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괴로움은 생각으로 인한 해석에서 비롯됩니다.
낮고 높음, 얕고 깊음, 추함과 아름다움, 좁고 넓음, 가벼움과 무거움, 모난 것과 둥근 것, 부당한 것과 온당한 것 …
모든 구분에는 개인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며, 이로 인해 좋고 나쁨의 감정이 뒤따르게 되지요.
그런데 무언가가 높든지, 무겁든지, 어둡든지, 이 모든 게 내 존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내가 이 모습으로 타고나 세상에 '있듯', 그것은 그것만의 특성을 지닌 세상의 일부로서 그저 '있을' 뿐인데 말입니다.
'왜 그 모양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도, 누군가 나에 대해 그런 의문을 품는다면 어떨까요.
그대로 두려 하지 않고 덧붙이려 하는 행위는 '있음'을 결핍된 상태로 보게 하는
부정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부정성은 대상과 나를 구분 짓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기인합니다.
옳고, 절대적인,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나의 기준에 의해 그것은 규정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즉, 분별심은 이기심 없이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기심은 사람이 지닌 이성, 지식, 경험─그 모든 총체적 지각에도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해소할 수 있게 되지요.
내가 '믿는' 나, 내가 그동안 알아 왔던 나와, 내가 알아 왔던 세상이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내 작은 자아가 주장하는 목소리가 세상을 대변할 수 없음을 직면하고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그러한 수용의 끝에 다다라야만 분별이 사라진 '있음'만이 남게 되지요.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 그 자체, 본질이 말입니다.
겹겹이 쌓인 인식이라는 포장지를 하나씩 벗겨내야
서서히 의문이 가라앉아
진실이라는 내용물이 조용히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진실로,
창조의 완성된 형태이자, 신성의 표현이자, 사랑인
'참나'로서 말입니다.
선형적 마음에서만 흘러나오는 편집과 분류가 없을 때, 일체는 동등하게 절묘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이 잡초라고 무시하는 것이 꽃의 아름다움과 동등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모든 자연의 살아 있는 조각 설계는 동등하며, 분류하지 않을 때 일체는 동일한 장점이나 가치를 갖는 것으로 각성된다. 전부는 창조로서의 신성의 한 표현이다. 전부는 동등하게 신성하고 성스럽다.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수준을 넘어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동등하게 바라보고 사랑하며 산다는 게 어려운 일로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름에 집착하고, 불만을 품고, 복잡해하고, 부정성에 매일 때와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더 편안하고 발전적인 상태로 이끄는지는 충분히 예상하실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주관성의 환상 아래에 있는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일체감에 주목하게 되면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사라지고, 일어나선 안 될 일이란 없으며, 사랑은 주거나 받아야 할 게 아닌 '전부임'이 되지요.
어떠한 모습이든, 모든 생명은 완벽한 현현으로 제 할 일을 다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결점만이 보인다 한들
비난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일까요?(그 이득을 통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만물이 그러하듯
여러분 역시 지금껏 완벽하게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완벽하게 자신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 결핍감이 동기가 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그저, '내가 이 생애 겪는 세상은 이렇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구나.','성장을 위해서는 이런 게 필요하구나.'하며 알아가는 차원에서 경험하기만 해도 되는 거니까요.
생각이나 느낌을 일어나는 대로 시시각각 거부하지 말고 온전히 경험하여
완벽하다는 감각에 머물러보세요.
판단이 사라진 그 멎어있음 속에 깃든 부드러움을 느껴 보세요.
본질은 완전하며, 평화로우며, 사랑스럽습니다.
이는 참된 나, 일체의 본바탕이 지닌 속성이지요.
그렇지만 이를 떠나
온갖 분류와 의미 부여를 통해 옳다는 확신을 얻고자 하고
그른 것을 부각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만큼 더 이로운 결과를 낳게 될까요?
근원 안에서 대립이란 없습니다.
불충분하여 더 갖춰야 할 것도,
내가 각별해져야만 하는 이유도 없습니다.
근원은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마음의 침묵이며
우리는 근원이 될 때 행복합니다.
근원 안에서 나의 행복은 일체의 행복이며,
일체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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