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되었고, [선택과 집중]이 절실해지는 한 주였다.
화요일에 개강이라 자잘한 일들을 월요일에 모두 끝내고 싶었다. 매트리스 사기, 주유하기, 백신 맞기.
매트리스가 너무 물렁물렁해서 일어날 때마다 이상하게 허리가 아픈 느낌이었다. 내가 운동을 덜 해서 그런가 했는데 한국인 분과 이야기를 해보니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내가 아마존에서 산 $170 짜리 매트리스는 매트리스가 아니라고 했다. 하긴 배송올 때 아예 돌돌 말려있었으니 스프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500 예산을 잡고 매트리스 매장에 갔지만 $1000(심지어 $2000을 반값 할인해서 $1000)은 줘야 내가 원하는 정도의 딱딱한 매트리스를 살 수 있었다. 토퍼를 사서 얹을까 했는데 토퍼는 부드럽게 하는 용도지 딱딱하게 해주는 용도가 아니라고 했다. 다음주까지 아직 세일기간이 남았으니 일주일만 더 참아보자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하고 얼른 예약한 시간에 맞춰 백신을 맞으러 가려했는데 코스트코 주유 줄이 너무 길었다. 중간에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여기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럼에도 곧장 백신을 맞으러 갔으면 됐는데 서류가 필요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집에 후다닥 들렀다. 겨우 제 시간에 도착을 했는데 정작 주차장을 잘못 찾아서 5분이 늦어졌고 $40 페널티에 예약도 다시 잡아야 했다. 이 백신도 한국에서 예방접종을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텐데, 한 번에 끝날 줄 알고 7월 1일에 병원을 갔더니 몇 번에 걸쳐서 백신 맞으러 들락날락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일이 매일 있었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두 번 세 번에 걸쳐서 다시 하고, 갔던 곳을 또 가고...
긴장된 마음으로 학기가 진.짜. 시작되었다.
아침에 공부 좀 하고 전날 해둔 밀프렙으로 도시락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점심에도 I-9이라는 아주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다녀왔는데 땡볕에 헛걸음을 했었다. 학교가 너무 크고 도서관 안에서도 길을 잃었다. 결국 수업이 다 끝난 후 제출을 다시 했고, 저녁에 TA 줌 미팅을 하고 나니 저녁 7시였다.
다음날도 수업과 TA 수업, SSN 신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잔 다음 도서관으로 갔다. 학교에서 이번주 풋볼 게임을 위해 연습하는 밴드를 볼 수 있었다. 멋있기도 하고 열정 넘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나는 뭘 했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분명히 나도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기억이 다 나지 않을 뿐이다. 가끔은 내가 더 일찍 유학이나 해외취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덜 무서웠을까, 덜 망설였을까? 하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인생을 길게 보면 자아가 형성되는 20대에 한국의 시스템을 충분히 경험한 것은 큰 자산이다. 한 번에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법이니.
목요일에 제대로 수업이 시작되었을 땐 못 알아들었다. 뭐라도 말을 해야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나를 억지로 증명하려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러닝 대신 산책을 하고 팟타이를 사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어느 날부터 노래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이 힐링 타임이 되어있었다. 운전도 무서웠고 주차도 어렵고 몇 년이 되도록 모르겠는 일이었는데 하다보니 별 문제가 아니었다.
금요일에는 처음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이 있었다. 8월 중순에 하려던 미팅이 미뤄진 거였다. 이미 첫 주 수업이 모두 끝났는데, 지도교수님은 이번학기부터 바로 연구를 시작하기 바라셨다. Foundation Course는 들어도 우리 연구에 적용이 어렵고 이미 석사가 있으니 Core Course부터 듣되,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되는 두 과목만 먼저 듣고 두 과목은 일 년 동안 혼자 공부하다가 내년 가을에 들으라고 하셨다. 연구 학점을 6학점 주면 12학점을 채울 수 있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PhD는 연구를 하는 곳이고 일 년에 하나의 publication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좋은 제안이지만 PhD 디렉터인 다른 교수님과도 월요일에 얘기를 해봐야 하고, 금요일 하루 동안 갑자기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하느라 기절해버렸다.
주말에는 고민 끝에 수영장도 가보았다. 무려 온탕도 있는 수영장이었다. 네이버 지도에 저장한 곳이 잔뜩이었던 서울에서의 나처럼 여기서도 조금씩 탐색전을 시작하고 있다.
혼자서만 뭔가를 이룰 수는 없다. 내 시간도 에너지도 제한적이고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러니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건 도움을 구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9월이 온다. 이 곳은 벌써 저녁이면 쌀쌀하다.
To be continued,
Poe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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