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력이 한 층 업그레이드된 일주일이었다. 다음날 미팅을 위해 새벽 네 시에 잤던 화요일 밤을 시작으로 이전 집을 싹 비우고 키까지 반납한 금요일까지… 혼자 72시간 다큐를 찍으며 🅼🅸🅲🅷🅸🅽 거 아니야를 하루에 열 번도 더 외쳤다. 지난주에 옮긴 짐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이사를 시작할 때는 부탁할 만한 사람들이 잠시 이 동네에 없거나 시간이 안 맞아서, 또는 내가 누군가의 시간과 힘을 빌릴 용기가 없어서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했다.
Day 1
수요일에는 미팅이 끝나자마자 매트리스도 받을 겸 1차로 새 아파트로 이동했다가 다시 내 매트리스와 베드프레임을 친구에게 팔러 이전 집으로 돌아왔다. 퀸 사이즈 매트리스가 살짝 흐물흐물해서 둘이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 수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친구에게 우리 둘로는 안될 것 같다고 미리 얘기는 했었지만 결국 둘이서 매트리스를 거의 질질 끌어서 주차장까지 가져갔고, 친구 차 위로 밀어올렸다. 친구 아파트 역시 복도가 꽤 길어서 이리저리 끌어서 옮기고 두 시간 정도 걸려서 베드프레임과 매트리스를 옮겼다. 너무 지쳐서 같이 햄버거를 먹었는데 그 뒤로 내가 18시간 금식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본격적으로 셀프 이사를 시작. 안방과 욕실부터 비웠다. 2차로 차에 짐을 꽉 채우고 다시 새 아파트로 이동.
안타깝게도 베드프레임이 집 앞이 아닌 아파트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중앙 건물에 배송되어있었다. 심지어 50kg, Team lifting이라고 써있는데다 길이가 내 키보다 커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고 약간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겨우 수레에 얹었다. 아주 조심조심 끌어서 집앞까지는 왔는데 계단을 내려갈 수는 없었다. 이미 친구 매트리스를 옮기다 허리가 아픈 상태여서 차라리 무릎을 상하게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자리에서 박스를 뜯어서 다섯 번에 걸쳐 나눠 옮겼다. 조립도 거의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무조건 다 하고 매트리스까지 얹어야만 했다. 부품도 좀 빼먹은 것 같지만 설마 무너지진 않겠지.
다시 이전 아파트로 돌아갔을 땐 밤 9시였다. 쓰레기 버리고 온 집을 청소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TV와 잔여 짐들로 차를 꽉 채우고 나니 거의 새벽 한 시였다. 아직도 마루에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짐들과 욕실에서 원상복구 안되는 과제 두 개로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새 아파트로 이동했다.
새 아파트에서 차로 실어온 짐들을 옮기는 것도 참… 어떻게 했지 싶은데 비워야 내일 또 가져오니까 이 꽉 깨물고 옮겼다.
Day 2
다음날 아침에 inspection 예정이었는데, 아무리 해도 마무리가 안될 것 같아서 전화해서 내일로 미뤄달라고 했다. 일단 너무 굶어서 맥모닝부터 먹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욕실 벽에 들러붙은 접착면과 샤워기 헤드 원상복구가 문제였다. 접착면은 S 언니에게 받았던 올영 기프트카드가 생각나서 그걸로 40분 정도 인내심을 갖고 밀어내니까 CLEAR. 샤워기는 아무리 랜치를 쓰고 목장갑 고무장갑으로 힘을 써도 안됐다.
4차로 짐을 옮기면서 세시쯤 점저를 먹었다. 너무 힘들어서 포케를 사먹고 새 아파트에서 다시 짐을 옮겼다. 급하게 해야하는 작업을 하면서 집 앞에 찾아온 사슴이랑 눈까지 마주치고… 이제 정말 욕실 샤워기를 해결해야 할 시간. Home Depot라고 집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AI에 따라서 WD-40이라는 걸 사서 석회를 녹이고 다시 헤드 부품을 돌려볼 생각이었는데 그걸로도 안되면 어쩌지, Deposit은 날려야되나 온갖 고민을 하던 찰나 누군가한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계산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쪽 구석에 계시던 백발 할아버지한테 excuse me, hi를 다섯 번 했는데 대답이 없으셨다. 극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어 부품이랑 내가 가진 공구 사진 다 보여주면서 WD-40 말고 다른 거 사야되는 거 없냐고 하니까 이빨 달린 파이프 랜치를 사야한다고, 너가 가진 육각 랜치는 미끄러져서 안될 거라고 했다. 깨끗하게 쓰고 환불하라는 팁까지 주셨다. (물론 이미 새 집 샤워기 교체에도 유용하게 써서 평생 간직할 예정이다.)
밤 10시가 되어 이전 아파트에 도착. 기적적으로 파이프랜치로 샤워기 헤드를 교체하고, 마지막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또다시 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앉을 곳 없이 쉬지도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책상과 의자가 남았다. 책상도 집에서 끌고 다니기만 해서 몰랐는데 내가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게다가 책상 발바닥에 마찰면이 있어서 긴 카펫이 깔린 복도 위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질 않았다. 결국… 책상을 버리기로 하고 위아래를 뒤집어서 밀었다. 그렇게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웃긴 건 5차로 새 아파트에 짐을 옮긴 후 파이프 랜치를 쓰레기장에 두고 온 걸 깨달았다는 것. 그게 있어야 새 아파트의 샤워기도 교체하는 데다 내일 가면 없을 것 같아서 새벽 두 시 반에 운전을 감행했다. 미친 짓이었는데 마침 S에게 전화가 와서 무서움을 덜고 무사히 집까지 돌아왔다.
새벽 세 시에 샤워기 헤드는 새로 산 파이프 랜치로, 욕조 마개는 공구함의 드라이버로 교체를 마쳤다.
Day 3
이제 정말 찐막. 다음날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inspection까지 무사히 마쳤다. 아파트 매니저가 looks like brand new라며… 이전 집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너무 몸이 지쳐서 냉장고에 있는 온갖 사진들 떼어내며 센치함에 젖을래야 젖을 수가 없었다.
짐은 겨우 들이밀었지만 엉망진창이 된 집. 그 다음날 룸메가 돌아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엌과 마루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고 이사를 끝냈다.
하도 청소를 했더니 금요일부터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피부가 까지고 왼쪽 검지는 욱신욱신하길래 이건 뭐 벌써 손가락 관절염이 온 건가 걱정하면서 S가 준 피부염 약을 한 번 발라보고 잤다. 그런데 토요일에는 일어나보니 왼쪽 검지가 아예 구부러지지 않아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가시 박힌 거 아니냐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고 봤는데 진짜 뭔가 박혀있었다. 바늘을 소독할 수도 없고 라이터도 없고.. 병원도 문 닫았고… 어찌할까 하다 치실 끝으로 살짝 파냈더니 천만다행으로 가시를 빼낼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가시가 나를 괴롭히다니. 그래도 너무 아파서 또 AI한테 뭐 사야되냐고 물은 후에 CVS로 향했다. 이번에도 물어보자! 한참을 서성이는 날 보더니 처방하는 약 파는 아저씨가 뭐 필요하냐길래 사진 보여주니까 good job 이라고 하며 제품을 추천해줬다. 응급처치 완료.
이런 머리와 에너지로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하다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귀한 경험을 했다. 오늘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복대를 차고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단시간에 몇 년 치 생존력을 얻은 느낌이지만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셀프 이사를 하지 않으리…
새 아파트에서 사슴, 거미, 온갖 벌레들과 공생하는 공간이 궁금하다면 stay tuned,
Poe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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