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 🌻 가을은 역시 컨트리가 제철

공교롭게도 달달한 추석 연휴가 지나간 목요일에 레터를 드리게 된 숑🌻입니다. 구독자님도 충분히 평안한 연휴 보내셨나요? 소나기가 지나기도 했지만 뭉게구름이 아름다운 날씨가 많아서 가을을 만끽하기에도 좋은 나날이었지요. 아침저녁으로 얇은 외투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완연한 가을이구나 싶어요.

추석 연휴가 끝난 오늘로부터 올해의 마지막날까지 99일이 남았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숨막히는 여름을 지나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돌아볼 시기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니 야속한 마음도 들어요. 저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 가을인간으로서 하루하루의 날씨를 어떻게 최대로 누릴 수 있을지 궁리하며 이 계절을 건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코끝 시린 계절이 오겠죠.

이번 레터에서는 '가을에 역시 제철!'이라고 주장하고픈 컨트리풍 음악을 모아봤습니다. 어떤 날씨에 들어도 흥겹지만 왜인지 풍요로운 황금 들녘을 떠올리며, 적당히 서늘한 공기를 맞는 산책의 경쾌한 발걸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구독자님이 생각하시는 '가을의 제철 음악'도 궁금합니다. 제철 음식처럼 그 시기여야 맛깔나고 귀에 좋은 음악들이 있잖아요. 찰나라서 아쉬운 이 계절을 더할 나위 없이 채우는 방법을 아신다면 누구든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공유해주세요. 메일리 댓글, 메일 답장 등 편하신 방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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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xys Midnight Runners - Come on Eileen

영화 <월플라워>를 본 사람이라면 등장인물들이 처음으로 다함께 춤추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찰리(로건 레먼 역)가 마음의 문을 열고 용기를 내던 순간 파티장에 흘러나오는 곡으로, 샘(엠마 왓슨 역)과 패트릭(에즈라 밀러 역)의 신명나는 막춤이 인상적이다. (일명 '리빙룸 루틴!')

경쾌한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82년 영국 밴드 덱시스 미드나잇 러너스(Dexys MIdnight Runners)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이다. 노래 곳곳에 아일랜드 민속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바이올린으로 보이는 악기는 그와 비슷한 '피들'이라고 한다. 고상한 클래식이기보다 주로 축제나 술집에서 컨트리풍 음악을 춤추며 연주할 때 쓰이기에 '민초들의 바이올린'이라고도 불린다. 어쩐지 박자가 점차 빨라지는 후반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사지를 아무렇게나 뻗치고 춤을 추다 기네스 생맥주를 호쾌하게 들이켜고 싶어진다.

<Come on Eileen>은 1983년, 당시 11주 연속 빌보드 1위였던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의 독주를 막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곡이다. 그 이후에는 3주간 다시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고. 하필 마이클 잭슨이 발표한 불멸의 명곡 사이에 끼다니, 불운했다고 해야 할지 그 와중에도 1위를 기록했으니 굉장하다고 해야 할지. 일단 나만의 가을 한정 차트에서는 작년에 이어 1위를 차지한 곡이니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다!

🌻 Bee Gees - Technicolor Dreams

1967년에 데뷔한 삼형제 영국 밴드 Bee Gees는 미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디스코부터 컨트리, 사이키델릭 록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에서 재능을 양껏 뽐냈다. <Stayin`Alive>, <How Deep Is Your Love> 등 1초만 듣고도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명곡이 무수하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지극히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Technicolor Dreams>, 직역하면 총천연색 꿈들이다. 전형적으로 상상하는 컨트리풍 음악은 아니지만―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 쓴 채 오크통에 든 맥주를 꽐꽐 비우는 이미지―, 노래를 듣고 있자면 미국 서부의 시골에서 밀짚 더미 위에 대충 드러누워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종일 잿빛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본 하루면 뭐 어떠한가. 노트북 전원만 끄면, 작은 스마트폰에서 고개만 들면 총천연색 풍경이 눈으로 달려 들어오는 좋은 계절인데.

올 가을의 어느 산책길에서 이 노래를 한번쯤 꼭 들어보길 권한다. 콧속으로 신선한 바람이 들어차는 아침의 출근길도 괜찮고, 하루의 긴장을 툭 놓고 싶은 퇴근길이나 주말의 천변을 느긋하게 걷는 시간이어도 좋겠다. 머지않아 무채색으로 갈아입을 풍경의 찬연한 색채를 눈에 담아보자.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무늬를 짬짬이 짚을 정도의 여유 한 줌은 여전히 내 주머니에 있다. 손을 뻗어 느끼고 잠시 안도하면 될 일이다.

🌻 오대천왕 - 멋진 헛간

2015년,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볼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정형돈과 혁오 밴드의 무대를 분명 봤지만 가사의 뜻을 곱씹어본 기억은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그저 언더그라운드를 지나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혁오의 노래에 홀딱 반해 충격 받은 기억뿐.

오랜만에 다시 들은 <멋진 헛간>은 흥겨운 컨트리풍 멜로디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낱낱이 비춘 듯한 노랫말을 듣느라 생각에 잠기게 됐다. 엉덩이를 토닥여주던 부모님의 손길에서 벗어나 나만의 그럴싸한 헛간을 짓고, 나름의 전쟁을 치르며 전리품을 채워 넣었지만 그곳은 생각처럼 넉넉하지 않다. 도둑이 든 게 분명하다고 믿었으나 헛간을 오간 발자국은 내 것 하나뿐이라니.

허전한 헛간의 정체가 통장 잔고일지, 작은 원룸일지, 얄팍한 내면의 철학일지, 아니면 전부 다인지 모르겠다. 기운 빠지는 일이지만 티끌 모아 티끌이라며 자조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서부터 망한지를 몰라 /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해야" 할지언정 노랫말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보다는 헛간 어딘가에 삶의 경험치가 쌓인 모습 아닐까. 오늘도 무형의 전리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동지들에게 위로의 치얼스를 건넨다. 이틀만 더 보내면, 아무려면 기쁜 주말이 다시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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