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온 지 딱 일주일이 되었다. 15시간 넘는 비행이 아찔했지만 지연없이 무사 도착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비가 폭풍처럼 왔었다. 미국은 비 오는 것도 스케일이 크구나, 이런 날 어떻게 운전을 하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0 개월이 지났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공항으로 올 때도 딱 그때처럼 비가 내렸다. 친구는 이미 중부에서 이보다 더한 날씨도 있었다고 했고, 나 역시 아이구 또 비가 왕창 오는구나, 그게 다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라,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네에서의 10개월.
긴 비행과 짐 챙기기는 이제 일이 아니다. 몇 달간 어질러놓은 용품들을 버리고 치우고 빨래-설거지-청소를 세트로 하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한다. 비가 오는 날 저녁에도 필요하면 운전을 한다. 파예 요거트는 어느 마트가 제일 저렴한 지, 트레이더스조와 코스트코는 언제 가야 사람이 제일 없는지도 안다. 아무리 짐이 많아도 입에 물기 신공을 활용해 한 번에 다 들고 올라갈 수 있다. 겨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선 깜깜하고 텅 빈 집도 그러려니 한다. 지도교수님과 주간미팅을 할 때 처음만큼 긴장되지 않는다. 그렇게 적응을 했다.
불확실성을 가득 안고 사는 삶에도 적응중이다. 갑작스레 정책이 바뀐다는 뉴스와 전쟁, 바이러스, 근처 총기사고 소식에 가끔 놀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생애주기에 따라 성장해나가는 걸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쓰는 이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나의 현실과는 멀게만 느껴지면서 나이에 대한 감각도 미래를 그려보는 역량도 감퇴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내 삶에 점수를 매길 만한 능력이 없다.

사실 가장 큰 업적은 별 일 없었다는 거다. 큰 사고가 나지 않았고 누군가와 크게 갈등을 빚은 적도 없고 믿을 만한 룸메이트가 곧 생긴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박사과정 첫 해는 충분했다 치자.

서울에서는 책을 좀 읽다 가고 싶다. 지금 하는 인터뷰 연구 데이터를 부디 90%는 모으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기보단 여기서도 내 시간을 확보해야 돌아가서도 정신이 말짱할 것 같다. 사람들과 만났을 때는 그저 편안하게, 날은 뜨겁지만 종종 허그를 곁들이면 좋겠다.
다시 서울에서,
Poem Kim
P.S. 이 편지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쉬어갑니다. 그렇잖아도 가득 차 있을 메일함 한 켠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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