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6] 🌻 정신줄 붙잡아야 하는 나날에 듣는 노래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주말을 세 번 보내면 올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연말이 확 실감나네요. 사실 온 국민이 안녕하지 못한 일주일이었기에 인삿말을 뭐라고 쓸지 한참 고민했어요. 하지만 역시 평범한 일상 또한 계속되어야 하기에 모두가 평소만큼 무탈하고 되도록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을 멀리서나마 보내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연설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장편소설을 쓰는 일이란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과 맞바꿔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것'이라는 전제와 함께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세상이 혼란스럽게 느껴질수록 서로의 가장 연한 부분을, 스스로의 내면을 차분히 다스리는 시간을 벌어두자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들여다보는 뉴스가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의 재확인일 뿐인지, 그럼에도 질문과 행동을 발견하기 위함인지. 항상 인지의 촉 끝을 벼려놓자고 생각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아무쪼록 살풍경한 겨울날이지만 틈틈이 비치는 빛을 발견하는 목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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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Day - American Idiot

가슴에 뭔갈 눌러놓은 듯 갑갑할 땐 시원시원 터지는 음악이 땡기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둥탁둥탁 고막을 난타하는 밴드 사운드가 가득한 곡이면 좋겠다. 그 중에서도 느긋하고 서정적인 브릿팝보다 쾌활하게 발끝을 까딱일 수 있는 미국 락이 좋겠다(모든 브릿팝과 미국 락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개인적인 편견이다). 아마 요즘 같은 시국에 이 곡이 떠올라 찾아 들은 이들도 많을 것 같다.

<American Idiot>은 2004년 발매한 그린데이(Green Day)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에 실렸다. 'Don't wanna be an American Idiot / Don't want a nation under the new media', 노랫말의 첫 마디부터 직설적이다. 이 곡은 실제로 조지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2004년에 발표되어 당시 정치적 상황과 미디어의 편향성을 비판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단단한 내면의 나침반을 쥔 사람만이 올바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쓸 수 있을 거다. 언제든 'Korean Idiot'이 되어버리기 쉬운 나날일수록 정신줄을 잘 붙잡아두자고 생각하게 된다. 이왕이면 이렇게 신나는 곡을 곁에 두고서.

🌻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사라지는 꿈

신록으로 왕성했던 나뭇가지가 하루하루 앙상해지는 계절이다. 매일의 출근길이나 회사 근처 나무가 나날이 모양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한 섭리인 줄 알면서도 괜히 아쉬웠다. 저 나무에 연둣빛 새 이파리가 돋아날 때부터 화려하게 단풍잎을 뽐낼 때까지 계절마다 다른 잎이 얼마나 멋졌는데, 결국 다 사라지고 마네. 그러다 어제였나, 같은 나무 곁을 지나다 문득 그 뒤로 화창한 하늘에 눈이 갔다. 나뭇잎이 사라지고 남은 가지 사이로 탁 트인 겨울 하늘이 새삼 넓고 맑다고 생각했다.

사라지는 것이 늘 쓸쓸하고 아쉽기만 할까. 가끔은 그것만이 주는 위로와 아늑함이 있다고 느낀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사라지는 꿈>을 들을 때도 비슷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요즘처럼 공기가 건조한 계절이면, 바닥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 기억 속 어딘가에서 이 곡의 노랫말이 재생되는 것이다. '사라지는 꿈을 꾸곤 해, 숨을 곳을 찾아 떠나네, 상처뿐인 여길 벗어나 숨을 쉴 수 있길 바라네~' 사라지는 게 나쁘지만은 않지, 잠시 잎사귀를 감추는 나무들처럼 사라지는 꿈을 꾸기에 좋은 날씨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 보수동쿨러 - 0308

보수동쿨러의 음악을 처음 들은 날 나는 홀로 통영에 있었다. 통영의 어느 작은 축제에 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참에 미리 들어 보자며 숙소에서 몇 곡을 챙겨 들어본 것이다. 무대에서 실제로 들은 이들의 음악은 음원보다 몇 배는 풍성하고 근사했다(그날의 기억으로 썼던 72호 레터를 첨부한다).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통영의 항구를 배경으로,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10월의 가을 밤에 들었으니 살아가면서 웬만해선 이들의 목소리를 잊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보수동쿨러가 해산한다는 소식을 어제 접했다. 아껴 듣던 밴드의 해체란 꼭 오래된 친구와의 절연처럼 묘하고 서운한 기분을 준다. 사실 여러 사정이 맞아 떨어져 오래도록 뜻을 같이하고 지속적으로 앨범을 만드는 일이 더 기적에 가깝게 어려운 일인 건데. 나는 왜 곁의 밴드가 언제나 영원할 거라고만 생각할까?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이들의 노래를 괜히 귀에 더 담아본다. <0308>의 나레이션 한 줄이 새삼 마음에 덜컹 걸린다. '살아가며 우리가 배운 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아닌가?' 무언갈 깨뜨리자며, 우리는 끝이 없을 거라 노래하는 이 곡의 제목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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