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4] 🌈 연말 특집! 프리즘 3인의 2023년 새해 첫곡은?

정말 오랜만에 특집호로 돌아온 PRIIISM입니다. 어느덧 오고야 말았어요. 2022년의 마지막 목요일 오후 4시! 작년 5월에 시작한 PRIIISM이 올 한 해를 꽉 채웠다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주 찾아오는 목요일 오후에 전과 다른 의미가 더해진 건 모두 구독자님 덕분입니다. 한 해 동안 저희 셋이 쏘아 보내는 이야기에 다정히 귀 기울여주셔서, 함께 읽고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올해 6월에는 PRIIISM 1주년을 기념해 구독자님들과의 오프라인 만남도 있었죠. (그날의 후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자리가 한정되어 많은 분을 모실 수 없었지만 어떤 분들이 우리 레터를 읽어주시는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진득하게 들을 수 있어 반갑고 신기한 하루였습니다. 사실 연말에도 구독자 모임을 꾸려볼까 잠시 머리를 맞댔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 내년에 다시 좋은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이번 특집호에서 준비한 주제는 "프리즘 3인의 2023년 새해 첫곡"입니다. 어느 해부턴가 새해 처음 듣게 되는 노래가 그 해에 영향을 준다는 풍문(?)이 돌기 시작했잖아요. 아무려면 1월 1일 자정으로 넘어가는 순간, 저마다의 염원을 담아 노래를 재생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긍정적이고 희망찬가 생각하게 됩니다. 구독자님은 새해 첫곡을 골라두셨나요? 아직 정하기 전이라면, 오늘 보내드리는 레터를 읽으며 찬찬히 고민해보시면 어떨지요.

📧 추신1, PRIIISM이 한국경제매거진 한경잡앤조이에 "2022년 올해의 가수"를 소개했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 3주에 걸쳐 올해의 노래, 앨범, 가수를 꼽았으니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 추신2, PRIIISM 뉴스레터는 상단의 '🌏웹에서 보기' 버튼을 누르면 보다 쾌적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 Toploader - Dancing in the Moonlight

2022년, 이렇게 숫자 2로 가득한 새해에 나는 난생 처음 30대가 되었다. 사실 20대를 보내는 십 년간 30대에 대한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왠지 그땐 번듯한 멘탈과 경제적 부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만 같고, 인간관계도 취향도 어리바리 휘청이기보다 단단히 뿌리내린 상태여야 맞을 것만 같았다. 점차 그 나이(!)는 다가오는데 나는 여전히 어느 하나 번듯하지 못하고, 단단한 뿌리는커녕 하루하루 풍파에 나부끼는 여린 잎 한 장일 뿐이고...

그렇게 인생 첫 서른을 한 해 꽉 채워 보낸 뒤 남은 감정은, 당연하게도 정말 별것 아닌 나이였다는 심심한 깨달음이다. 새로운 일기장을 펼친다고, 달력의 첫장을 넘긴다고 해서 나란 인간의 장기구조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모순, 끝없이 휘청이고 주춤거린 나날로 채운 서른이었다. 20대의 모든 날들이 그랬듯이. 연말의 소회가 거창하기는커녕 머쓱할 만큼 소소하지만, 그래서 뒤이어 맞이할 30대의 여러 날들을 거리낌없이 반길 수 있게 됐다.

대국민적으로 익숙한 이 노래, <Dancing in the Moonlight>이 처음 발매된 해는 1970년(셔먼 켈리)이지만 영국 밴드 탑로더(Toploader)가 1999년 리메이크한 이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진 듯하다. 나는 이 노래를 주로 초여름에 즐겨 들어왔지만 이번만큼은 새해의 노래로 담아보려 한다.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주춤거리는 몸짓들을 순간순간의 춤사위로 즐기고 싶다는 포부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 Al Jarreau - Mornin'

연말 정산의 시간이다. 유튜브에서도 올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콘텐츠 목록을 발표했다. 어떤 게 순위에 올랐나 보는데, 아니 이럴 수가.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상대방의 화합, 호흡…" "아니, 샵빱두비두바" 하는 그 영상이 아예 없을 줄이야. 최상단은 몰라도 적어도 목록에는 무난히 오를 줄 알았다. PRIIISM에서도 소개했고 그 시기 발행한 뉴스레터에 비해 눈에 띄는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을 보면 유행했던 것은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여하튼 그 '샵빱두비두바'처럼, 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음을 흥얼거리는 것을 '스캣(Scat)'이라고 한다. 스캣으로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된다.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영상과 밈이 가능하게 했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와 멜 토메(Mel Torme)에 더해 스캣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보컬로 알 재로(Al Jarreau)가 있다. 스캣만 잘한 게 아니다. 알 재로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재즈(Jazz)부터 팝(Pop),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 부문에까지 각각 보컬상을 받은 노래 장인이다.

알 재로의 <Mornin'>은 제목처럼 아침은 물론이고 무언가의 출발점에서 듣기에 제격이다. 하프타임 셔플(Half-Time Shuffle) 리듬의 경쾌한 드럼이 기분을 둥실 띄우고 밝은 멜로디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가사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라디오, 다리, 새 등 아침에 만나는 모든 것들에 인사하는 내용이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순간만큼 활력이 돌고 일상이 새로워지는 때가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 충만한 한 해가 펼쳐지길 기원하며 재생 버튼을 눌러본다.

🍄 Diana Ross - I'm Coming Out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지만, 그만큼이나 의심, 두려움, 자기혐오가 감정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의미한 시간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순식간에 부정적 감정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 신경 써야 할 문제들이 많으면, 이런 블랙홀에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오늘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내일이 없는데, 블랙홀에 빠져 있을 시간 마저도 사치다. 그렇게 2022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삶이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 열심히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채찍질하면서 치열하게 보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나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아직은 덜 지친 걸까. 이러한 에너지를 더 느끼고 싶다. 어둠 뿐인 사건의 지평선을 뚫고 나와 빛나는 별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더 탐험하고 싶다. 연료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의 <I'm Coming Out>을 들었다. 살아있는 활력이 느껴진다. 노래는 무한 동력과 같아서 40년이 지나도 여전한 에너지로 2023년의 동력이 된다. 

<I'm Coming Out>이라는 제목 뜻 자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LGBTQ 커뮤니티의 앤썸(anthem)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이 노래를 제작한 전설적인 디스코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Nile Rodgers)는 한 클럽에서 다이아나 로스를 모티프로 하는 드랙퀸 퍼포먼스를 보고 이 노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정작 다이아나 로스는 노래의 정확한 뜻은 몰랐다고. 아무렴 어떠랴. 커밍아웃의 의미는 아니고 2023년의 의지를 불태우며 외쳐본다. "The time has come for me. To break out of the shell, I have to shout! I'm coming out I want the world to know Got to let it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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