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깊고도 광대한 고요 속에 놓여본 적이 있으신가요?
깊은 고요 속에 있으면
모든 것은 정지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일지 않지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은 사라지고
찰나만이 전부가 됩니다.
여러분은 혹여 고요함이 너무 어색하게만 느껴지시나요?
고요함이 늘 나와 함께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과거 저는 감정을 세세하게 분석해
기록하고, 말하고, 느껴보는 식으로
내면의 수용력을 기르는 심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기본 전제는 감정이 곧 '나'이기에
어떤 걸 느끼든 소중히 돌봐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내 감정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꿈틀거린다는 것과
감정에 좋고 나쁨이란 없음을 알게 해 준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감정이 '나'가 아니며
감정 너머에서 관찰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이후로
고요와 평온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도,
물을 것도 따질 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모든 현상 속에, '존재함'과 맞붙어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얻고자 했던 그것은
오히려 아무런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는
해방을 나에게 허락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었죠.
이는 제게 너무도 큰 충격이자, 경이였습니다.
원래 삶이라는 건 크게 얻으려 할수록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야만 하는 게 아니던가요?
쉽게 얻는다면 쉽게 잃는 게 아니던가요?
이러한 생각도 저의 해방을 가로막는 생각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고요는 얻거나 잃을 수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존재가 곧 '나'이니까요.
존재보다 더 큰 건 없으며,
엄밀하게는 크다, 작다, 취하다 - 그 모든 개념의 바깥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과연 내면의 상태로 정의될 수 있는 존재일까요.
우리의 참모습은 오늘의 기분, 결심만으로 다 알 수 있는 걸까요?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정화하는 작업을 했다면
내일은 마음에 아무런 걸릴 게 없이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까요?
일어나는 것은 가라앉기 마련이며
가라앉은 것은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나의 중심은 늘 0,
변함이 없는 '인식'의 상태에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바라볼수록 고요는 깊어지고
존재는 점점 더 환한 빛을 내뿜으며 나를 비추어줍니다.
반응을 느끼고 공감할 수는 있지만
실체가 아닌 것, 맥락의 장난에 뛰어들고 말고는 나의 선택,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고요의 시선이 바로
자유의지가 있는 주체적인 '나'인 것입니다.
생각은 나의 의지를 떠나 저절로 일어납니다.
감정 역시 나의 의지를 떠나 일어납니다.
한순간 파도가 입니다.
강화된 생각, 감정일수록 파도가 치는 횟수는 더 잦습니다.
다만 나는 볼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살아있음은,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요?
생각이 아닌, 감정이 아닌,
말이 아닌, 행동이 아닌,
아무것도 일으키고자 하지 않는 관조의 시선.
침묵만큼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을 바르게 알기 위해 사실
말하고 싶지도, 감정을 나누고 싶지도,
어떤 행위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함께 명상을 하고 싶습니다.
의문은 가라앉고 최초의 자각만이 남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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