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은 누가 봐도 지치고 쓰러질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훌륭한 생각을 해낸다.
문제에서 출발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작은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내면에서 더 나은 인간을 끌어낼 줄 안다.
이미 일어난 힘든 일에 짓눌리지 않고 더 나은 일을 위한 재료로 쓴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단련하고 자신을 바꾸는 싸움에서 영웅적이다.
자신의 무게를 남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으려 애쓴다.
감정적이지 않고 연민과 동정에 기대지 않고 고통에 호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을 가능성까지 받아들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고 한다.
적응만이 아니라 변화를 말하고 대안을 만들려고 하고
그렇게 사는 삶이 가능함을 보여주려고 한다.-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삶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려 하질 않습니다.
피하고 싶은 문제는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흩트려놓고,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아무리 문제를 막기 위해 나름의 대비를 철저히 한들,
문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여 우리 앞에 나타나
'어디 피할 수 있으면 피해봐!'라고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를 어찌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한없이 나약해짐을 느낍니다.
특히 주변에 별다른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작아지는 나를 느낍니다.
누군가와의 비교는, 안 그래도 힘든 감정을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죠.
비교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 그때 우리는
비교라는 게 스스로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뿐더러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겉보기에 평탄해 보인다 할지라도 문제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제가 저절로 피해 가게끔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타고난 사람이 정말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그럼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죠.
그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들은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다수의 사람처럼 낙담하거나, 비관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심지어 기이할 정도로,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는 걸까요?
태생이 달라서일까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내면에 눈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훌륭한 자질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려면,
먼저는 스스로 그걸 가능케 하는 힘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훌륭하게 살고 싶다면, 훌륭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자신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요.
원치 않는 상황이 찾아올 때, 자신 안에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심지어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게 해줄 힘이 있다는 걸 떠올려 보신 적 있나요?
나의 상태는, 상황의 좋고 나쁨은, 나의 해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같은 상황 속에서도
내가 진정 '보고자 한다면', 작은 틈새는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그 틈새는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하여
새로운 나로서 살아가게 해주는 문이기도 하지요.
강한 사람은, 새롭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능한 존재'임을 알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가능한 존재'.
좌절할 줄 안다는 것은 긍정할 줄도 안다는 겁니다.
포기할 줄 안다는 것은 시도할 줄도 안다는 겁니다.
분노할 줄 안다는 것은 잠잠할 줄도 안다는 겁니다.
왜 부정적인 가능성은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까요?
어떤 가능성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강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나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존재,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상황이 우리를 막는다 하여
우리의 생각까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어려움을 지나와,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포기할 수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숨 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바로 '생각의 힘'에 대한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는 생각할 수 있기에 강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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