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32] 🌻 익숙하고 솔직하고 명랑하지만 쓸쓸한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요즘 날씨는 가을의 한복판 같습니다. 어제 저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동네 공원에 앉아 붕어빵을 먹고 책을 읽었어요. 바깥에 머물기 좋은 기온은 일년에 며칠 되지 않잖아요. 특히 어딘가로 걷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으려고 보면 햇볕이 따갑거나 후끈하거나 손이 금세 시려워진다거나... 그런 미묘한 방해요소가 예민하게 느껴지고요. 요즘처럼 온화하고 시원하면서도 적당한 온도는 정말로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올해 여름 광화문 교보생명 현판에 걸린 문구였어요. 여름을 통과하는 내내 사방으로 뻗치는 녹색 이파리와 등줄기를 흐르는 땀방울을 느낄 적마다 떠올리곤 했지요. 가을의 한복판에서 바라보면 지금 또한 동사의 계절이 아닐까요? '가을 또한 동사의 계절 / 물들고, 무르익고, 머물고, 쌓이고, 깊어진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구독자 님의 가을은 어떤 모습으로 무르익으며 쌓여가고 있나요? 오늘은 하루하루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관찰하며 들었던 노래를 소개해 봅니다. 가을다운 날씨 속에 머물며 편안하게 듣기 좋은 곡들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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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라 - Alone Again

가을이 자아내는 쓸쓸한 정서는 어디서 올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곁을 스치게 되는 우리 곁의 자연물. 그 중에서도 나무는 사람의 감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무란 존재는 수백 년 전에도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원인 동시에 피고 지는 모습만으로 동서고금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지금 내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느끼는 생각을 몇 세기 전 다른 대륙의 누군가도 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는 응당 이소라의 목소리가 땡긴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옆길로 새 버렸다. 평소 자주 감상하던 곡은 듣고 싶지 않던 차에 2010년 발매한 그의 팝송 리메이크 앨범 [My one and only love]를 알게 됐다. 우리 귀에 너무도 친숙한 팝송 11곡을 그만의 감성으로 다시 부른 앨범이다.

<Alone Again>의 노랫말은 쓸쓸함을 넘어 처연하고 울적하기까지 하다. 대강 요약하자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이가 '혼자, 결국 다시 나는 혼자'라며 중얼거리는 내용이랄까. 원곡도 어느 정도 산뜻하지만, 이소라가 노래하는 <Alone Again>에는 어딘지 통통 튀고 긍정적인 기분마저 감돈다. 그 이면에는 '결국 혼자'여서 철저히 외로운 정서가 잠겨 있다는 걸 알기에 그 낙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해야 좀더 정확하겠다.

🌻 The Smiths -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지나간 시월의 이벤트를 돌아봤을 때 오아시스(Oasis) 완전체의 내한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노래가 시작되고 세 번째 곡까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들의 왕림을 감상했다. 당연히 공연이 끝나고도 며칠간 오아시스의 노래와 유튜브 영상을 서핑하며 그날의 여운을 곱씹었다. 우연히 보게 된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에서는 그가 처음 밴드를 꿈꿨던 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었다. 1983년 TV에서 보고 들은 스미스(The Smiths)의 데뷔 앨범 덕분이었다고.

그래선지 요즘 스미스의 음악을 자주 꺼내 듣는다.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는 이들의 데뷔 앨범 수록곡이다. 첫인상은 적당히 발걸음을 명랑하게 만들지만 나른하고 무심한 보컬 때문인지 곱씹다 보면 그저 즐겁지만은 않은... 생각해 보면 내 취향을 관통하는 노래들이 다 이런 식이다.(?) 이들이 브릿팝의 무드를 형성한 밴드 중 하나이기에 당연한 걸까. 실제로 오늘 소개한 노래의 가사도 당시 80년대 영국 젊은이들이 느낀 일자리 문제와 노동 현실에 대한 비참함을 담고 있다.

노엘 갤러거처럼 스미스의 음악을 들으며 20대를 보내는 느낌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본다. 힘이 안팎으로 뻗치는 시기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채 발산하지 못한 잔여 에너지는 치기가 되고. 해소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만나 반가웠을 테다. 노엘에게도 스미스의 음악은 그렇게 반가운 존재였을까. 나의 20대에 오아시스의 노래가 그랬듯이.

🌻 신승은 - 애매한 게

계절마다 편안하게 찾아 듣게 되는 목소리의 목록에 어느 해부턴가 신승은이 추가되었다. PRIIISM에는 이제껏 딱 한번 소개했지만 그의 노래는 사계절 내내 꾸준히 플레이리스트에 함께했다. 정확히는 재미난 에피소드를 잔뜩 가진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구절구절 재미난 그만의 이야기를 노래로 듣는 경험이 매번 고유해서다.

특히 <애매한 게>는 노랫말만으로 친구들과 한참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술은 좋아하지만 주량은 고작 한 병 반, 포크 가수라고 하기엔 포크가 뭔지도 모르고, 세상의 미는 전부 다르다고 믿으면서도 거울을 보며 더럽게 못생겼다며 시무룩하는 사람. 우리는 누구나 이토록 애매하지 않나. 때로는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만으로 예술이고 해학이 된다. 요즘은 애매함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확실하게 용기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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