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뚫었는데 왜 차가 더 막히죠?

새로운 도로를 추가하면 오히려 교통이 느려질 수 있다는 '브라에스의 역설'

2025.12.28 | 조회 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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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도로를 많이 낼 수록 교통이 원활해질 거란 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도로를 새로 뚫었더니 전체 교통이 느려지는 경우가, 또는 반대로 도로를 폐쇄했더니 전체 교통이 원활해지는 경우가 수학적으로 가능합니다. 이것을 '브라에스의 역설(Braess's paradox)'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게임 이론, 내시 균형, 죄수의 딜레마 같은 말들을 들어보셨나요? 브라에스의 역설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새로운 도로가 생겼을 때 모든 운전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경로를 선택하면 결과적으로 모든 운전자가 느려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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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예시입니다. 시작점에서 도착점으로 가는 길은, A지점을 거치는 길과 B지점을 거치는 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때 시작점에서 A로 가는 길과, B지점에서 도착점으로 가는 길은 좁아서 이용자가 많을 수록 느려집니다. 이용자 수의 100분의 1분이 소요된다고 하겠습니다. 시작점에서 B로 가는 길과, A지점에서 도착점으로 가는 길은 넓어서 이용자 수와 무관하게 항상 45분 정도가 걸립니다.

4,000명의 운전자가 두 경로로 나눠서 이동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잠깐 어느 한 쪽으로 몰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운전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덜 막히는 길을 찾다가 양 경로를 균등하게 나눠 이용합니다. 각 경로로 2,000명의 운전자가 좁은 길에서는 2,000/100=20분, 넓은 길에서는 45분을 써서 65분만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A와 B 사이를 순간이동할 수 있는 지름길이 뚫린다면 어떨까요? 시작점에서 20분 걸려 A에 도착한 운전자 한 명이, 지금 B로 순간이동하면 도착점까지 20분 밖에 걸리지 않아 총 4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 운전자는 지름길 덕분에 40분만에 도착하여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운전자가 이 경로를 선택합니다. 4,000명의 운전자 모두 시작점부터 A지점까지 4,000/100=40분, A에서 B로 순간이동 후 도착점까지 다시 40분, 합쳐서 80분을 소요합니다. 지름길을 뚫기 전에는 모두에게 65분 걸리는 길이었는데 지름길을 뚫고 나니까 모두에게 80분 걸리는 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교통 흐름 속에서 운전자 개인은 어떻게 경로를 바꿔 보아도 80분보다 빠르게 도착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름길을 없애서 다시 양 경로로 운전자들이 나뉘게 해야 호시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경우처럼 보이나요? 하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1999년부터 약 3년 간 남산 2호터널이 폐쇄되었을 때, 브라에스의 역설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연구한 논문이 있습니다. 터널 하나가 폐쇄되면서 서울시 전체가로망의 속도가 21.95km/h에서 22.21km/h로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흥미롭게도 서울시의 청계고가도로 철거로 인해 서울시의 교통이 원활해졌다는 예시가 나와 있기도 한데 글쎄요, 저는 청계고가도로 철거 시에는 초등학생이었어서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아시는 분께서 댓글로 알려 주세요. 이외에도 뉴욕에서 브로드웨이를 임시 차단하는 실험을 진행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서, 이후 보행자 전용 광장을 조성한 바 있습니다.

브라에스의 역설은 교통망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송전탑을 추가해서 오히려 전력 공급에 불편을 끼칠 수도 있고, 멸종 위기 생물종들의 먹이 사슬에서 특정 종이 멸종함으로써 오히려 추가 멸종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통계적 증거는 없지만, 농구에서도 스타 선수를 보유함으로써 오히려 팀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저는 농구 팬으로서, 이런 경우들을 몇 번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더 많이'가 항상 '더 좋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더 적게'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번에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긴다면 '브라에스의 역설? 오히려 좋아'라고 긍정적으로 되뇌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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