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으로 내 존재가 확인된다면 난 이미 타인의 식민지다.
-쇼펜하우어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를 어떤 방법을 통해 확인하고 계신가요?
타인에게 증명을 할수록, 인정을 받을수록 내 존재감이 살아남을 느끼시는지요,
그것과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든 동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시는지요?
사실 이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질문입니다.
존재가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맞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한시도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요?
내가 나에 대하여 의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느끼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늘 우리는 '존재인' 상태니까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득을 취할 수 있으려면 증명을 해야만 하는 이해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득은 고사하고 최소한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증명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생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생각을 정말 원해서 떠올리는 것일까요?
질문 안에 힌트가 있습니다.
계속하여 인정욕구를 일으키는 뿌리 원인은 타인의 영향력이나 사회적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증명을 통해 끊임없이 내 존재를 확인받으려 한다는 건, 내가 내 생각의 식민지가 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내가 이미 식민지화되었는데, 어떻게 타인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타인에게 얼마만큼 증명을 하고 인정을 받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오가고,
자존감의 하강과 상승이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타인의 인정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결코 잡을 수 없는 허상이자, 잠시 잠깐의 눈속임에 불과함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 또한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늘 한결같은 사람이 없으니,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늘 한결같은 사람도 없겠지요.
내가 이만큼 증명하면, 타인은 저만큼을 바랄지 모릅니다.
타인이 이만큼 증명하면, 나는 저만큼을 바랄지 모릅니다.
게다가 증명을 해봤자 사람은 저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 제각각이니,
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타인에게 백 퍼센트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매 순간 백 퍼센트를 증명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한 부분보다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에 더 집착해
상처를 입고, 타인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부풀리고, 지난 과거에 대한 경우의 수(~했더라면)를 떠올리고, 더 큰 인정욕구를 키우고, 완벽한 증명을 위해 스스로를 한층 더 몰아가게 되곤 하지요.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하여 아쉬움을 갖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증명한 만큼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노여움을 품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결핍으로부터, 식민지로 만드는 생각들로부터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는 길이 아닐까요?
나는 꼭 타인에게 증명될 필요도,
타인은 나를 위해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존재'에 있어 증명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증명과 욕구는 더 많은 증명과 욕구를 낳지만,
존재는 늘 존재일 뿐입니다.
나의 존재, 타인의 존재는 다르지 않으며
하나인 존재는 하나의 존재만을 보게 만듭니다.
비우고, 흐르며, 모든 순간에 순수히 존재할 때
우리는 증명을 필요치 않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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