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새롭게 읽기, 혼종적으로
우리에게 ‘도시’는 너무나 친숙한, 그래서 쉬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도시에 대한 논의는 ‘거주’, ‘교통’, ‘개발’, ‘환경’, ‘인구’와 같은 큰 개념들로 쪼개지고, 도시 문제에 대한 개입 역시 ‘효용’과 ‘비용’의 문제로 손쉽게 치환된다. 이런 효용과 비용의 방정식에서 오래된 아파트를 부수고 더 높고 멋진 새 아파트 단지를 짓는 일,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하천 바닥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물길을 정비하는 일, 비둘기에게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건물 창가에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일은 도시를 더 멋지고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된다.
이 선택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낡은 건물과 범람하는 물, 배설물을 남기는 동물을 도시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하는 개별적인 문제로 떼어낸다는 점이다. 문제를 그렇게 정의하면 해결책도 철거, 정비, 금지와 퇴치로 정해진다. 하지만 도시의 문제는 하나의 대상 안에 고립되어 있지 않다. 도시의 새, 아파트 단지의 구조, 하천 생태계, 공사 기술, 재개발 정책과 관련 결정권자는 서로 다른 힘과 속도로 얽혀 도시를 형성하고 도시 문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막연히 연결되어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문제로 그려지는지, 그리고 이런 문제를 규정하는 힘은 어디에 놓이는지를 추적하는 일이다.
도시 속 이런 혼종적인 권력 관계를 담아내기 위해 도시 연구자들은 계속해 새로운 접근법과 개념을 생각해왔다. 가령 도시정치생태학(Urban Political Ecology)은 도시가 자연과 문화가 뒤섞인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공원은 자연인가, 문화인가? 하수도는 자연인가, 문화인가? 한강대교는 자연인가, 문화인가? 도시정치생태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을 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도시가 자연과 문화를 교차하며 “’형성되어 가는 '혼합물"[1]이라는 점, 즉 둘 중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이 도시의 본질이다. 도시는 공간이자 자연이며, 정치, 담론, 권력, 의미와 같은 문화와 엮이며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이 관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인 한강과 한강공원을 독해해보자[2]. 한강과 한강변을 홍수를 신속하게 흘려보내야 하는 치수의 공간으로 보는지, 시민을 위한 여가 공간으로 보는지, 다른 생물의 이동과 서식을 보장해야 하는 생태축으로 보는지에 따라 한강공원에 필요한 시설과 그 관리 방식은 달라진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한강의 유일한 본질은 아니다. 다만 특정한 시기에는 국가와 행정기관, 전문가가 가진 권한을 통해 하나의 한강이 다른 한강보다 더 강하게 현실화된다. 한강공원의 이런 다양한 면모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누가 이곳을 이용하고 관리하는지, 어떤 과거를 기억하며 어떤 미래의 한강을 계획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1990년대까지 한강과 한강변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 당시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치수였고, 이는 공원의 식생과 설계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원칙이었다. 물과 땅을 구분하는 콘크리트 호안은 한강과 한강변, 즉 사람이 이용할 수 없는 구역과 있는 구역을 구분하는 핵심 장치였고 범람의 영향이 있는 구역은 공원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97년까지 한강공원 내 주요 구역에는 큰 수목을 심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3] 한강변에 있어 공원의 역할보다는 도시를 물로부터 안전하게 막아주는 역할이 강조된 시기였다. 하지만 2011년 오피스박김(PARKKIM)이 설계한 양화한강공원은 오히려 강의 제방을 해체하고 물과 진흙이 공원을 자연스럽게 들락날락하도록 한다.[4] 뿐만 아니라, 2000년대의 한강 개발 사업은 지속적으로 한강의 콘크리트 호안 구조물을 제거하고 자연형 호안을 조성하는 복원 사업을 제시했다. 시간이 흐르며 치수뿐만 아니라 생태, 친수, 경관과 같은 가치가 한강공원에 요구되면서, 물의 드나듦이 차단해야 할 위험일 뿐만 아니라 공원을 구성하는 요소로도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공원의 구조적인 변화일 뿐만 아니라, 한강에서 어떤 자연의 작용이 허용되는지, 어디까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변화를 반영한다. 한강공원의 식생과 물가의 형태에 이처럼 각 시기에 자연을 바라보고 관리하는 방식이 녹아들어있다.
도시 연구를 현장으로 끌고 가기
도시정치생태학이 도시의 혼종성을 말하는 이유는 단지 도시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연과 문화가 섞여있단 말은 곧, 자연 역시 인간 세계와 분리된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나 도시 속 자연은 인간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선택을 통해 생산되고 관리된다. 어떤 물은 경관이 되고 어떤 물은 신속히 배수해야 할 위험이 되며, 어떤 동물은 보호할 생명이 되고 어떤 동물은 제거해야 할 유해동물이 된다. 도시의 자연과 문화를 가르는 경계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판단과 결정이 개입한다. 그렇다면 도시 연구자들은 이런 권력 관계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우선은 도시 연구의 자료이자 증거가 되는 문헌과 기록을 충실히 살피는 방법이 있다. 물론, 많은 경우에 결정의 맥락과 과정은 서류에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결정의 결과뿐이다. 계획 도면과 예산서, 준공 보고서에는 무엇이 새로 만들어졌는지가 적히지만, 그 자리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 누구의 시간이 비용으로 처리되었는지는 적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도시 연구자는 공식적인 서류 외에도 동네 주민의 이야기가 담긴 구술 자료, 시민 단체의 활동이 기록된 활동지, 공식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비공식 사진들을 열심히 발굴해야 한다.
