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5] 🌻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2월이란 달은 정말 기묘합니다. 평소의 달보다 고작 이삼 일이 적을 뿐인데 유난히 번개처럼 빠르게 느껴지니 말이죠. 설 연휴를 보내고 '이제 좀 열심히 살아볼까!'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을 훌쩍 넘겨 3월의 정수리가 보일 지경이에요.

한편으로 날이 조금 풀리나 싶으면 다시 바람이 매서워지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봄이 오고 있다는 거예요. 길가의 개나리 꽃봉오리나 전에 없던 새싹이 움터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기분이 붕 떠오르곤 합니다. 사람들이 찬바람을 뚫고 각자의 일터와 집으로 잰걸음을 하는 동안 언 땅 아래서 봄 또한 착실히 제 할 일을 하며 가까워지고 있구나, 분명히 봄은 오는구나, 그러니까 나도 일단은 지금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오늘은 봄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듣는 세 곡을 모아 소개해봅니다. 구독자 님은 봄을 기다리며 듣는 노래가 있으신가요? 레터 아래 링크로 알려주세요. 올해 PRIIISM은 인터뷰 프로젝트를 비롯해 예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에 쫌쫌따리 손을 뻗쳐 보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구독자 분들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싶습니다. 적당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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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경 - 주문을 걸어

이 시기쯤 주택 골목을 산책하는 기쁨 중 하나라면 대문마다 여덟 팔(八)자로 붙은 입춘대길 건양다경, 이른바 '입춘첩'을 구경하는 것이다. 입춘첩은 매해 입춘(올해는 2월 3일) 날에 길한 일과 경사가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문에 써 붙이고, 다음 절기인 우수(올해는 2월 19일) 전에 뗀다고 한다. 정석대로 지엄하게 붓글씨로 적은 집이 있는가 하면 발랄하게 한글로 적은 집도 있고, 어떤 카페는 핸드드립 여과지를 활용해 가게 문에 붙여 놓기도 한다. 여름이나 가을, 겨울이 온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귀여운 행동을 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농사에서 비롯된 풍습이니 그럴 테지만, 역시 봄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포근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그득한 것 같다.

봄을 기다리는 요즘의 기분과 주파수를 딱 맞춘 듯 어울리는 노래를 자주 듣고 있다. <주문을 걸어>는 1999년 발매한 박혜경 1집 [+01]의 타이틀 곡이다. 알고 보니 박혜경의 메가 히트곡 <고백>이 수록된 앨범이었다! 그 앨범의 타이틀이라니 왜 이제야 들어 봤을까.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나 낭랑하고 청량하면서도 락킹할 수가 있나 싶다. 도입부의 '난난나~'만 들어도 뭔가 설레고 화창한 날이 이제 막 시작되는 듯 두근거리는 느낌. 이제나 저제나 봄의 낌새를 기대하는 요즘 기분과 이렇게나 닮아 있을 수가 있을까.

🌻 김정미 - 햇님

재작년이던가, 밥 먹듯 드나들던 동네 엘피바에서 <햇님>을 처음 들었다. '치지직' 엘피 판을 긁듯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노래는 먼지 냄새로 자욱한 그 공간과 맞춘 듯 어울렸다. 한없이 나른한 목소리, 탁 트인 벌판이 연상되는 평온한 노랫말.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1973년 발매 당시 창법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아 앨범이 전량 폐기되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를 한참 더 먹은, 그러면서도 쉽지 않은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노래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햇님>은 빈지노의 [NOWITZKI] 앨범 <Sanso>란 곡에 샘플링되기도 했다.

몽롱한 분위기와 통기타 소리, 뻔하지 않게 흘러가는 진행까지 매력이 넘치는 곡이지만 역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노랫말이다. 온 신경이 악기 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일상이어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잊지 말아야지, 고요하게 날으는 새들과 찬란한 태양빛이 얼마나 좋은지 자꾸자꾸 실감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햇님은 45도 아래 스마트폰 화면 속이 아니라 얼굴을 들어야 보이는 곳에 있으니까. 실감하지 않으면, 자꾸 올려다보지 않으면 아무리 형형한 존재여도 내게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햇님, 행복, 긍정적인 생각, 사랑... 대상만 다를 뿐 다 똑같지 않을까. 내 곁에 있단 사실을 내가 알아봐야만 내 것이 된다. '따뜻한 햇님 곁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햇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 어느 하나 모난 구석 없이 따스한 노랫말이다.

🌻 한로로 - 비틀비틀 짝짜꿍

그의 데뷔 곡이 <입춘>이어서 그런지, 내게 있어 한로로는 봄을 앞둔 이 시기를 대표하는 목소리 중 하나다. 벌써 PRIIISM에 두 차례나 소개하긴 했지만 새삼 또 얘기하자면 한로로는 정말 청춘을 닮았고, 청춘에 있고, 청춘을 '잘' 노래하는 아티스트라고 느낀다. 청춘이란 단어만큼 모호하면서도 생명력으로 분명한 것이 또 있을까. 한로로가 부르는 청춘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자기만의 길을 착실히 다져 나가는, 상쾌하면서도 결연한 발걸음을 닮았다. 자연히 이 다음 스텝은 어떤 모습일지를 한껏 기대하고 상상하게 된다.

'이마 위 상처는 청춘의 징표, 우리는 서로의 좋은 반창고~' <비틀비틀 짝짜꿍>의 노랫말은 그의 노래들 중에서도 유독 발랄한 청춘 그 자체다. 듣고 있자면 아무 계산 없이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달려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경쾌하지만 다정하고 속 깊은 친구와 산책하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올해는 어디가 됐든 꼭 잔디밭이 푸른 페스티벌 공연장에서 한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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