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 🥦 귀가 시렵고 마음이 추운 날엔 이 노래를 들어요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버렸네요. 밤이면 맨손을 내놓고 다니기 손이 시려울 만큼 공기가 차가워졌습니다. 슬슬 노랗고 붉게 물이 드는구나 싶었던 나뭇잎은 색이 한껏 깊어지나 싶더니 벌써 많이들 땅에 저버렸네요. 그러고 보니 올해가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벚꽃 연금'도 울고 갈 세계 최고의 연금 수령자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가 할로윈 데이 끝나기 무섭게 남긴 트윗 보셨나요?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추워진 날씨에 걸맞게 코트와 패딩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목을 따뜻하게 감싸는 터틀넥 니트 차림도 많네요. 여러분은 겨울에 옷을 어떻게 입는 걸 좋아하시나요? 저는 적당한 두께의 니트에 셔츠나 가디건 따위를 껴입는 걸 선호합니다. 이렇게 입으면 일단 따뜻하고, 실내에서는 하나 정도 벗으면 몸을 움직이기 편한데다 보기에도 예쁘더라고요. 이렇게 껴입는 걸 '레이어드(Layered)' 해서 입는다고 표현하더군요.

찬바람이 불 때면 저는 음악도 레이어드 된 걸 찾곤 합니다. 화음이죠. 화음이 매력적인 음악에 여러 종류가 있을 텐데 저는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 R&B) 보컬 그룹의 화음을 좋아라 해요. 무엇보다 흑인 특유의 리드미컬한 기교가 도드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화음은 특히 코러스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목소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감탄할 정도로 감미롭답니다. 보컬 중심 음악이다 보니 반주는 대체로 절제되었습니다.

알앤비 음악은 미국을 중심으로 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고 우리나라 대중음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특히 나얼―, 바이브 등을 생각해보시면 금방 닮은 점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들 노래를 즐겨 들었거나,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반 연생이면서 중고교 시절에 팝송에 관심 가지셨던 분들은 아마 이번 PRIIISM에 담긴 곡들이 익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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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rtrait - How Deep Is Your Love

<How Deep Is Your Love>는 제목이 낯설더라도 일단 들어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아~ 이 곡!' 하지 않을까. 나는 중학교 영어 선생님 덕분에 이 곡을 알게 되었다. 당시 선생님이 중간, 기말고사가 끝나면 팝송을 한두 곡씩 소개해주셨다. 이 곡을 포함해 그때 알려주신 노래들을 계기로 스스로 팝송을 찾아 듣기 시작했으니, 나에게 <How Deep Is Your Love>는 영어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다.

지금 듣고 계실 <How Deep Is Your Love>는 리메이크 버전이다. 숑🌻이 PRIIISM 18호에서 소개했던 영국 그룹 비지스(Bee Gees)가 원작자인데, 본래 이 곡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 주연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 트랙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1977년에 개봉해서 70년대 후반~80년대 디스코 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How Deep Is Your Love>도 싱글로 나와 빌보드 싱글 차트에 무려 19주 동안 '톱 10' 안에 들 정도로 오래 인기를 끌었다.

<How Deep Is Your Love>는 오랜 시간 사랑 받은 만큼 리메이크도 수차례 되었는데, 미국 알앤비 그룹 포트레이트(Portrait) 버전을 골라봤다. <How Deep Is Your Love> 하면 역시 화음이다. 화음이 원곡 못지 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어찌나 촉촉하고 간드러지게 연출했는지, 귀에 가깝게 들으면 이게 노랜지 ASMR인지 헷갈릴 정도다. 음색이 얼마나 매끈한지 이어폰으로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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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 & JoJo - Tell Me It's Real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내래이션으로 시작하는 곡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내레이션에 이어서는 코러스로 노래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알앤비 보컬 그룹의 가장 큰 무기인 화음을 전면에 내세워 초장에 승부를 보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미국 알앤비 듀오 케이씨 앤 조조(K-Ci & JoJo)의 <Tell Me It's Real>은 그 방정식을 충실히 따랐고 그 결과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정답이었다.

​케이씨 앤 조조는 세드릭 '케이씨' 헤일리(Cedric 'K-Ci' Hailey)와 조엘 '조조' 헤일리(Joel 'JoJo' Hailey) 형제로 이뤄졌다. 이들은 정규 앨범을 내기 전이었던 1996년에 힙합(Hip Hop) 레전드 투팍(2Pac)의 생애 마지막 싱글로 유명한 <How Do You Want It>을 피처링해서 일찍이 주목받았다. 이후 1997년 데뷔해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러니까 알앤비가 한창 음악 차트를 점령하던 시기에 주로 활동했다. <Tell Me It's Real>은 이들의 2집 [It's Real]에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쯤에서 알앤비를 보다 재미있게 듣는 노하우를 공개하겠다. 아주 간단하다. 음악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서, 화음을 벗겨보는 것이다. 귀에 가장 잘 들리는 음 말고 그보다 높거나 낮은 음에 귀를 기울여보자. 한결 음악이 입체적으로 들릴 것이다. 알앤비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을 들을 때 보컬이든 악기든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해보면 그냥 듣는 것하고는 또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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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yz Ⅱ Men - End Of The Road

앞서 소개한 노하우를 바로 실습해보자. 최고의 실습 자료를 준비했다. 보이즈 투 멘(Boyz Ⅱ Men)의 <End Of The Road>이다. 보이즈 투 멘은 알앤비 보컬 그룹의 '끝판왕' 되시겠다. 괜히 '끝판왕'이라 표현한 게 아니다. '포브스 선정' 같은 언어유희도 아니다. 보이즈 투 멘은 미국음반산업협회가 공인한 "미국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알앤비 그룹"이다. 이들의 대표곡 <End Of The Road>는 1992년에 싱글로 나와 13주 동안이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해서, 당시 기준으로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이란 기록을 세웠다. 

<End Of The Road>는 듣는 재미가 더할 나위 없는 곡이다. 코인마냥 순식간에 오르내리는 화려한 기교의 고음부터 성대에도 지하실이 있는 건지 저 깊은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고막을 울려오는 초저음까지 즐길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와 보컬 기교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하게 될지 모른다. 도취된 것이다. 그때만큼은 내가 나얼도 울고 갈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요, 내 방이 바로 콘서트홀이다. 다만 그러다가 방문이 홱 열리거나 창밖의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친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모쪼록 민첩하게 대처하시길.

보이즈 투 멘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상당해서 내한공연을 두 차례 가졌다. 한 번은 이런 일화를 남겼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기로 해놓고 30분이나 지각해버린 것이다. 그 사연인즉슨 밥 먹다 멤버들끼리 싸워서라나. DJ 배철수를 포함한 제작진은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 벼르고 있는 그들 앞에 보이즈 투 멘이 나타났다. 늦게나마 방송에 등판한 보이즈 투 멘, 반주도 없이 라이브로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를 불렀는데, 아뿔싸, 화는 물론이고 귀가 사르르 녹아내릴 만큼 기가 막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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