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29] 🌻 게으르게 걷고 싶은 시월의 노래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어느덧 시월 속에 있네요. 길고 긴 연휴를 보내준 뒤 처음 맞는 주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쿼터 안식월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을 만큼 연휴는 실로 넉넉했어요. 5일 이상 쉬고 났을 땐 '이렇게 팽팽 놀고 쉬는 게 사실 내 진짜 일상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아님...)

연휴의 키워드는 가을 장마 아닌가 싶을 정도의 '비'였네요. 이렇게 비가 자주 내리는 가을은 낯설다고 느끼면서도 비에 젖어 축축한 낙엽은 가을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하죠. 우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계절 안에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연휴에 딱히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 내내 익숙한 곳, 집안이나 동네 카페에 머물며 미뤄 왔던 벽돌 책을 명상하듯 읽으며 보냈답니다. 구독자 님의 연휴 풍경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저는 연휴 대신 이번 주말 2박 3일로 강릉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별다른 목적 없이 강릉역 근처를 도보로 다닐 만한 위치에 숙소를 잡아두고 발 닿는 대로 걸을 예정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 자체로 그 나름의 환기가 되겠죠. 조금 더 위쪽 지방이니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온도도 더 낮겠고요. 혹시 추천하고 싶은 강릉의 공간(카페, 맛집, 전시 뭐든!)이 있다면 메일 가장 하단의 응답 폼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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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영 - 난 그냥 걸었어 (Feat. 계피)

레터에도 자주 쓴 내용이지만 나는 일년 중 시월이 가장 좋다. '최애 계절이 가을'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다. 한때 가을을 가장 좋아하기는 했으나 이제는 좀 애매하다. 언제부턴가 여름은 여름대로 보내주기 아쉽고, 봄은 봄대고 반갑고, 겨울은 겨울대로 낭만적이라 느끼기 시작하면서 선호의 차등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달을 꼽자면 왜인지 입에 굴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지금, 시월이다.

가을이니까 가을방학 노래를 성실히 찾아 듣고 있다. 정확히는 계피의 햇볕처럼 차분한 목소리를. <난 그냥 걸었어>는 포크 듀오 선과영의 데뷔 앨범 수록곡 중 계피가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곡이다. 지루하게 내리던 가을 비가 멈추니 드디어 서늘하고 꺠끗한 공기가 거리에 가득하다. 제목처럼 '그냥 걸으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좋은 때가 왔다. 반주 위로 나지막히 흐르는 계피의 목소리는 시월에 듣고 싶어 기대한 만큼의 질감이면서도, 마치 엔딩 크레딧 위를 수놓는 배우의 대사처럼 느껴진다.

🌻 조용필 - 꿈

추석에 방영한 KBS 대기획 조용필 콘서트는 긴 연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가히 핫 토픽이었다. 평소 TV를 자주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본가에 있었던 덕분에 부모님과 본방송으로 챙겨 볼 수 있었다. 방송 오프닝을 보면서 '조용필? 가왕? 뭔진 알겠는데 관심은 딱히...'라고 생각했으나 150분에 달하는 공연을 모두 감상한 뒤엔 여운이 가시지 않아 유튜브로 무대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나를 발견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서른 곡을 연달아 열창하며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 죽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거장에게선 숭고함까지 느껴졌다.

연출부터 노랫말까지 인상 깊은 무대가 참 많았지만 가장 와 닿은 곡을 고르자면 <꿈>이다. 꿈을 찾아 익숙한 땅을 박차고 나선, 그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먼 곳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고 눈물을 삼켰을까.

꿈이란 새삼 불투명한 단어라고 느꼈다. 끝내 혼자 남겨졌을 때 진지하게 파고들어 고뇌하며 내가 딛은 곳이 늪인지, 숲인지 모르는 불안에 떨게 하니까. 무수한 고독의 밤을 지난 뒤에야 그때 꿨던 꿈에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하지만 내게 열린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인생의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면 꼭 이 노래를 떠올려 다시 듣고 싶다.

🌻 정미조 - 양양

올해 초 콜리🥦의 추천으로 정미조의 음악을 알게 되고 그의 음악을 꾸준히 들었다. 그 우아한 활력은 비슷비슷한 일상에서도,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날에도 찰떡같이 어울렸다. 정미조가 장장 37년 만에 가수로 복귀해서 발표한 앨범이 [37년]이었고 <양양>이 수록된 앨범 [75]는 그 후 4년 만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75'는 그의 나이를 가리킨다. 수록곡 열두 곡 중 일곱 곡은 후배 뮤지션들이 피처링으로 함께했는데 하림, 이효리, 존박 등 라인업 또한 호화롭다.

이전 앨범의 <7번국도>도 그렇지만 <양양> 역시 어디론가 떠나는 드라이브에도 참 잘 어울린다. 느긋하게 들썩이게 하는 스윙재즈 리듬부터 '게으르게 하루가 꿈을 꾸듯 흘러가니 그 얼마나 좋은가요', '오늘은 날 찾지 마요 난 파도 속에 숨을래' 같은 노랫말이 휴양지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멀고 이국적인 휴양지가 아닌, 비일상적인 공기와 파도가 흐르는 그런 곳. 딱 강원도가 좋겠다. 그래서 제목도 '양양'인 걸까. 꿈을 꾸듯 게으른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이 노래의 제목으로 삼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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