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라기보다 고독이 두려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가?
-펜턴 존슨, [고독의 창조적 기쁨]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정말 '사랑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고독을 피하고 싶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장을 보며 제대로 사랑하며 살지 못했던 과거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고독이 두려워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욕망을 사랑이라 착각했던 그 숱한 날들이 말이죠.
혼자 있고 싶지 않고, 나의 어두운 면을 감싸줬으면 하고, 내가 뭘 느끼든 공감해 줬으면 좋겠고, 실수를 했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필요로 할 때 찾아와주었으면 싶고, 그 누구보다도 내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줬으면 싶고…….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그 얼마나 바라는 것이 많았던지.
반대로 나는 상대방이 내게 무얼 바라는지를, 나의 바람만큼 떠올려본 적이나 있었는지.
홀로 있으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 대한 생각들로 뒤덮이고...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해 생기는 혼란을 그 사람을 향한 사랑 때문이라고 여겼던,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생기는 결핍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채우고자 했던, 채우려 할수록 공허의 늪은 깊어져만 갔던 시간들.
사랑한다면 사랑을 위한 생각을, 말을, 행동을 해야 하는데
내가 그리던 사랑하며 사는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왜 자그마한 일 하나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들이 왜 그토록 미워지게 되는 것인지.
그때의 저는 제 자신이 곧 사랑의 원천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의 고독이 나로서 충만해질 수 있는, 회복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랑과 다름없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가만히 내 마음을 바라보고, 잠잠해진 가운데 빛처럼 번져오는 사랑을 느끼면 되는데
내 시선은 사람들에게만 향해 있었으니,
늘 외면당해야 했던 '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여러분은 고독해지는 게 두려우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내가 나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고독에서 오는 두려움은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이 고독해져야, 고독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포함해서
나를 진하게 마주해야만 사랑만이 남게 되지요.
생각이 떠나가고, 감정이 떠나가면서
두려움은 실체가 없으며 사랑만이 실체임을 알게 되지요.
내가 누군가를 통해 사랑을 느낀다면, 내 안의 사랑이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것 이상으로 느낄 수가 없지요.
여러분은 주변의 관계들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신가요?
그런데, 정말 '관계를 위한 관계'를 하고 계신 건 맞나요?
너와 나의 관계가 주는 만족감의 뿌리가 정말 이 관계로부터 오고 있는 것일까. 혹은 단지 이 세상으로부터 정의 내려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뿐일까. 역할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정말 관계를 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답을 찾는 것으로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다. 끝이 어떠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혹여 나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스스로 역할을 부여하면서도, '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얻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요.
진실하게 사랑하는 관계를 바란다면, 이를 위해 나는 얼마나 진실해질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해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로부터도 진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원하는 게 역할인지 관계인지, 고독을 피하고 싶은 건지, 정말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답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초점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얻은 답이 서로 사랑하며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사랑의 근원이 '나'이며, 나와의 관계가 먼저 사랑으로 맺어져야
타인과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잊지 않는,
늘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사랑의 기운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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