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요 가해자 중 국방장관 아우구스틴 비지마나와 대통령 경호책임자 프로타이스 음피라냐는 도피하다 사망해 재판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자금책으로 지목된 펠리시앙 카부가는 26년을 도피한 끝에 2020년에야 체포되었지만, 건강 문제로 2023년 재판이 중단되었습니다.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8,000여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주요 범죄자들은 수년간 도피한 끝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뒤늦은 재판을 받았지만, 강간캠프 운영자 같은 일부 가해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독일 식민 정부가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족과 나마족 7만여 명을 학살한 사건은 100년이 넘도록 어떤 처벌이나 배상도 없었습니다.
한 개인의 살인 사건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를 목격하거나 수사하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명확한 책임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집단학살과 같은 거대한 범죄 앞에서는 수많은 행위자들이 존재하게 되고, 이들 사이에서 책임이 분산됩니다.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방관자 효과가 작동하면서, 정작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무력감과 자율성(?) 사이에서
거대한 범죄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감정적 회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개인적 회피가 집단화되면, 사회적 차원에서 침묵의 문화로 확산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의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지게 됩니다.
자율살상무기체계(Lethal Autonomous Weapon System)를 둘러싼 국제적 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표적을 선택하고 공격하는 이 무기들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전장에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관련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법적 협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들은 기술 발전을 이유로 협의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할 뿐 구속력 있는 협정(legally-binding instrument) 체결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이들 국가의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이예요(여기 와서 보니 한국이 대표적이더라고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성급한 규제보다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집단학살 가해자들이 "정치적 상황이 복잡하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처벌을 지연시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의 복잡성과 규모를 이유로 결정적 행동을 미루는 것, 또 다른 규모의 역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율살상무기체계 논의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국의 안보만을 고려합니다. "우리나라가 군사적으로 뒤처지면 안 된다", "다른 나라들도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만 못할 이유가 있나"라는 식의 논리가 그것이지요.
이는 과거 집단학살 사건들에서 보였던 ‘불특정 대중’ 또는 ‘국제사회’의 반응과 매우 유사합니다. 르완다 집단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국제사회는 "내정간섭"을 우려하며 방관했고, 보스니아 사태에서도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 시민들 역시 멀리 떨어진 곳의 비극보다는 당장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에 더 관심을 보였거든요. 현재 가자지구의 주민들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국가들의 회피와 시민들의 무관심이 결합되면서, 인류는 기계와 더불어 더 큰 학살이 예정된 세계로 부쩍 다가가고 있습니다. 자율살상무기체계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에 예방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시간 속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고요, 대신 “국제인도법(IHL)은 무기 사용시에 적용되지 무기개발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에 힘이 실립니다.
과거의 집단학살들이 주로 인간의 증오와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면, 미래의 대량 살상은 냉정한 계산과 기술적 효율성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율살상무기는 감정의 동요 없이, 피로하지도 않고, 도덕적 갈등 없이 인간을 살해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일단 전장에 투입되면, 그 피해 규모는 인간이 직접 조작하는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습니다.(물론 SF 영화에서 초인공지능이 인간을 최대악으로 인식해서 인간을 멸종시키는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북극성이고 싶은 피스모모입니다?!
예방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예방에 힘을 써야 할텐데, 제네바에 와서 보낸 4일간의 경험은 그 예방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너무나도 다양해서 ‘합의’라는 것에 도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과정입니다.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의 연결을 인정하고, 그 복잡성을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나빠지는 세상에서 피스모모는 무엇을 얼마나 더 의미있게 해낼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되는데요.
때때로 거대해보이는 문제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으로부터 서로 배움의 가능성과 돌봄의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도 여전히 생각합니다.
자율살상무기체계 논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우리 나라 군대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근시안적 사고를 넘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무기가 확산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직면할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의 책임이어서, 사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하겠죠.
회의 중에 한 정부 대표자가 말했습니다(이 사람이 한국 대표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민간인 보호를 위해 모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흔들려서는 안되는데 이 논의를 무기개발의 과정에 초점을 둔 것으로 착각하는 국가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왜 모였는지를 기억하자.” 이 목소리는 이해관계가 얽혀 혼란스러운 회의장에서 반짝이는 북극성처럼 느껴졌어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복잡한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서울의 하늘을 떠나 한적한 프랑스 국경마을의 숙소로 걸어가며 하늘에 가득찬 별을 마주합니다. 반짝이는 북극성을 따라 걷듯이, 피스모모도 누군가에게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북극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피스모모의 열 세번째 창립기념일이었거든요.
지난 13년간 피스모모에게 북극성이 되어주셔서, 함께 피스모모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피스모모 아영 드림
참고자료
The challenges of long-delayed prosecutions in fighting impunity in Bangladesh
History says the genocide in Gaza will be recognised – eventually
In Bosnia,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Philippines: Convictions for Ampatuan massacre a delayed but critical step for justice
https://lst.lk/wp-content/uploads/2024/02/Vol.17-Issue-N.-236-JUNE-2007.pdf
인공지능을 통한 전쟁수행은 정당한가 - 자율무기체계를 통한 국제인도법 준수가능성을 중심으로
https://webtv.un.org/en/asset/k1s/k1s162rgj6
http://komsf.or.kr/bbs/board.php?bo_table=m44&wr_id=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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