동시에, 무엇보다 기록 바깥으로 나가 기록되지 않는 도시의 풍경과 운영을 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과정으로서의 도시를 연구하기 위해서 도시를 이미 완성된 대상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들을 충실히 읽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을 발굴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이들만으로 현장을 재단할 때 기존 이해와 들어맞지 않는 존재와 관계는 쉽게 사라진다. 그렇기에 도시를 연구 에 충실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관계에 따라 개념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움직이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지식은 문헌과 통계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도시의 서로 다른 시간과 감각, 공식적인 기록에 남지 않는 돌봄과 갈등을 읽으려면 연구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걷고 일하고 경험하는 장소로 들어가야 한다. 도시의 다양한 결, 다양한 시간의 쌓임을 읽어내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도시에 개입하고 이를 경험해야 한다.
그렇기에 연구자는 더 이상 연구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본인이 참여한 서울연구원 작은연구[5]에서 연구자 네 명은 길고양이 케어테이커의 현장에 동행하며 그들의 눈과 경험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읽었다. 평범한 주택 화단과 담벼락, 근린공원과 공사장 바리게이트가 케어테이커의 경험과 결합하자 고양이가 먹고 숨고 이동하는 하나의 생활권이자 동시에 주민과 경비 노동자, 건물주와 돌봄 활동가 사이의 협상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고양이의 서식처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인간이 도시 공간을 나누고 관리하는 방식까지 함께 읽는 일이 되었다. 도시에 직접 들어가야만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도시 연구자는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도시를 관찰하고 경험하고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되어야 한다.
공공으로 확장하는 도시 연구
도시를 연구하는 일은,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연구자가 홀로 도시를 더 가까이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학술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벗어나 공공, 커뮤니티, 예술과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도시 하천의 역사를 연구하는 나 역시 예술 프로젝트인 《시간과 물에 대하여: 집단적 지도 만들기》[6]에 참여하며 연구의 더 큰 의미를 찾아갔다. 문헌과 지도 속에 흩어져 있던 물길의 역사는 참여자들과 하천의 물리적 흔적을 따라 걷고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의 도시 공간을 이해하는 지식으로 다시 구성되었다. 이 경험은 연구자의 역량이 도시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관계와 질문을 시민에게 닿을 수 있는 형식으로 번역하고, 익숙한 도시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 역시 연구자의 역할이다.

위에서 소개한 서울연구원 작은 연구를 계기로 기획한 출판물 ’ULC 7호, 비인간: 도시의 생물들’[7]는 도시 속 동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다. 이 출판물을 함께 집필한 저자들 역시 단순히 도시 생물을 멀리서 바라보는 연구자가 아니다. 이들은 식물을 심고 가꾸는 정원사이고 지의류 채집가이며, 지렁이를 살리는 구조가이자 수달의 흔적을 따라가는 탐정이다. 이들은 분명 도시의 생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도시에 깊숙하게 들어가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런 실천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도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도시 연구가 연구에 멈추지 않고 공공 실천으로 이어지고, 이 실천적 경험이 다시 연구를 추동한다.
도시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도시는 단순히 연구 ‘대상’만이 될 수 없다. 도시 연구자는 연구뿐만 아니라 도시를 거닐고 도시 속에서 살아가며 이와 소통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도시 연구자는 자신이 발견한 관계와 역사를 학술의 영역에만 남겨두지 않고, 이를 공공의 언어와 경험으로 옮겨 도시를 둘러싼 논의와 실천에 참여해야 한다. 연구의 과정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일은 이런 참여의 중요한 방식이다. 이런 실천을 통해 도시 연구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이가 더 넓은 사회적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와 기반을 만든다. 그렇기에 자신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시민들이 도시에서 보고 감각할 수 있는 형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옮기는 일이 도시 연구에서는 이를 학계 안에서 키우고 공유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1] 김준수. (2019). 한강의 생산: 한국의 발전주의 도시화와 '국가-자연'의 관계 [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p. 15.
[2] 조담빈. (2025). 사회자연 복합체로서 한강공원: 국가-자연 관계의 구축과 조정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을 기반으로 함.
[3] 구 하천법시행령(대통령령 제10650호, 1981.12.21. 일부개정) 제19조의2에서는 수목을 “성목의 평균높이가 1미터미만인 다년생 수목”으로 제한하고 있다.
[4] PARKKIM, Yanghwa Riverfront: Mud-infrastructure, https://parkkim.net/projects/1016/
[5] 조담빈, 권소희, 박소영, 임한솔. (2024). 경계동물의 서식처로서 서울의 도시 환경: 길고양이를 중심으로. 서울연구원.
[6] 권혜인 기획·편집. (2025). 《시간과 물에 대하여: 집단적 지도 만들기》 예술연구 프로젝트, http://waterandtime.kr/
[7] 권소희 외. (2025). ULC 7 비인간, 도시의 생물들. 유엘씨프레스.
조담빈 / 도시 환경사 연구자, 조지아공과대학 과학기술사 박사과정생 tambi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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