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맛 팝콘] -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 문화역서울 284

옥수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돌아온 노디입니다. 요즘 정말 너무 덥고 습하죠.ㅎ 날씨가 점점 동남아를 닮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갑자기 오는 소나기 때문에 우산을 항상 지참하고 다녀야 하는 요즘이죠. 그래서인지 이번 여름은 확실히 전보다 양산을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아지신거 같아요. 우산 겸용으로 나온 양산이 사이즈도 작아서 휴대하기 편리하기 때문이겠죠. 예전엔 어머니들이 주로 레이스 양산을 많이 쓰고 다니셔서 양산이 올드한 이미지가 강했던거 같은데 확실히 요즘엔 트렌디하게 잘 나오더라구요. 전 아직까지 선글라스를 고집하고 있지만 조만간 하나 장만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문화역서울 284

이번달은 제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구 서울역으로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오고가며 많이 지나치셨을 수도 있고 이미 이곳을 자주 방문해보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이곳을 소개해드리려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번 방문해도 좋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어 현재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근대건축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같이 공존하는 새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성역의 시작

문화역서울 284의 첫 시작은 경성역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약 3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25년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신축되었는데요. 당시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타일과 화강암 등으로 이루어진 이국적인 외관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서양의 근대문명을 빠르게 흡수하여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일본의 야심찬 계획의 일부였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경성이라는 곳은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건물의 설계자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도쿄대학의 쓰까모토 야스시의 입면 스케치가 발견되면서 그를 설계자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경성역의 모티브가 도쿄역이 아닌 스위스 루체른역과 거의 일치하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실제 계획된 규모는 현재보다 더 컸지만 아쉽게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면서 중추역으로 역활을 지속해왔는데요. 2004년 신 역사가 완공하면서 구서울역은 버려졌습니다. 관리부실의 이유도 있지만 노숙자들이 몰리면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보존의 중요성이 커져 구서울역을 문화공간으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오갔다고 하는데요. 이는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버려진 산업공간을 박물관 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데서 착안한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관리단체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바뀌면서 2011년 8월 9일에 구서울역은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재오픈을 하게 됩니다.

Episode 1. 등급별 대기공간

문화역서울284에 들어와서 마주하게 되는 공간은 중앙홀입니다. 이 홀을 중심으로 공간이 세분화 되어있는데요. 입구에 들어와서 양쪽으로는 매표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3등 대합실, 좌측으로는 1,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 귀빈실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지금의 공항에 비유하자면 이코노미석, 비즈니스석, 1등석들을 위한 라운지가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3등 대합실은 일반석으로 가장 큰 큐모로 이루어졌고 장식 없이 넓은 밴치들만 나열된 곳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여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1,2등 대합실은 더 고급스럽게 꾸며진걸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조명을 보면 확실하게 공간의 성격이 들어나는데요. 위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공간의 조명이 화려해지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장식적인 벽지도 한 몫하고요. 대기공간에서 또 엿볼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사회문화입니다. 아직까지 ‘남녀칠세부동석’이 남아있던 시대여서 1,2등 좌석표를 구매한 여성을 위한 부인대합실이 따로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귀빈실은 지금으로 치자면 VVIP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 황실의 귀빈들이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전용출입문과 귀빈 수행원들을 위한 공간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빈실 내부에는 큰 거울이 벽에 걸려 있는데요. 사람 키보다 높이 걸려있는걸로 이는 거울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값비싼 거울로 공간을 장식했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Episode 2. 최초의 레스토랑

2층은 빨간 카펫트가 깔린 넓은 홀인데 매번 이곳을 갈때마다 어떤 공간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매표소와 비슷한 창구가 있어 표를 사러 2층까지 올라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이 있던 ‘그릴’이라는 레스토랑입니다. 제가 매표소라고 생각했던 곳은 주방에서 음식을 건네주는 창구역할을 하는 곳이었구요.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40여명의 요리사들로 이루어졌고 한 번에 200명의 식사가 가능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으로 국내에 함박스테이크와 돈가스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한 끼 정찬 가격은 3원20전으로 그 당시 15전인 설렁탕 한 그릇과 비교하면 매우 비싼 가격인걸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한끼 식사에 약 15만원에 이르는 파인다이닝 코스라고 합니다.

