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같은 곳을 여행하는 이유

#8 조그만한 슬픔과 거대한 사랑

6년째 같은 곳을 여행하는 이유

2024.02.26 | 조회 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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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의 여행노트

기꺼이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는 당신에게, 매주 금요일 여행레터를 전합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내게는 어릴 때부터 조그만한 슬픔이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그 예민하고 여린 아이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정말 별 거 아니야.“

 

”정말 별 거 아니야.“

 

 

 

*

 

사실은 아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었다.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데 포와 메 앞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 않았다.

여러 주제를 넘나들던 우리의 대화는 어느덧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건강상 이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포와 메의 진솔한 이야기 뒤에

나도 자연스레 내 조그만한 슬픔, 가족사를 테이블 위로 꺼내놓았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진짜 별 거 아니잖아..?’

 

마음이 한층 더 홀가분하다.

 

 

*

 

엄마는 나와 언니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서류상 이혼을 미뤄왔다.

아빠랑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그런 엄마가 내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쩔땐 화도 났다.  

아빠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내 상황이 성가시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냥 그런 상황이 슬펐다. 

 

 

*

 

아빠 없이 엄마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와 나는 보이지 않는 탯줄로 끈끈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그만한 슬픔이 한 번씩 찾아와도

엄마 품에서 잠들면 언제나 안심할 수 있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끈한 집밥을 먹으면 모든 게 깨끗이 나았다.

 

그가 내게 준 사랑은 이런 것들이다.

 

나보다 일찍 집에 도착해서 

밥 짓는 냄새를 폴폴 풍기는 것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가 눈뜨기 전에 항상 먼저 일어나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것.

 

살아있는 제철 식재료로 맛있게 요리해서 계절을 잘 느낄 수 있게 해준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철이 되면 잊지 않고 퇴근길마다 딸기를 사와주던 것.

 

교복 와이셔츠는 항상 뽀송뽀송하게 삶아서 빳빳이 다려주던 것.

 

소풍이 있을 때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던 것.

 

꼭 깻잎으로 두른 김밥에 터질듯한 유부초밥, 참치 마요네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그것은 나를 웃게 만드는 그만의 필살기였다.

 

언제 어디서든 맨 앞 자리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던 사람. 

 

아름다울 미에 볕 경,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미경.

 

이리도 부지런히 사랑 주는 사람에게서 

내가 태어났다.

 

 

 

*

 

나는 사랑받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

 

말을 정말로 예쁘게 하는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 

그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자주 눈물이 흘렀다. 

내 안에 고여 있던 조그만한 슬픔들이 하나씩 씻겨 나갔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그래, 정말 별 거 아니야. 라니한텐 라니가 가장 소중해.” 

 

하고 끊임없이 말해주며 한없이 다정하게 안아주던 사람. 

 

그는 사랑받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나에게 

나의 서른번째 생일 날, 

동시에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가 한 자리에 모인 결혼식 날,

나의 생일을 다함께 축하하는 노래를 만들어 가장 큰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내가 주고 싶은 것 보다, 그대가 정말로 원하는 선물을 줄 테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네. 노랠 부르네. 

축복으로만 오늘을 가득 채우자. 축하해, 축하해 생일.

라니의 서른번째 생일.‘

 

그는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포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

 

우리는 신혼여행도 치앙마이로 떠나왔다.

여느 신혼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짝꿍 훈이에게는 장모님과 처형인 우리 엄마와 언니가 함께 동행하는 스케줄이 포함돼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해외를 아직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언니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서로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나를 있게 한 가족과 내가 선택한 가족들을.

 

사랑이 한데 모인 날,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하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내가 엄마가 되어서나 어렴풋이 알 수 있을까?

 

엄마와 메가 손을 꼭 잡고, 

언니와 내 짝꿍 훈이, 포가 앞장서서 치앙마이 거리를 거닐던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내게도 아빠가 생겼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엄마도 한 명 더 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살갑고 다정한 아들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는 이제 한 가족이다. 

 

 

그 조그만한 슬픔은 슬픔으로 머물지 않고 

거대한 사랑을 만들어냈다. 

 

 

*

 

릴라와디, 영어로는 플루메리아.

태국 치앙마이에서 알게 된 이 꽃의 꽃말은 

 

It’s lucky to see you.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에요.’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모두.

 

 


 

이번 주는 꺼내야 할 고백들이 많아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어요. 

더 부지런한 사랑으로 소중한 구독자분들께 다가가겠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

 

 


 




고마워요 :)
고마워요 :)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


이날도 우리의 단골 카페 <브루팩트> 에서, 
이날도 우리의 단골 카페 <브루팩트> 에서, 

 

 


 

🎧 Today Playlist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가장 우리다운 결혼식>을 고민하며 저와 제 짝꿍이 함께 써내려간 <The Door> 음악 앨범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글 안에서 이야기했던 ‘라니야, 서른번째 생일 축하해’, ‘릴라와디’는 꼭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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