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오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서 여의도에 갑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법' 같은 걸 페퍼노트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혼인 제게는 무리겠습니다. 대신 쓸모 없는 섬이었던 여의도와 조선업 장인들이 살던 밤섬의 뒤바뀐 역사를 다뤄보려 합니다.
우선 구독자 님께 서울이 낯설 수도 있으니 간단하게 여의도와 밤섬의 현재 모습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릅니다. 세계적으로도 대도시에 폭이 1km나 되는 강이 흐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강에 여의도라고 하는 꽤 큰 섬이 있습니다. 한국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되는 시설들이 모여 있는 번화한 곳입니다. 반면 여의도 바로 북쪽에 있는 밤섬은 나무가 울창하고 철새들이 날아드는 자연 보호 구역, 무인도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무인도라는 점이 낭만적이어서인지, 이 섬에서 홀로 살아가는 내용인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도 있고, '밤섬해적단'이라는 이름의 밴드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밤섬이 사람들이 사는 섬이었고, 여의도는 쓸모를 찾기 어려운 섬이었습니다. 불과 반 세기 정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이 두 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입니다. 여의도는 모래섬이라 농사를 짓기엔 부적합했습니다. 현재 국회의사당이 있는 부근에 수풀이 자라는 작은 산이 있었고, 섬이라 가축들이 도망가기도 어려우니 동물들을 풀어놓고 기르는 정도로만 쓰였다고 합니다. 반면 밤섬에는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 5개 성의 집성촌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천 명 정도의 주민들이 밤섬에 살았다고 합니다.
1916년, 일제는 여의도에 비행장을 짓습니다. 서울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넓은 부지, 애초에 철거할 것도 없는 땅이라는 게 장점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강 한복판에 있는 모래섬 여의도는 장마철만 되면 잠겨 버려서, 김포에게 비행장으로서의 역할을 차츰 뺏깁니다.
1970년에 들어서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서울시의 지도를 바꿀 정도의 대형 토목 공사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주택 공급과 신시가지 개발을 목적으로 '여의도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때 제안된 방법 중 하나는 여의도 남쪽으로 흐르는 샛강을 완전히 없애서 여의도를 영등포에 붙이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한강의 흐름이 나빠져 홍수를 버틸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여의도를 정비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1966년 서울 물난리였기 때문에 반대 의견 쪽에 힘이 실렸습니다.
건설부는 대홍수를 대비해 한강폭을 1300m로 잡기를 주장했습니다. 한강폭을 1300m로 유지하려면 밤섬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결국 당시 살고 있던 62가구 443명의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고 밤섬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됩니다. 바위섬이었던 밤섬의 파편들은 여의도 공사 자재로 사용됩니다. 밤섬은 사라지고, 여의도는 급속도로 발전합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인데, 폭파 이후에도 물밑 밤섬의 암반층에 한강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밤섬이 부활합니다. 바위섬이었던 밤섬은 폭파 이후 몇십 년 만에 모래섬으로 부활했고 그 크기는 오히려 전보다 커졌습니다. 사람도 없어졌겠다, 버드나무와 억새 같은 식물들이 번성하고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합니다. 1999년, 서울시는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2018년, 밤섬은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됩니다.
여의도와 밤섬의 역사에 대해 한바탕 글을 적고 나니 어느새 결혼식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여의도에는 벚꽃도 예쁘게 피고 불꽃 축제도 있어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구독자 님도 여의도에서 데이트를 하시게 되면 애인에게 여의도와 밤섬의 역사를 얘기해 보세요. 지적인 모습에 호감도가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역효과가 나도 괜찮습니다. 지식을 좇다 사랑을 잃은 분이라면, 페퍼노트가 따뜻하게 품고 가겠습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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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맨
어떻게 품어주시나요?
페퍼노트 (1.58K)
사랑을 잃어도 견딜 만한 지식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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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점점 페퍼노트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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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elle
나도 점점 페퍼노트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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