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7] 🍄 애정하는 가수 특집 - 김동률 편

구독자님께선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단 한 명을 고르라 한다면 누구를 뽑으실 건가요? 아마 고민이 되시겠지요? 저는 ‘김동률’을 선택하겠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저의 감성세포는 그의 노래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독한 중2병을 앓던 사춘기 시절 온종일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살았거든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라는 곡으로 김동률의 노래를 처음 접했습니다. 사춘기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노래방에서 멋진 노래 한번 불러 보는 것이 소원이었잖아요? 노래에 재능이 없는 저는 왠지 김동률의 노래들은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죠. (물론, 그 자신감은 노래방에서 처참히 깨지고 말았답니다. 예상과 달리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의 향연...ㅎ)

그래도 이 곡을 마스터하겠다는 일념으로 부단히도 노래방을 갔습니다. 오기로 불렀던 노래는 어느새 애정이 되었고, 가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으며, 이 가사를 쓴 화자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발전했죠. 때로는 이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가상의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어요. 처음으로 음악을 저만의 방식대로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난히 짧았던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이 순간을 보내기가 너무 아까워 지금 꼭 들어보셔야 하는 김동률의 노래 3곡으로 이번 주 PRIIISM을 구성했습니다. 이른바 '다시 트리올로지'인데요. 제멋대로 붙여보았습니다. 요즘 발라드 듣기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한국 발라드의 감성에 빠져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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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전람회 세대가 아니라면, 아마 대부분 이 노래로 김동률에 입문한 팬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그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자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다. 나 역시도 이 노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김동률 디깅(digging)에 빠져들었다. 

그는 버클리 음대 유학 중 3집 [귀향]을 발매했다. 2집이 새로운 시도를 실험해보는 것에 가까웠다면, 3집부터 그의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동률 콘서트 하면 떠오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의 백미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사실적이고도 아련한 노랫말이다. 

자존심 따윈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 보자고, 너는 언젠가 내게 돌아올 운명이었다고, 널 사랑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 이 기다림이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었다는 화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듣노라면 자연스레 저마다의 가슴 시린 누군가를 떠올리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 다시 떠나보내다

화자는 3년 만에 그녀를 다시 떠나보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빌고 기어도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뒤돌아보니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 곁을 지켜주고 오롯이 힘이 되어준 사람도, 허무한 꿈을 꾸며 길을 잃은 자신을 붙들어준 사람도 오직 그녀뿐이었다.

2004년에 발매된 정규 4집 [토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토로(吐露)는 마음에 있는 것을 죄다 털어놓는다는 뜻인데, 그 뜻만큼이나 이번 앨범에는 그야말로 오장육부를 다 꺼내 토로하는 듯한 노래들로 가득하다. 모든 곡들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추천하는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이하게 김동률이 아닌 작사가 박창학의 가사로 된 <다시 떠나보내다>와 <고별>이다. (그 외 모든 곡은 김동률이 작사, 작곡했다.)

박창학은 윤상의 음악적 파트너로 유명한 작사가이자 프로듀서다. 고등학교 문학교사 출신다운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가사가 인상적인데, <다시 떠나보내다>의 벅차고 감동스러운 연주와는 달리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이제는 너무나 늦어버렸다는 두 사람의 어긋남이 서글픔을 더해준다. 그래, 이미 끝나버린 마음을 어찌 다시 되돌릴 수 있으랴? 

🍄 다시 시작해보자

2008년 정규 5집 [Monologue]의 타이틀 곡 <다시 시작해보자>는 김동률표 발라드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틱한 노래다. 어디선가 이 노래를 두고 김동률 본인이 4집 수록곡 <이제서야>와 이어지는 곡이라 밝혔다고 하는데, "혼자서 영화를 볼 때나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혼자 울고 웃으며 가슴을 저미던 2004년의 그"와 "좋은 영화를 보고 멋진 노랠 들을 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2008년의 그"가 아마도 동일 인물인가 보다. 

나에겐 "7년의 세월을 털고"라는 가사 때문인지 2004년의 <이제서야>보다 더 오랜 2001년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서부터 이들의 사랑을 지켜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갈라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다시, 다시, 그리고 또 다시를 말하는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의 서사였다.

어린 시절엔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이별이라는 상흔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일 수 없다고 믿었다. 마치 이가 빠진 그릇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버려야 하는 것처럼, 자그마한 생채기에도 쉽게 관계를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무리 상흔이 생겨도 상처가 짙어져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해졌다. 순간의 번뜩임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진득하게 부대끼는 사랑 또한 사랑임을 알게 된 걸까.

이가 빠지면, 진흙이라도 붙여 이 그릇을 계속 지키고 싶다. 비록 그것이 질그릇이어도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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