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돕고, 지지하고,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사람은
타인을 진정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윤리, 양심, 의무감, 인류애와 같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관념에 자신을 가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관념, 당위성에 갇히게 되면
그와 어긋나는 관념이 세상에 있어야 할 필요를 모르고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 자신이 믿는 선한 일을 하더라도
내면이 공허해지게 됩니다.
존재는 일부만으로 채워질 수 없으며 늘 완전한 상태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이상 부정성이 자유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존재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게 없기에
하나의 입장을 지지하지도, 배격하지도 않습니다.
돕는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야만 하기에 돕는 것과
저절로 돕게 되는 것은 다르지요.
존재가 되는 것은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존재이지 않은 한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고 돕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도울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줄 수 있음에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망하지만
비난을 누구에게 가하든 결국 처음 시작된 곳으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무엇이 존재를 가두고 있을까요?
합당한 것, 품위를 높이는 것, 칭찬을 받을만한 것, '더' 좋아 보이는 것 …
정말 알아차리기 힘든 것은 드러난 악이 아닌 신성불가침한 선의 이미지 아래 교묘히 감춰진 의도입니다.
내가 행하고자 하는 일은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를 내보이기 위한 허영심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요?
나는 오로지 '행함'으로 인해 만족을 느끼고 있을까요, 결핍을 느끼고 있을까요?
이는 특히 어려서부터 양보, 배려, 유순함, 인내, 이른바 여성적이라 불리는 자질을 교육받으며 나를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해진 이들이 간과해선 안 될 부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다 보니 나를 잊고 살았다는 말은
나의 인생을 살지 않은 것이며, 한 번도 존재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덕스럽게 여겨야 할 것도, 본받아야 할 것도, 칭송할 만한 것도 아니지요.
모두의 선을 위한 행위였다고 할지 모르나 자신이 빠진 선이 어떻게 선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탈선입니다.
ㅡ누군가의 희생 없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ㅡ우리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일까?
이런 의문에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으신지요?
'희생'도, '어떻게'도 지우고, '옳은'도 지워야 합니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성인들은
과연 스스로 '희생'한다고 여기며 행했을까요?
그들이 구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존재의 대답은 판단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속한 성별, 국가, 시대, 지구, 모든 역할과 위치를 지워 버린다면
내가 정말 나로서 살고자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답을 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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