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1899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189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자동차는 보이질 않습니다. 길에는 걷는 사람들, 말을 탄 사람들, 마차를 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는 애초에 없고 서로 눈치껏 양보하고 피해가며 다닙니다. 말을 타고 다니다가 자칫 보행자에게 위협이 될 만한 움직임을 보이면 질타로 돌려 받게 됩니다.
거리에 자동차가 다니기 전에 이런 분위기였을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지금처럼 보행자들에게 정해진 타이밍(파란 신호)과 정해진 장소(횡단보도)에서만 길을 건널 수 있다는 규칙을 심을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자동차가 갓 보급되었을 때 조심히 다녀야 했던 것은 보행자가 아니라 자동차였습니다.
1920년대 이전에 도로는 모든 이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사고가 급증했고 비난이 자동차 운전자들을 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킥보드와 보행자가 부딪히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킥보드 운전자를 비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부분의 보행자 사망 사고에서 사고 상황과 관계 없이 운전자가 과실치사로 기소되었습니다.
자동차 제조 업체들과 딜러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1923년, 신시내티 주민 42,000명이 자동차 속력을 시속 25마일(약 40km)로 제한해야 한다고 청원하자 지역 자동차 딜러들은 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모든 자동차 소유자에게 편지를 보내 이 조치에 반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시작으로 자동차 제조 업체들과 딜러들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서만 길을 건너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여 전국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교통사고의 책임을 보행자에게 돌리는 기사를 냈습니다. '무단횡단'을 의미하는 단어 'jaywalking' 또한 이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jay'는 '촌뜨기' 정도의 비하하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일반적이었던 보행 방법을 교묘하게 조롱거리로 삼은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안전캠페인을 벌여 아무데서나 길을 건너는 것은 조롱받을 일이라는 인식을 심었습니다.
무단횡단이 불법이 된 것은 이렇게 미국에서의 캠페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무단횡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지구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교통법에는 무단횡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있습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시면 플라스틱 제품들이 일회용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플라스틱은 튼튼하고 가볍고 씻기 편리합니다.
플라스틱 제품을 일회용으로 사용하게 된 것 또한 철저하게 마케팅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플라스틱 제품들은 내구성이 좋아서 자주 살 필요가 없었고, 게다가 가격마저 저렴했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을 파는 업체들로서는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을 쉽게 버리고 자주 구매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1955년 8월, Life 매거진에서 'Throwaway Living(일회용 생활)'이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40시간 동안 청소하려 하지 말고 그냥 버리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기사는 주부들의 노동 해방이라는 미명 하에 플라스틱 소비를 부추기는 저의를 담고 있었습니다. 꾸준한 마케팅으로 플라스틱 제품은 사람들 머릿속에 일회용품으로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더 알아보기
Wikipedia, Jaywalking
Vox, The forgotten history of how automakers invented the crime of "jaywalking"
슈카월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마케팅
Life, ‘Throwaway Living’: When Tossing Out Everything Was All the Rage
Tabitha Whiting, How We Created A Throwaway Society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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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바이서K
Australia 에서는 무단 횡단으로 경찰의 제재를 받는 경우는 - 지난 39년 동안 살면서 - 본적이 없습니다. 순전히 건너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구제받을수 없는것 처럼, 건너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인정받는 느낌입니다.
페퍼노트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자료를 찾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기는 어려웠는데, 달아주신 댓글 덕분에 정말 그렇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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