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한국으로 먼저 떠나는 그는 나를 꼭 안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존재를 확인하면서
그들을 배웅하는 치앙마이 공항 게이트 입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
올해로 6번째 도착하는 태국이다.
이번 여행은 동행자가 둘이나 더 있다.
나와 열살 넘게 차이나는 친구, C와 E가 그 주인공이다.
C는 이제 중학교 3학년, E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다니는 곳마다 타국의 어른들은 그들에게 물어온다.
“너희 정말, 공부를 그렇게 힘들게 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OECD 국가 중 삶의 만족도가 평균치보다 훨씬 낮다는 연구결과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할 때 자기효능을 크게 느끼는지 온전히 경험하고 느낄 새도 없다.
여전히 대학이라는 문턱을 통과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학교와 학원에 간다.
마음 속으로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초조해하는 평범한 10대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던 교사였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삼삼오오 모여 ’자유론’을 읽고
‘자유‘를 논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불꺼진 교실들 사이로 환하게 켜져 있는
야간 자율학습실 안에서 감독을 할 때면
마음이 가장 서글펐던 것 같다.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과연 이들을 잘 이끌어 내고 있는 걸까?’
3년 전 나는, 더 이상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짜 세상을 더 경험해야만 했다.
더 많은 지식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를 나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흘러 들어온 것도,
6년째 이 곳에 오기로 선택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가서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멋진지,
그 길에서 어떤 자기다운 사람들을 만났는지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전하고 싶다.
*
공항 게이트에서 멀어져가는 그들의 당찬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하는구나’
그리고는 아주 담백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이제 가.”
마치 보내주어야 할 때는 아는 사람처럼,
이제 떠나야 할 때는 아는 사람처럼,
우리 사이에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남을 느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우리가 포옹했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본다.
한 번 더, 그들을 세게 끌어 안아본다.
지브리의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고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을
질리도록 봐도 감동적이라 말하는,
스위스라는 나라가 궁금한 C.
치즈케이크와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2000년대 발라드가 취향인
작고 귀여운 돼지인형을 귀여워하는
말많은 은행원이란 별명을 지어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언젠가 캐나다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E.
평범함 안에 자기만의 빛을 숨기고 있는
그들을 천천히 더 자주 알아가고 싶다.
잘 이끌어 주고 싶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기다려주고 싶다.
오늘은 자꾸만 그들의 작은 감탄이 귀에 맴돈다.
‘멀미약도 소용없었던 빠이가 제일 좋았어.‘
‘나도 집에서 꼰띱이 해준 것처럼, 아침 만들어 먹고 싶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서 좋았어.’
‘자유로웠어’
*
아침을 먹다가 이들에게 평소에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잘했네!’
‘오, 재능 있네?’
사람은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아름답다.
나는 이들의 진짜 웃음을 이 곳에서 참 많이 보았다.
또 이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안다.
머지않아 이들도, 이들만의 멋진 여행기가 탄생할 것이다.
나는 C와 E를 가장 앞에서 응원하는 첫 번째 구독자가 되어주고 싶다.
*
이제는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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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 좋아하는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ost, ‘언제나 몇번이라도(Always with me)와 함께 나란히 읽어주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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