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에 있다

AI가 설교까지 쓰는 시대, 교회에 남은 자리를 묻습니다

2026.07.28 | 조회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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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결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목사님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설교도 AI가 해 주겠구나!” 저는 그 말을 일축하며 말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서 괜찮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말을 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미 AI가 설교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더 잘 쓰기도 하고요. 설교뿐 아니라 더 어렵고 학문적인 글도 쓸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짚고 질문에 답하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목회자보다 더 나은 답을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이미 사람들 손안에 있고, 점점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답 그 자체는 흔해졌습니다. 언제든 손안의 기기에서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답을 주려는 교회, 질문하시는 하나님

한국 개신교회에서 제가 경험한 문화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술을 마셔도 되나요? 주일을 꼭 지켜야 하나요? 믿지 않는 친구와 연애하면 안 되나요? 누군가는 이런 질문에 답하려 했고, 또 누군가는 답을 요구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놓은 다른 답에는 “그것은 답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오래 생각하기보다 쉽게 내려온 답을 따르는 편이 편하다고 여겼고, 그것을 권했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답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답을 내놓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절망과 비극 앞에서도 “그래도 하나님은”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결론을 내려 했습니다. 마치 욥의 친구들처럼요. 성경이 우리 인생의 답이라는 이유로요.

 

질문으로 남는 성경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따라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곧바로 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욥의 고통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마지막에 하나님이 나타나 하신 말씀을 보세요. 수많은 질문에 하나님은 어떤 설명을 더하셨나요? “내가 물을 테니 나한테 좀 알려 다오”(욥기 38:3, 새한글성경). 하나님은 욥에게 질문하십니다. 그 질문 속에 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널 위해서 한 거야”라는 식의 쉬운 답을 주지는 않으십니다.

 

답이 아니라 질문만 남기는 책도 있습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예루살렘 멸망 앞에서 예레미야애가는 그 비극에 선명한 답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시인도 아무 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들은 허공에 매달린 채 남는다. 불편하고 팽팽하며, 시비를 거는 고발로서. 시온의 딸에게도, 하나님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No answer is spoken, by God, or the Poet. So the questions are left hanging in the air, uncomfortable, stretching, contentious allegations — for her, for God, and for us."

크리스토퍼 라이트, 『The Message of Lamentations』

답을 빨리 내놓는 일만으로는 교회의 자리는 좁아집니다. 정보는 넘치고, 더 정교한 문장은 토큰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교회가 건넨 쉬운 답은 세상과 유리되었고, 피상적 답변만 울리는 곳은 사람들이 찾을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질문이 머물 자리

청년부를 맡았을 때, “궁금하지만 물을 데가 없다”는 말을 듣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오픈 채팅방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좋은 질문이 많아서 때로는 AI를 활용해야 했습니다. 이런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AI에 물어보라고 하면 될 텐데, 바쁜 와중에 나는 왜 질문에 답하고 있을까?’

 

정답을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정답은 AI의 대답을 복사해도 충분합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해답만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묻고, 고민하고, 나누며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묻는 이유입니다.

질문으로 걷는 신앙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답을 주는 것만이 신앙이 아니고, 답만 찾으라고 성경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질문하고 생각하기 위해 신앙은 존재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성경은 나침반이라는 '도구'를 넘어,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편지는 질문을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여러 주제에 대해서, 또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쓰려고 합니다. 상식(常識)을 딛고 그 위의 앎, '상식(上識)'을 향해.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닌, 교회 밖에서도 통하는 글. 진영이 달라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질문. 

 

유대교 사상가 조너선 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에 있다 — 그리고 인간이 위대할수록 그 물음은 더 강렬해진다."
 "Faith lies not in the answer but the question — and the greater the human being, the more intense the question."
Jonathan Sacks, 『To Heal a Fracture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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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드림

상식과 신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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