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7] 🌈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반갑습니다. 이렇게 여느 때처럼 편지를 띄울 수 있어서 특별히 반갑습니다.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연말이라 안 그래도 이런 저런 일로 바쁠 시기에 교과서에서나 접한 일을 실제로 맞닥뜨릴 줄이라고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한밤중 도시 한복판에 군용 헬기와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들이라니요. 그 살풍경한 모습에 저는 얼마간 절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즉각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과, 격앙된 시민을 토닥이고 되돌아가기 전에 연신 죄송하다며 허리 숙여 인사하는 군인을 보면서는 어찌나 다행스럽던지요.

그맘때 마땅히 주목하고 축하할 일이 원래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되었는데요. 시상식에 앞서 열린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158분만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5월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이번 PRIIISM은 저희 숑🌻, 콜🥦, 로🍄가 함께 비상계엄을 지나고 연말을 맞는 바로 요즘 자주 듣고 나누고픈 곡들로 꾸렸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롭고 건강한 연말 보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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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상현씨밴드 - 각자의 밤

새삼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자주 생각했던,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며칠이 지났다. 온전하고 무탈한 세계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만 오롯이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은 가까스로 주어진 것이었다. 평균대 위를 걸을 때 발끝부터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중심을 되찾으려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모은 나날을 보내고 나니 금세 완연한 연말이 왔다. 뒤늦게서야 온 거리가 연말과 성탄절 분위기에 푹 잠긴 모습이 보인다.

최근 한강 작가의 소설을 한 권 읽기도 해선지, 그의 수상 연설에 적혀 있던 문장들이 일상 곳곳에서 자주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지. 그건 역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거다. 서로의 다름이 낯설어서 멀어지고 싶다가도 결국 각자의 다름으로부터 위안과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나상현씨밴드의 <각자의 밤>을 들을 때마다 비슷한 기분이 들곤 했다. 우리들 각자의 밤이 외롭고 슬프다고 노래하지만 왜인지 쓸쓸하게 들리지 않았다. 밤을 채우는 외로움과 슬픔이 결국 다름을 찾게 만들고, 서로 다른 인간들이 한 데 모였을 때 상상 못할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니까. 되려 기대감에 충만해지는 곡이라고 해야 할까. 머지않은 미래에 찾아올 좋은 소식을 비슷한 기분으로 기대해본다.

🥦 The Honey Drippers - Impeach The President

계엄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검색해봤다. 계엄은 "군사적 필요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하여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는 일"이다.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될 수 있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우리는 비상계엄을 겪었다.

계엄의 정의를 다시 읽는다. 군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맡는다고 되어 있다. 3권 분립 중 입법권이 빠져있다. 입법권은 국회에 주어져있다. 계엄 시에도 국회 활동은 보장된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 군부 정권 시절처럼 계엄군이 정부에 반하는 국회의원을 임의로 탄압해서, 정권이 독재로 치닫는 것은 막기 위한 장치다. 계엄법 제13조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들어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지난 3일밤 선포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는 국회, 정당 등 일체의 정당활동을 금한다고 되어 있었다. 특수부대에 하달된 체포 명단에는 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 정당 대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위법이다.

계엄 선포 조건을 다시 읽는다. 아무리 읽고 따져봐도 3일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몹시 혼란스러워진 지금조차 국가비상사태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계엄이 선포되었고 그것은 계엄 선포권자가 당시를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다(헌법 제77조 1항). 그 때문에 한밤중에 무장한 군인과 국민이 대치하는 등 헌법 곳곳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했다. 위헌이다. 이에 수많은 국민이 전국 거리로 나와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 주권자 요구에 힘입어 국회가 탄핵안을 지난 주말 가결시켰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망한 나라

그날 저녁에 여의도에서 약속이 있었다. 저녁 11시 경이었던가.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향해 운전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길이 많이 막혔다. 그때 콜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의 입에서 역사책에서만 보던 단어를 듣자 머리가 살짝 어질했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꿈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운전을 계속하는데 하필 집이 용산이라 녹사평역을 지나 삼각지로 향했다. 전쟁기념관 사잇길이 더더욱 막히더라. 아, 그래 여기 대통령실이 있었지.

고백 하나를 한다. 국방부에서 정훈공보장교로 의무 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침'이라는 명목으로 이승만기념사업회장의 군 장병 특강 지시가 내려왔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법.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특강을 준비했고 외부 초청 강사인 회장을 의전하고 접대했다. 특강이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함에 더불어 '부국강병' 박정희 대통령의 전설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강당 방송실에서 앉아 특강을 듣는데 부끄러웠다. 정치적 중립성은 어디에 가고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를 우리 장병들에게 들려줘야 하는지. 짧은 의무 복무 시절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12월 3일 그날이 지나고 수많은 군인이 국회 청문회 또는 언론 앞에 섰다. 다양한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했지만,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격노한) 명령에 따른 것'이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법. 그런데 절대적인 명령보다 더 숭고하고 높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명령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와 규범, 시민의 안녕과 법과 질서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더 우선해야 한다. 누구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불같은 정의로운 마음'만은 아니다. '망설이는 마음'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운 마음'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망설이고 부끄러워하는 누군가들이 있었나 보다. 과거로 인해 망설였던 사람들, 죽은 자로 인해 부끄러웠던 사람들, 염려하고 걱정하고 비관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누군가들. 그리고 부끄러워 뛰쳐나가고 거리에서 외쳤던 누군가들. 그곳에서 이러다가는 우리 정말 '망해요'라고 (춤을 추며) 울부짖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우리는 아직 적어도 <망한 나라>까지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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