그릴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게되었는데 서울역그릴은 최근까지도 영업을 했었습니다. 신역사로 이전하면서 영업을 계속해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11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폐업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랑 외환위기에도 이겨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는 빗겨나가지 못했네요. (현재 롯테월드몰에서 운영되고 있는 1925서울역그릴은 서울역의 그릴컨셉을 가져온 식당으로 본점이었던 곳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당시 레스토랑 그릴은 경성시대 유행을 선도했던 모던보이, 모던걸이 자주 찾던 공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모던보이, 모던걸이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MZ세대 이런 느낌이 아닐까요?

사회적으로 그들을 동경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나라의 사정과 조신하지 못한 스타일로 인해 경멸과 조소섞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고 합니다.

영화 모던보이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다룬 영화가 한 편 있어 잠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 당시의 경성역의 모습과 조선총독부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2008년에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영화 [모던보이]입니다. 박해일 배우와 김혜수 배우가 주연을 맡았느데 지금으로선 보기 힘든 투샷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37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해명(박해일)은 우연히 보게 된 공연에서 로라(김혜수)에게 반해버립니다. 이를 계기로 둘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친일파인 이해명과 독립운동가인 로라는 계속해서 어긋나게 되는데요. 사랑이라는 이유로 결국엔 모든 걸 포기하고 독립군이 되어가는 이해명의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정지우 감독은 그 시대의 독립운동가들보다 모던보이라는 사회적 집단에 주목한 걸 볼 수 있습니다. 감독이 그린 이해명이라는 사람은 한국사람이지만 일본사람이길 원했고 일본의 1등시민이길 원했습니다. 일반적인 시대극 영화에서 보여졌던 독립군 시점에서 벗어나 반대편에 섰던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저 시대를 살아가는 모던보이, 모던걸이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고민하면서 말이죠.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저 시대의 경성은 꽤 매력적이며 재미있는 도시로 느껴집니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새롭게 지어지는 이국적인 건물들이 주는 희망찬 미래가 있는 가슴벅찬 도시로 말이죠.

하지만 이와 반대로 독립운동가였던 로라의 삶은 달랐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배신해야했고 이별을 선택해야했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꿈꾸던 삶도 포기하고 자신까지 희생해야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너무 달랐던 둘의 행보는 결국 사랑때문에 비슷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해명이 마지막에 독립운동가가 되었던 이유도 결국엔 로라를 위했다는점에서 영화 모던보이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로 끝맺음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중간 중간 매끄럽지 못한 스토리 전개, 다소 어색한 배우들의 말투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경성역과 함께했던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영상미는 덤이구요.

Eposide 3. 시베리아 횡단 철도

그럼 다시 문화역서울284로 돌아와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성역이 한반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기차를 통해 경성역을 시작으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유럽까지 뻗어나가려던 일제의 야심찬 계획은 다행히 실행되지 않았지만 철도가 생긴 덕분에 그 당시 사람들은 서울에서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할 때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보름만에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육로로 한국에서 유럽까지 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 또한 경성역을 통해서 파리로 갔는데요. 북과의 교류에서 자유로웠던 그 시기에 철도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경성역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상 <유라시아 횡단열차 승차권>이 만들어졌는데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열차운임을 기준으로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615,000원으로 기차표가 측정됐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기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육로로 여러 도시를 거쳐간다는 점에서 한 번 타보고 싶은데요. 제가 살아있을때 한 번이라도 타볼 수 있을지... 이제는 북한 뿐만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 상황을 고려하면 더 어려워진 것 같은 느낌이네요.ㅎ

전시 / 공간투어

현재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나의 잠]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현대미술과 오래된 역사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는 이질적이기도 하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느낌이 듭니다. 일반 전시장에서 봤을 때 심심하다고 느꼈을 부분을 공간의 분위기로 보완해주는 느낌이랄까요. 또 재미있는 것은 잠과 관련된 전시여서 전시장 한쪽엔 침대에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구서울역에 누워서 천장의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는 모습을 옛 사람들은 상상이나 했을까요?

내부 전시와 별도로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내부 공간투어 프로그램이 따로 진행이 되는데요. 최근에 2022년 하반기 내부 공간투어가 다시 오픈했다고 합니다. 총 3가지 주제로 진행이 되는데 건축, 교통, 생활사입니다. 요일과 시간대별로 주제가 달라지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시면 더 유용하고 재미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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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   윤프🤴 / 영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