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건널 수 있었던 강

260km 길이의 통나무 더미, 그레이트 래프트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6.01.03 | 조회 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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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걸어서 강을 건너려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기적을 행할 게 아니라면 강이 얼었을 때 건너가거나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왼발을 딛는 방법 정도가 떠오릅니다. 여기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19세기까지 미국 남부에는 잘만 하면 말을 타고도 건널 수 있는 강이 있었습니다. 미국 레드 강(Red River)에는 통나무 더미가 심하게 쌓여 있었어서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 통나무 더미를 말 그대로 거대한 뗏목이라는 뜻의 '그레이트 래프트(Great Raft)'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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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래프트는 12세기경부터 형성되었습니다. 매년 봄 홍수가 나면 강변의 면화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이 쓰러져 떠내려왔고, 얕은 강바닥에 가라앉아 자연 댐을 형성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이런 일이 반복되자, 통나무 더미는 260km까지 뻗어나갔습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가 약 150~165km라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되시나요?

이 통나무 더미는 그냥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곳은 7m 깊이까지 빽빽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풀과 관목, 심지어 나무까지 자라서 마치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레이트 래프트의 규모가 이쯤 되다 보니, 그레이트 래프트를 중심으로 독특한 생태계가 생겨났습니다. 통나무 더미가 강을 막으면서 물이 역류하여 주변 저지대를 침수시켰고 카도 호수(Caddo Lake)를 비롯한 여러 호수가 탄생했습니다.

2022년 카도 호수의 모습. 텍사스 먼슬리.
2022년 카도 호수의 모습. 텍사스 먼슬리.

이 습지들은 풍요로운 생태계로 발전했습니다. 190종의 나무와 관목, 93종의 물고기, 46종의 파충류, 22종의 양서류, 47종의 포유류가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고, 220종 이상의 조류가 날아들었습니다. 카도 호수는 미국 최대 규모의 침수 편백나무 숲을 품고 있었으며, 현재 람사르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래프트는 인간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대 수혜자는 카도(Caddo) 인디언이었습니다. 그레이트 래프트는 경쟁 부족들로부터 카도족을 지키는 자연 방벽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통나무 더미가 260km에 걸쳐 강을 막아주니 뱃길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주변 저지대는 침수되어 늪, 호수, 지류가 뒤얽힌 미로를 형성했습니다. 카도족에겐 세대를 거쳐 가며 쌓인 지형 지식이 있었지만 외부인이 여기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통나무 더미 위를 지나갈 때에도 어디가 안정되어 있고 어디가 잘못 밟으면 익사하는 부분인지 현지인만큼 잘 알 수는 없었습니다(현대에도 테트라포드에서 발 한 번 헛딛으면 비참하게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위험성이 짐작이 됩니다.). 이런 자연 방벽 덕분에 유럽인들의 접촉도 150년이나 늦출 수 있었습니다. 1806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보낸 탐험대 또한 그레이트 래프트를 만나고 '진정한 악몽'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카도족은 이런 그레이트 래프트를 자신들의 신화에 편입시켰고 보호자로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도족은 봄 홍수가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통나무 더미가 이동하면서 만들어내는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 그레이트 래프트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1829년, 육군 공병대는 증기선 건조업자 헨리 슈리브(Henry Shreve)에게 그레이트 래프트 제거를 의뢰했습니다. 슈리브는 '스내그보트'라는 기발한 배를 발명했습니다. 쌍동선 구조에 수중 철제 빔으로 통나무를 들이받고 윈치로 끌어올린 뒤 선상 제재소에서 바로 잘라버리는 복합 장비였습니다. 이 배가 끌어올린 통나무 중 하나는 무게가 60톤에 달했다고 합니다.

통나무 더미를 밀어버리는 스내그보트
통나무 더미를 밀어버리는 스내그보트

1838년, 슈리브는 그레이트 래프트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지역 사업가들은 이제 자유롭게 흐르는 강변에 새 도시를 세웠고 슈리브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도시의 이름을 '슈리브포트(Shreveport)'로 지었습니다. 이 도시는 현재 루이지애나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하지만 자연의 힘이란 신비해서, 슈리브가 그레이트 래프트를 치우자 상류에서 새로운 래프트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1871년 공병대를 다시 투입했습니다. 이번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있었고 2년만에 통나무 더미를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레이트 래프트 제거는 성공한 걸까요? 통나무 더미를 제거해 이런저런 편익을 얻었다는 점에선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대가가 뒤따랐습니다.

통나무 더미가 사라지자 캐도 호수의 물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30,000에이커에 달했던 호수는 배로 다닐 수 없는 늪지대로 변했습니다. 그레이트 래프트가 만들어낸 높은 수위 덕분에 번성했던 텍사스 제퍼슨 항구는 쇠락했습니다.

수백 년간 그레이트 래프트에 의존해 살아온 카도족의 문화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봄 홍수가 가져다주는 비옥한 토양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래프트가 사라지면서 이 시스템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더 큰 규모의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그레이트 래프트가 막아두었던 물이 아차팔라야 강으로 급격히 흘러들어, 하찮은 수로였던 강이 거대한 강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재 미시시피 강은 이 아차팔라야 강으로 물길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를 막기 위해 'Old River Control Structure'라는 것이 건설되어 있습니다(재밌게도 설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참여했습니다.).

캐도 호수는 1914년 인공 댐이 건설되면서 다시 물이 차올랐지만, 현재 면적은 25,000에이커로 원래보다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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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나는... 밤섬이다: 서울시도 멀쩡한 밤섬을 폭파시켜 여의도를 키우고 한강의 흐름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트 래프트를 제거하자 새로운 래프트가 생겨났던 것처럼, 밤섬은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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