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지로부터 겨우 2주가 지났건만 체감상 한 달은 더 된 것 같다.
가장 중요했던 논문 제출은 무사히 마쳤다. 마치 시험기간처럼 부엌을 두 시간 동안 치우질 않나, 하고싶은 일도 잔뜩 쌓여갔다. 매일 매일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감 이틀 전부터는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있었다.
박사과정 일 년이 별로 한 것도 없이 지나갔나 싶어 여름방학 때 꽤나 불안했는데 이제 성과에 포커스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논문이라는 형태로 프로젝트 전과정을 한 번 경험해보니까 다음 프로젝트도 잘 구상해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레 생겼다.
오늘 아침에는 수영 후 새로운 도넛 가게에서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책인데 아직 1/3밖에 못 읽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내 연구 아이덴티티를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너무 멀리 둘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간만에 마음이 편안한 오전 시간이었다.

토요일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잠시 식당을 차리며 만났던 E가 결혼을 하고, 일요일에는 대학원에서 만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가 결혼을 했다. 미국에 오고 나서야 꼭 참석하고 싶은 결혼식이 늘어나서 아쉽다. 회사발 단톡방을 보면 곧 태어날 아이도 있고, 갓난아기였던 친구는 이제 걸어다닌다.
나의 시간만 멈춘 듯 할 때도 있으나 일상은 대체로 즐거웠다. 드디어 모니터와 키보드까지 갖춘 데스크테리어에 집에서도 일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 되었다. 깻잎도 분양받았고, 집 앞인데도 일 년간 엄두를 못냈던 한국식 고깃집도 가보고, 룸메랑 열심히 밥을 나눠먹고, 위스키에도 입문하고. 복싱도 시작했다. 한국처럼 줄넘기를 시킬 줄 알았는데 가자마자 펀치를 알려주었다. 요가보단 복싱이 재밌는 것 같다.

최근 헤이타블로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유튜브 뮤직으로 노래를 듣고 다녔는데, 뜬금없이 권진아의 <문턱>이 내 Speed dial에 떠있었다. 출근길에 별 생각없이 눌렀는데 듣자마자 눈물이 훅 쏟아졌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한 시간씩 집 근처를 떠돌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나 5 분만에 안경닦이로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저께는 찾을 게 있어서 사진첩을 열었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감정을 물리치느라 애먹었다.

삶이 이토록 가볍나 싶다가도 상실감과 불안감이 불시에 찾아드는 걸 보면 살아가는 행위에는 고도의 매니징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멋들어진 편지를 써주려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Thank you,
Poe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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