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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의 발전은 사실 프로디지(prodigy·신동) 콤플렉스와 다름없었다. 어릴 때 '될성부른' 신동들과 '떡잎부터 남달랐던' 천재들이,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위인이 되고 이웃과 나라를 바꾼 내러티브를 우리는 숱하게 읽고 들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은 그런 성공 신화를 추구해 왔다. 뛰어난 1명이 뒤처진 99명을 먹여 살린다는 믿음, 금메달을 따면, 서울대를 가면, 아이돌이 되면, 의대를 가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소와 빨래의 부조리를 밝히기 위해 금메달을 따야 하는 이 현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그에 대해 '아직 김연아, 손흥민급'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얼마나 믿기 어려운 답변인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불행하다. 어릴 때 이미 걸러진 '될성부른' 프로디지들은 끊임없이 다시 걸러지고 탈락할 것이며, 한 번 탈락은 영원한 인생의 패배로 이해되는 것 같다. 그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금메달급'이 되지 못한 프로디지들의 슬픔이 있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불효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되지 못할 아이는 애초에 낳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특히 어른들이 이 99명 젊은이의 절망을 돌아보고 말 걸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나 젊고 아름답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재능이 뒤늦게 꽃피길 우리가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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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다 나보다 못 쏴."(김예지),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야."(반효진),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잘할 수 있었다."(오상욱) '○○적 사고'로 명명된 선수들의 어록은 세대를 아우르는 밈이 되었다.
'○○적 사고'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세상을 자기한테 맞추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의지로서 상황을 낙관하는 믿음을 갖는 능력, 즉 자기기만 능력이다. '○○적 사고'의 주인공들의 마음 한구석에도 비관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위 선수들의 특별한 능력은 솟아오르는 비관적 사고를 제압하고 낙관을 지배적 사고로 채택하는 능력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정신의 드라마를 쓰는 능력이 무의식이 아는 것을 억누르는 자아의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무의식이 아는 것, 엄습해오는 불안을 억누르는 노력이다.
하지만 자기기만의 위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은 모두가 '○○적 사고'로 무장하길 요구하는 세계 그 자체이다. 자기기만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다. 모두가 자기기만의 방탄복을 둘러야 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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